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없는 섬

그 남자와 우도에 고립되다

by 지윤
[지난 이야기]
(중략)
"지금 우도 들어가면 3일 동안 배가 안 뜰 수도 있어요."
성산항 티켓판매소 직원분께서 말씀하셨다.
"예보 상으로는 그런데, 뜰 수도 있고 안 뜰 수도 있고. 일단 알려드려야 해서 알려드려요."
내일 돌아와야 비행기를 타는데? 내일 돌아와야 그 남자가 출근하는데?

"설마 진짜 배가 안 뜨겠어?"


나와 그 남자는 그럴 일이 없을 거라며, 배가 안 뜨기 전에 나올 생각으로 그렇게 우도에 가는 배에 몸을 실었다. 렌트했던 차는 성산항에 주차해 두고 뚜벅이로 우도여행할 것을 기대하며 입도했다. 우도 여행이 처음이라는 그 남자와 설레는 우도 여행을 시작했다. 예약해 둔 숙소로 걸어가는 길의 풍경은 정말 아름다웠다. 땅콩밭과 청보리밭이 끊임없이 펼쳐졌고, 간간히 마을버스 몇 대가 지나갈 뿐, 시끄러운 차량의 소음이나 관광객 무리가 보이지 않았다.

'이게 바로 섬의 매력이구나. 우도 오길 참 잘했다.'

사람이 생각보다 더 많이 없었지만, 나는 배가 안 뜰 거라는 생각을 애써 무시하며 지금 당장 즐거운 것에만 집중했다. 그 남자는 나에게 무선 이어폰 한쪽을 끼워줬고 숙소로 가는 동안 우리는 함께 노래를 흥얼거리며 걸었다.

"드라마에서 자주 나오잖아. 일부러 섬에 가서 배가 끊기기를 기다리는 장면. 내일 배가 안 뜨는 것도 좋겠다. 이제 오빠랑 나는 갇힌 거야."

실제로 갇힐 것이라는 생각은 뒤로하고 나는 그저 행복함에 휩쓸려 우스갯소리만 늘어놓았다.




숙소로 가는 길에 하나로마트가 있었다. 그곳에 들러 저녁 바비큐를 위해 장을 보았다. 장을 보는 일도, 숙소로 가는 길도 모두 행복이었다. 숙소 사장님은 무척 친절하셨고, 바깥으로 난 창문을 통해서는 저 멀리 비양루가 보이고, 가까운 바다와 여러 종류의 밭, 현무암, 야자수 등으로 아름다운 전경을 볼 수 있었다.

"우리 숙소 잘 잡았다 그렇지?"

비바람 쳤던 제주도 본섬과 다르게, 그날 우도의 날씨는 쾌청했다. 그 남자와 손을 잡고 걷는 모든 길이 꽃길처럼 느껴졌다. 멀리 보였던 비양도까지 러닝을 하기도 했는데, 그 남자에게 한 번 더 반해버렸다. 꽤나 빠르게 뛴다고 생각했던 나인데, 그 남자에 비해 나는 그저 열심히 뛰는 개미 같았다(개미야 미안해). 그 남자는 껑충껑충 뛰는 기린 같았다.


KakaoTalk_20250212_132522241.jpg 첫날의 아름다웠던 숙소 전경


숙소로 돌아와 그 남자가 맛있게 구워주는 흑돼지를 먹었다. 그간 제주도를 여행하며 있었던 이야기를 주고받고, 또 서로 몰랐던 부분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며 그날의 밤이 무르익었다. 그 남자가 보고 싶다던 밤하늘에는 손톱만 한 작은 초승달이 떴고, 그 옆엔 노란 금성이 나란히 있었다. 그렇게 여행의 낭만을 함께 즐기고 있던 중 숙소 사장님께서 바비큐 장에 들러 말씀하셨다.

"그게, 내일 배가 안 뜰 수도 있어요. 내일 배가 끊기면 3일 간 배가 안 뜬다고 하니까 아침 배 뜨면 바로 타고 나가야 할 거예요."

맙소사. 배가 안 뜰 수 있다는 말이 현실이 될지도 모르겠구나. 우리는 내일 첫 배인 오전 7시 30분 배를 타기로 약속하고 잠에 들었다.




"나 오늘 가위에 눌린 것 같아."

"숙소 냉장고 가동하는 소리 있지, 그게 계속 신경 쓰였나 봐."

그 남자가 말했다. 무서운 이야기를 듣는 것조차 싫어하는 나는 무서움과 측은함을 동시에 느꼈다. 함께였지만 푹 잘 수 없었다니 속상했고, 무서운 기분에 얼른 이곳을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이 밝아 짐을 싸고 오전 6시에 나설 채비를 했다. 숙소와 항구 사이는 거리가 꽤 되고 우리는 걸어가야 하므로 미리 항구에 전화를 걸어보기로 했다.


"우도 천진항 대합실입니다. 금일 이 시간 현재 해상의 기상특보가 발효되어 도항선 운항이 중단되었습니다. 이용객 여러분께서는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믿어지지 않는 현실에 수차례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녹음된 멘트만 반복적으로 흘러나올 뿐이었다. 나와 그 남자는 우도를 꼭 나가야만 했다. 우도를 나가지 못하면 오늘 육지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탈 수 없고, 렌터카 반납도 어렵다. 그리고 내일 그 남자는 출근을 해야 한다. 더군다나 하루도 아니고 사흘이나 배가 뜨지 않는다니, 배가 뜨지 않는 게 현실이 된다면 해결해야 할 일이 너무나도 많았다. 우리에겐 간소화된 1박의 작은 짐밖에 없었다.


"우리 이제 어떡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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