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와 우도에 고립되다
[지난 이야기]
사실 아침마다 끼는 렌즈도 잃어버려 비바람을 뚫고 새 렌즈도 샀다. 원래 계획했던 한라산도 못 갔고, 세찬 비바람에 우산은 끊임없이 뒤집혔다. 원래 가려고 했던 북카페는 문을 닫았다.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끝없이 불행한 상황이었겠지만, 그 남자와 함께였기에 이 정도는 재미난 에피소드에 불과했다. 그저 이 따뜻한 공간에 그 남자와 함께 책을 읽으며 각자 숨을 고르고 사유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음에 감사했다. 그렇게 더 이상의 고난은 없는 줄 알았다.
평화로움을 느낀 것도 잠시, 그 남자는 갑자기 전화 한 통을 받고 오겠다며 나갔다.
전화를 받고 들어온 그 남자의 표정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오늘 가기로 한 숙소에서 전화가 왔어."
어떤 일로 전화가 왔을까. 심장이 빨리 뛰었다.
"그 숙소에 전신주가 쓰러져서 지금 전기가 공급이 안 된대."
오 마이갓. 겨우 찾은 평화로움은 금세 우리를 떠났다.
"그래서 조금 더 기다릴지, 다른 숙소를 안내받을지 정해야 해."
원래 한라산에 다녀와 힘든 몸을 이끌고 푹 쉬려고 예약했던 숙소였다. 나와 그 남자 모두 숙소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편이었지만, 그래도 고심 끝에 고른 숙소였다. 조용한 바닷가 마을 앞에서 산책하고 러닝 하는 그림을 그리며 예약했었는데, 전신주가 쓰려졌다니! 너무 당황스러웠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건 그 남자도 마찬가지였다. 푹 빠져서 읽던 책도 덮어두고 나와 그 남자는 각자 하루를 잘 넘길 숙소를 알아보았다.
해당 숙소에서 차선책으로 제시한 다른 숙소는 우리가 결제한 금액보다 적은 금액으로 이용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어차피 시장에 들러 저녁끼니를 챙기려고 했으니, 시장 근처 숙소를 잡아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빠, 우리 그럼 시장 근처 숙소를 잡는 건 어때?"
"어차피 시장에서 음식 사서 그 숙소로 넘어가야 했으니, 이 근처 숙소 잡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게 더 좋은 것 같아!"라는 말로 우리는 지금의 상황을 위로하고 넘어갔다.
오히려 숙소가 바뀌어 좋은 점이 많았다. 제주항이 보이는 숙소였는데, 고급진 숙소는 아니라도 꽤 만족스러웠다. 저녁 산책하기에 알맞았고, 인근에 맛집이 있어 오전에 웨이팅 없이 한 큐에 맛집에서 식사를 해결할 수 있었다. 또 인근에 관광지가 꽤 있었는데, 무료로 운영되는 공영주차장도 발견해 여러 군데를 관광해도 주차비가 없으니 오히려 더 좋았다.
숙소 위치가 애매했었는데, 변경된 우리의 일정에 맞게 숙소를 바꿀 수 있다니! 그것도 더 저렴한 곳으로! '오히려 좋아'를 외치며 우리는 새롭게 예약한 숙소에도 아주 만족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렇게 나와 그 남자는 또 금방 긍정적인 생각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우도로 향하는 배를 타러 성산항으로 향하는 길에 독립 서점에도 들렀다. 작은 섬인 우도에서는 해가 지면 크게 할 일이 없다고 들었다. 그래서 조용한 동네에서 책을 읽으면 좋을 것 같아 각자 관심 있는 분야의 책을 골라 구매했다. 그 후 성산항으로 다시 향하는 길에 또 아름다운 길을 발견했다. 그곳은 유채꽃 밭이었다. 둘째 날처럼 우연히 들른 한적한 길에서 우리는 늘 아름다움을 발견했고 행복한 기분을 만끽했다.
우도에서는 하루만 묵을 예정이라 짐을 간소화시켰다. 마침 한라산에 가기 위해 가져온 배낭도 있겠다, 배낭에 하루치 필요한 용품들만 간단히 챙겼다.
[칫솔, 치약, 세면용품, 속옷, 얇은 잠옷]
그것이 우리가 4박 5일 동안 사용할 유일한 용품일지는 모르는 채...
"지금 우도 들어가면 3일 동안 배가 안 뜰 수도 있어요."
성산항 티켓판매소 직원분께서 말씀하셨다.
"예보 상으로는 그런데, 뜰 수도 있고 안 뜰 수도 있고. 일단 알려드려야 해서 알려드려요."
내일 돌아와야 비행기를 타는데? 내일 돌아와야 출근하는데?
"설마 진짜 배가 안 뜨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