마당 한가운데 다섯 자매가 모였다. 막내는 아직 젓먹이여서 업고 있는데 보채거나 잘 울지 않아서 돌보기가 수월했다. 그래도 왠지 대청마루에 막내만 눕혀놓고 나올 수 없어서 그냥 업고 하자는 생각이 들었는데 역시 막내는 순한 아기였다. 둘째부터 차례대로 하면 될 일, 토끼털을 깎던 가위는 굉장히 부드럽게 깎이고 값비싼 가위였다. 손에 긴장감이 좀 더 들긴 했지만 동생들 앞에서 주춤하는 내색을 할 수 없었다. 모두가 좋아하는 미용실 놀이, 난 그 미용실 놀이로 동생들의 머리카락을 실제로 다듬는 일을 계속해오고 있었다. 소죽을 끓일 때 여물을 담아가는 통을 엎어놓으면 그럴듯한 미용실 의자가 되었다. 그리고 집집마다 하나씩은 있을법한 분홍색 보자기를 어깨 위로 둘러주고 마당 한 편 수도가에 있던 분홍색 동그란 물바가지를 가져와 머리에 씌운 뒤 바가지의 선을 따라 가위질 한 바퀴를 돌다 보면 어느새 완성되는 헤어 스타일, 바가지 머리이다. 분홍 보자기와 분홍 바가지가 만들어주는 자매들만의 놀이가 마당을 시끌벅적하게 만들었다. 늘 비슷한 모양의 머리 모양이었고, 얻어 오거나 새 옷을 사면 나부터 차례대로 입고 아래로 계속 물려주는 식이었다. 모든 것이 그러했다. 옷부터 신발, 학교 가방, 학용품, 도시락 통, 심지어 다 떨어진 고무신과 슬리퍼는 아버지의 땜질과 할머니의 바느질로 인해 절대로 버려지는 일이 없었다.
미용실 놀이를 끝내고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들을 쓸며 정리를 하니 어느덧 오후 시간이 되어 출출했다. 막내는 등 뒤에 업혀서 몇 시간을 있었을까? 기저귀는 제때 갈아주지 못해 축축했고 다리도 아팠을 듯했다. 내내 순하게 업혀만 있던 막내를 이제 편하게 누워 자라고 대청마루에 눕혔다. 마당 수도가에 있는 양동이에 막내의 기저귀가 한가득이다. 간식도 해야 하고 기저귀도 빨아야 하고 할 일이 자꾸만 눈에 보이니
숨이 턱턱 막혔다. 이럴 땐 작은 아버지 댁에 잠시 다니러 가신 할머니가 그리웠다. 어쩔 수 없이 부엌으로 들어가 밀가루를 꺼내 반죽을 하기 시작했다. 호떡을 구워도 한 명이 두 개씩은 먹어야 했기에 이 정도면 될까 하고 계속해서 밀가루를 넣다 보니 나중에는 축구공만큼이나 커져버렸다.
"언니야, 영이 깼다. 우야꼬? 자꾸 우는데?"
"......"
"큰언니야, 자꾸 운다고! 에이, 나는 모리겠다."
밀가루 반죽이 여기저기 묻은 손으로 급히 막내에게 달려가니 울음을 그친 막내가 나를 보고 배시시 웃었다. 배가 고픈 막내를 위해 분유를 타고 둘째에게 잘 먹이도록 이르고 다시 부엌으로 돌아왔다. 곤로에 불을 붙이고 낡은 프라이팬을 올려 급히 호떡을 구워내기 시작하니 밖에서 놀던 동생들이 하나 둘 곤로 앞으로 모여들었다.
"언니야, 다됐나? 언제 묵노?"
"와 억수로 맛있겠다! 빨리 묵고 싶다!"
"조용해라, 큰 언니 힘들다, 언니야, 우리 나가 있을게 다되마 불러래이."
종알종알 대던 동생들이 다시 밖으로 나가자 소가 없이 텅 빈 호떡을 계속 굽고 있던 나는 잠시 부엌문 밖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 하늘엔 왠지 높낮이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일까? 더 가까워 보였던 여름 오후의 하늘이 분주하던 내게 동무가 되어주었다. 마당 한편에 다닥다닥 붙어 앉은 동생들이 뜨거운 호떡을 후후 불어가며 맛있게 먹고 있는 모습을 보니 수도가에 앉아 막내 기저귀를 치대는 두 손도 좀 더 가벼워지는 듯했다. 후후 호떡 부는 소리와 빨래 방망이 소리는 희한하게 잘 어울리는 듯했다. 이대로 몸이 붕 떠서 이리저리 날아다녔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루가 힘들었을 내게 스스로 주는 선물인 것처럼 그 시간을 받아들이면 좋을 것 같았다. 그냥 지나가도록, 흘러가도록 두면 되는 시간. 하지만 지나간 그 시간 속에 너무 깊이 갇혀있다는 것이 사춘기의 내 마음을 점점 더 복잡하고 힘들게 하기도 했다. 난 무엇을 그토록 원하고 또 하고 싶은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