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오지 않아

그 남자와 우도에 고립되다

by 지윤
[지난 이야기]
(중략) 잠자리에 들기 위해 나와 그 남자는 나란히 누웠다. 눈을 뜨면 어둠이 무서웠고, 눈을 감으면 내가 봤던 장면과 그 남자가 진술한 장면들이 겹쳐 보여 더욱 무서웠다. 나는 눈을 뜨지도 감지도 못했다. 그 남자는 애써 괜찮은 척하며 내가 가진 두려움을 없애주려 노력했다. 우리는 꼭 끌어안았다.


"그 사람 말이야... 우리가 발견한 게 다행일지도 몰라."

그 남자가 말했다.

"이렇게 강한 바람이 불고 드나드는 사람 하나 없는데, 우리가 보지 못했다면 훨씬 더 춥고 외로웠을지 몰라."

나와 그 남자는 더욱더 세게 끌어안았다.




지난밤, 그 남자를 괴롭혔던 냉장고 진동소리는 더 이상 거슬리지 않았다.

"어제 꿈에서 고맙다고 인사하고 가시더라."

어쩌면 우리가 듣고 싶었던 말이었을지도 모르는 말을 그 남자는 잠 못 이루는 어젯밤 사이에 들었다고 했다. 두렵고 무서운 느낌은 여전했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더 이상 없었다.


여느 날처럼 밥은 또 먹어야겠는지라, 배가 뜨지 않는 날에도 운영하는 음식점을 다시 찾아야 했다. 다행히 한 군데의 음식점에서 식사가 가능하다고 했다. 나와 그 남자는 느적느적 숙소를 나와서 아침 식사를 간단히 하고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 밖의 우도 풍경은 이상했다. 맑았다가 갑자기 눈이 내렸다가 또다시 구름 한 점 없다가 갑자기 흐려지던 하늘. 숙소 테라스로 나가 멍하니 풍경을 바라봤다. 사람이 없어 고요한 가운데 참 많은 일이 있었고, 날씨도 그 많은 일들을 대변해 주듯 변화무쌍했다.


나와 그 남자는 우도에 들어오기 전 서점에서 샀던 책을 집어 들고 테라스 앞의 탁자에 마주 보고 앉았다. 그 남자는 따듯한 물을 끓였고, 그 어떤 말보다 더 따듯한 물 한 모금을 마셨다. 그리고는 각자의 책 속에서 자기에게 필요한 위로의 말들을 찾으며 시간을 보냈다.

KakaoTalk_20250321_140857021.jpg 변화무쌍했던 날씨를 배경 삼고 책을 읽었다


KakaoTalk_20250321_140857021_02.jpg 모든 시간을 통틀어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




폭풍우같이 무서운 현실을
작은 베란다 창에 가둬두고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숙소에 마주 보고 앉아
따듯한 차를 내려 마시고
각자의 책 속에서 저마다의 위로를 찼던 그날

맑았다가, 함박눈이 내렸다가,
이내 다시 뭉게구름이 피어오르는

기쁠 수는 없었지만
좋을 수는 있었던 그날


이상한 기분 탓인지, 이상한 날씨 탓인지 집 밖에 나가기 어려웠던 세 번째 날.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났고 하루가 더 지나 배가 뜨는 날이 되었다. 4박 5일의 우도 고립기도 드디어 끝이 났다.


하루 만에 나가려고 했던 이 섬에서 풍랑주의보로 배가 뜨지 않아 꼼짝없이 갇혔고 모르는 이의 죽음을 목격한 후 나와 그 남자는 하루하루를 견뎌냈다.


그리고 그곳을 탈출한 후 우리 눈앞에는 또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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