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가서 뭐 하려고? -1

그 남자와 우도에 고립되다

by 지윤
[지난 이야기]
(중략) 집에 오는 길에 그 남자의 미소를 떠올렸다. 세상에 웃는 모습이 어쩜 그렇게 예쁜 남자가 있을까. 그가 웃는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함께 웃게 되었다. 그렇지만 왜 자리를 그렇게 빨리 마무리했을까, 즐거웠다면 2시간이 아니라 4시간도 모자란 거 아니야? 분위기 좋다 생각한 건 나의 일방적인 생각이었구나.

그렇게 30분이 흘렀을까. 그 남자에게 카톡이 한 통 왔다. "카톡"


"우리 또 언제 볼까요?"

뭐야, 나 별로였던 거 아니야?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이라고 생각했는데, 미소가 예쁜 그 남자가 또 보자고 한다.

"저는 언제든 괜찮아요.(내일도 좋아요.)"

그렇게 그 남자와 나는 여러 차례의 만남을 가진 후 서로에 대한 마음을 확인하고 연인이 되었다. 연인이 되자마자 우리를 막아선 건, 다름 아닌 기나긴 명절. 이제 막 서로에 대해 더 잘 알아갈 수 있는 사이가 되었는데, 명절 연휴가 이렇게 길어서야 되겠는가.

가족과 보내는 시간도 중요한 나와 그 남자는 명절 전 연휴부터 각자 본가가 있는 지역에 갔다.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며 앞으로 함께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해서도 이야기 나눴다. 공통적으로 관심 있는 부분이 많았고 함께 하면 재미있을 것들이 끊임없이 나왔다. 붕어 같은 내 기억력을 믿지 못해 나는 그 남자와 함께 하자고 이야기했던 것들을 위시리스트에 차곡차곡 적어뒀다.


나: 나 오빠랑 하고 싶다고 얘기한 것들 위시리스트에 적어뒀어!
그 남자: 아 진짜? 나도 다 기억하고 있어!
나: (위시리스트를 공유하며) 짜잔. 나는 기억력이 붕어라ㅎㅎ
그 남자: ㅎㅎ 진짜로 이번에 제주도 갈래? 이번에 아는 동생이 제주도 다녀왔는데 너무 예쁘더라.
나: 나는 너무 좋지! 눈 보러 가자!
그 남자: 너랑 눈 보고 싶어. 나랑 첫눈 함께 봐줄래?
나: 너무 좋아!
그 남자: 우리 한라산도 가자. 거기서 컵라면도 먹고ㅎㅎ
나: 컵라면이 먹고 싶은 거지?
그 남자: ㅎㅎ예약해야겠어! 생각난 김에 이번 주 어때?


그렇게 우리는 첫 데이트자, 첫 여행을 빠른 속도로 결정하게 되었다.


나: 제주에서 특별히 하고 싶은 게 있어?
그 남자: 나는 밤하늘이 많이 보고 싶어. 우도를 안 가봤는데 밤하늘이 그렇게 예쁘대! 너는 뭐 하고 싶어?
나: 나는 엄청 추울 때 북카페 가고 싶어.
그 남자: 너무 좋아. 따뜻한 곳에서 바다 보면서 책 읽고 싶어. 우리 여유롭게 다녀오자.


밤하늘이 보고 싶다는 그 남자와 한라산 등산, 우도 여행 두 가지를 키워드로 2박 3일의 여행 계획을 짰다. 서로 깊이 알지는 못 하지만 몇 번의 만남으로 좋은 사람일 것이라는 느낌이 와닿았던 것일까. 3일 전만 해도 존댓말로 이야기했던 그 남자와 그렇게 제주도 여행을 하게 되었다.




그 남자와의 대화는 늘 즐거웠다. 휴대폰으로 함께 보고 싶은 것이 있어 보다가도, 서로의 느낌이나 생각을 이야기하느라 영상은 6분 이상 재생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제주도 여행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첫날은 그 남자가 먹어보고 싶다던 고사리해장국을 먹었다. 몸국(모자반을 넣고 끓인 제주도 향토 음식)이라는 것도 있어 함께 먹었더니, 그 남자 입 맛에는 몸국이 더 잘 맞았다. 그 남자는 해조류를 좋아했다. 성산에서 밤하늘을 보기로 하였기에 우리는 성산으로 향했다.

성산으로 가며 여유롭게 해안도로를 달리는데, 아름다워 보이는 길이 나타났다. 그곳에 주차를 하고 나와 그 남자는 아무도 없는 아름다운 길을 따라 손을 잡고 걸었다.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아무것도 없어도 그 남자와 함께여서 모든 풍경이 아름다워 보였다.

또 한참을 가다가 함덕 해수욕장에 들렀다. 에메랄드 빛의 바다를 바라보다가 나와 그 남자는 사진을 남기기로 했다. 그런데, 갑자기 들어오는 파도에 그만 그 남자의 신발이 폭싹 젖었다. 찝찝할 것 같아 너무 걱정되었지만, 이것도 추억이라며 그 남자는 해맑게 웃었다. 그 웃음에 나도 또 웃게 되었다.

함덕 해수욕장에는 '걸어가는 늑대들, 전이수 갤러리'가 있었다. 나는 수년 전 어머니와 함께 관람한 적 있었는데, 나보다 감성적인 그 남자와 함께 가면 또 색다를 것 같아 함께 가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그 남자는 흔쾌히 함께 가주었다.

전이수 갤러리에는 전이수 작가의 그림과 글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작품들이 대부분이었고, 조용히 감상하며 때로는 함께 웃고 때로는 함께 울었다. 같은 작품을 보고 같은 감정을 느끼고 서로의 생각을 나눌 수 있는 그 남자가 곁에 있어 정말 행복했다.




그날 밤, 우리는 잠을 못 이루었다. 휘몰아치는 바람과 창문을 부숴버릴 듯한 세찬 빗소리가 온 건물을 뒤덮었다. 재난영화에서 나올법한 무시무시한 소리였다. 원래는 한라산을 가기로 했는데, 한라산은 무슨. 바깥으로 한 발 자국도 나가기 어려운 비바람 때문에 나와 그 남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결국 제주 시내로 가서 북카페와 시장을 가기로 했다.

숙소를 나와서도 어마무시한 비바람은 계속되었다. 우산은 무용지물이었고, 예쁘게 드라이한 머리는 0.1초 만에 산발이 되었다. 예쁜 모습을 보여줘도 부족한데, 서로의 몰골은 엉망진창이었다. 그래도 나와 그 남자는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음식점을 가는 길에 우산이 여러 번 뒤집혔고, 영화 <클래식>과 황순원 작가의 소설 <소나기>의 장면을 함께 이야기하며, 우리는 그 순간마저 즐겼다. 긍정적인 그 남자에게는 이 정도쯤이야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에피소드일 뿐이었다. 엄청난 비바람을 뚫고 아침도 먹고 맛집이라는 빵집에 들러 빵 3개를 골랐는데, 만원도 안 되는 가격에 기뻐했더니 서비스 빵까지 더 주셨다. 비바람이고 뭐고, 아무튼 럭키비키잖아!


그 남자와 처음 간 북카페. 그리고 맛있는 밀크티.


그렇게 목적지였던 북카페를 갔으나 휴무였고, 갑자기 화장실이 급해 용두암 공중화장실도 들렀다가, 최종적으로 새로운 북카페에 갔다. 엄청난 비바람을 뒤로하고 몸을 숨겼던 북카페는 아주 좋았다. 고요했고, 따뜻했고, 아기자기했기에 편안함을 느꼈다. 따뜻한 음료에 몸을 녹였고 각자 고른 책을 통해 쉽게 안정을 되찾았다.

사실 아침마다 끼는 렌즈도 잃어버려 비바람을 뚫고 새렌즈도 샀다. 원래 계획했던 한라산도 못 갔고, 세찬 비바람에 우산은 끊임없이 뒤집혔다. 원래 가려고 했던 북카페는 문을 닫았다.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끝없이 불행한 상황이었겠지만, 그 남자와 함께 였기에 이 정도는 재미난 에피소드에 불과했다. 그저 이 따뜻한 공간에 그 남자와 함께 책을 읽으며 각자 숨을 고르고 사유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음에 감사했다. 그렇게 더 이상의 고난은 없는 줄 알았다.

평화로움을 느낀 것도 잠시, 그 남자는 갑자기 전화 한 통을 받고 오겠다며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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