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덟.
어느덧 직장을 여러 번 옮긴 지 6년이 지났다.
나의 첫 번째 직장은 어린이집이었다. 대학 시절부터 이미 교사라는 직업은 내게 버겁고 멀게 느껴졌다. 졸업 후 현실이라는 이름의 물살에 휩쓸려, 수십 번 보조교사에 지원했지만 번번이 떨어졌다. 면접 자리에서는 항상 똑같은 질문이 돌아왔다.
"왜 안경을 벗지 않나요?"
어쩌면, 그들은 내 눈에 비친 불안과 자신 없음의 그림자를 읽은 건지도 모른다.
우여곡절 끝에, 5개월간의 백수 생활 후, 드디어 보조교사 일을 하게 되었다.
세후 90만 원. 고단한 노동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은 금액이었다.
그렇게 7개월을 버텼고, 유치원 정교사로 나아갔다.
하지만 그 첫 유치원은 나에게 '현실' 그 이상의 것을 던져주었다.
단 한 명의 학부모.
단 한 명의 아이.
그리고 그로 인해 처음으로 경찰서를 찾게 되었다. 무혐의 판정, 혐의 없음.
사실 잘못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모든 것이 너무 지나치게 예민했고, 너무 섬세했고, 너무 사람의 감정에 휘둘리는 상황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학부모는 아이가 또래 아이들을 괴롭히는 것을 외면했고, 결국 그 모든 책임의 무게는 나의 어깨 위에 덧씌워졌다.
신고는 계속되었고, 6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그 긴장과 불안 속에서 나는 무너졌고, '무혐의'라는 단어가 전해지던 날부터 본격적으로 우울증이 찾아왔다.
그 우울은 어둠처럼, 물처럼, 아무 소리도 없이 스며들었다.
낮에는 웃고, 밤에는 울었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던 나는 이제 감정을 조절하지 못했고, 새벽이면 이불 속에서만 제대로 울 수 있었다.
정신과 진료를 시도했지만, 첫 진료는 3개월 뒤라 했다.
결국 병원이 아닌 교회로 향했다.
기도보다는 눈물이 앞섰다.
한 달 내내 새벽마다 교회를 찾았고, 어쩌면 그건 나를 붙들기 위한 하나님이 주는 동앗줄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느 날, 아주 서서히, 내 안에 다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희미하지만 분명한 바람이었다.
다시 한번 시작하고 싶다는 마음.
다시 이력서를 쓰고 면접을 봤다.
그러나 돌아오는 건 ‘부적합’이라는 말뿐.
경력도 없고, 컴퓨터 자격증도 없고, 전공도 맞지 않다는 현실.
돈은 떨어져 가고, 결국 물류창고 생산직 알바로 생계를 이어갔다.
그리고 지인의 소개로 한 직장에 들어갔지만, 2년을 채우지 못하고 또다시 퇴사하게 된다.
상사의 분노, 성희롱과 접촉, 공개적인 싸움,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가는 일상.
나는 언제든지 타깃이 될 수 있다는 불안 속에서 지냈고, 결국 이직을 결심했다.
그러나 새 직장을 구했을 때, 그곳은 날 붙잡았다.
"퇴사하면 우리가 받을 금액을 못 받는다."
한마디로 ‘너 때문에 손해 본다’는 말.
그래서 입사를 취소했고, 퇴사 후에 또다시 한 달간의 면접이 이어졌다.
이후, 결국 '사람 없는' 중소기업에 입사하게 된다.
일주일이 지났지만, 다시금 이직을 원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전 직장은 사람이 있는 곳이나 사람처럼 살 수 없는 곳이었다면, 이곳은 사람 없는 곳이나 사람처럼 살 수 없는 곳이었다.
'업데이트' 되길 바랐지만, 오히려 시스템이 다운된 느낌이었다.
로딩은커녕, 블루스크린만 가득한 삶.
직장을 옮길수록 나아지기는커녕 더 깊은 구렁텅이로 빨려 들어가는 듯하다.
25.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