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타본 경찰차

그 남자와 우도에 고립되다

by 지윤
[지난 이야기]
(중략) 기나긴 침묵을 깬 것은 그에게 걸려온 전화 한 통이었다.
"저기, 우도파출소 000입니다. 000 씨 본인 되시죠?"
"네. 맞습니다."

"파출소로 오실 수 있으실까요?"


"아까 더 이상 해야 할 것 없다고 하셨는데 방문해야 할 이유가 있나요?"

아까는 트렁크 위에서 작성한 진술서로 충분하다면서, 갑자기 파출소에 와서 목격자 진술 조서를 작성해야 한다고 했다. 혹시 필요할지도 모른다고.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경찰관의 입장도 있었겠지만 현장을 목격한 사람의 심정이나 트라우마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세상이 미웠다. 우린 이미 충분히 공포스러워 더 이상 사건에 대해 어떤 말도 꺼낼 수 없었는데, 그 남자에게 다시 기억을 들춰야 할 일이 생겼다. 목격자가 된다는 것은 무척이나 피곤한 일이었다.

"저희 이동수단이 없어서요."

이동수단이 없는 우리를 위해 경찰관님이 친히 숙소로 데리러 오셨다.

"숙소 사장님이 경찰차 타는 우리 모습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하실까?"

그 남자는 숙소 사장님께 해명해야 할 것 같은 두려움도 동시에 느낀 것 같았다. 하긴 경찰차에 실려가는 외지에서 온 두 남녀라니. 모두가 의문스럽게 생각할만한 장면인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난생처음으로 경찰차에 타게 되었다. 이 섬에 와서 이용한 첫 이동수단이 경찰차라니. 파출소는 숙소와 꽤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 때문에 숙소에만 꼼짝없이 갇혀 지내느라 몰랐던 우도의 풍경들을 경찰차 안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그 어느 누구에게도 이 상황을 설명하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어떤 사연이길래 이 아름다운 곳에서...'

그 남자는 사건 현장에는 없었던 파출소장 앞에서 목격자 진술을 되풀이하였다. 앞서 소방대원분들께도, 경찰관께도 충분히 했던 이야기를 또 해야만 하는 남자의 모습을 보며, 여러 생각이 들었다. 반복해서 말하다 보면 일상의 어떤 일처럼 있을 수 있는 하나의 사건으로 인지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 참 잊을 수 없는 여행이구나 하는 생각, 또 상황이 어찌어찌해서 이곳 파출소까지 와있지만 여기와 있는 게 진짜 내가 맞을까 하는 생각, 목격 직전에 봤던 까마귀 떼들에 대한 생각.




돌아가는 경찰차 안에는 노란색 '출입금지' 테이프가 내동댕이 쳐 있었다. 그것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나에게 그 남자는 말했다.

"거기에 쳤던 거잖아."

다시 떠올리기도 싫은 사건을 수습하기 위해 둘렀던 테이프라... 너무 찝찝했다. 정말 목격자의 심리상태 따위는 이 분들이 고려할만한 것이 아니구나.

숙소에 또 다시 돌아오니 힘이 쭉 빠졌다. 냉장고가 내는 소리는 더 괴상했고, 어쩐 일인지 바람은 더 세차게 부는 것만 같았다. 온 마음이 지쳐 잠깐 눈을 붙였다.



이대로 있다가는 사흘 간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첫날 숙소 사장님께서 무료로 대여할 수 있다고 하셨던 자전거가 생각 났다. 그 남자는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덧붙인 말이 없었지만 나는 그 말의 의미를 알 것만 같았다. 우리가 사건을 목격했던 곳은 골목이었기에, 애써 골목들을 피하고 싶은 생각. 해질녘이 되기 전 우리는 숙소로 돌아왔다. 이 섬에 어둠이 내려앉으면 더 무서울 것 같다는 생각이 나에게도, 그 남자에게도 있었던 것이다. 숙소에서 운영하는 음식점에서 따뜻한 밥을 먹으며 엄청난 하루를 마무리했다.

KakaoTalk_20250212_151223692.jpg 한적한 바다. 그리고 두 대의 자전거.

잠자리에 들기 위해 나와 그 남자는 나란히 누웠다. 눈을 뜨면 어둠이 무서웠고, 눈을 감으면 내가 봤던 장면과 그 남자가 진술한 장면들이 겹쳐 보여 더욱 무서웠다. 나는 눈을 뜨지도 감지도 못했다. 그 남자는 애써 괜찮은 척하며 내가 가진 두려움을 없애주려 노력했다. 우리는 꼭 끌어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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