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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메랄다 Jan 31. 2024

잠이 오지 않는 날

왠지 속이 상한 날은 맛있는 제철음식을 먹어요

나는 특별히 능력이 좋은 사람과는 거리가 머나먼,  보통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고, 감정과 타인의 평가에  잘 휘둘리곤 하기 때문에

일을 할 때 종종 "난 왜 이것밖에 못할까" 속이 상할 때가 꽤 많이 있다.


아이가 다른 아이보다 늦는 걸 알면서 좀 더 부지런 떨지 못하는 엄마로서의 내 모습이 영 탐탁지 않을 때도 있고,

누가 알아주는 일이 아니라 주어진 의무로 쳇바퀴 돌듯

수업을 나가고,  집안을 닦고 먹을 것을 준비하고 빨래를 하고  아이를 돌보다 한없이 지쳐버리고 만다.


스스로에게 만족하고 싶고, 그만큼 노력하고 싶은데

어째 짬이나도 수업을 위해 영어공부를 하기 쉽지 않다.

아이에게 공부하는 습관과 좋은 생활 습관을 들이는데 엄마로서 지도력과 계획성이 미숙한 부분이 많고, 집안일 이자 노동인 살림에 대해 누군가에게 감사는 받기 무척 힘들다.

오늘은 괜히 모든 감정이 동시에 밀려와 내 일상이 섭섭하고 속상하다.


아, 바다보고 싶네.


그렇다고 미혼일 때처럼 다 내려놓고 잠시 몸만 쏙 빠져나갈 수도 없다. 아니 오히려 더 바지런히 빨래를 돌려 널고, 바닥도 반짝반짝 닦는다.

어느새 유치원에서 돌아온 아이와 빵집에서 빵을 먹고 ,  반찬 세 팩과 몇 날며칠 먹고 싶던 과메기도 함께 반찬가게에서 구매를 했다.


아이는 비빔밥, 나는 과메기를 배추쌈 위에 쪽파 마늘을 넣고

 초장을 찍어 아삭아삭 베어 먹는다. 아직 아이가 자지 않지만 슬쩍 차가운 맥주도 한 모금 홀짝인다.

고소하고 쫀득한 반찬가게 과메기를 꼭꼭 씹어 한팩 다 먹었다. 아 맛있다. 소소한 행복감이 은은히 맴돈다.


아이 목욕 후 양치는 간식이나 과일 다 먹고 자기 전에 시키는데 , 내가 먹은 마늘향이 이상한지 아이가 깔깔대고 웃길래 나도 괜히 입으로 바람을 불고 잡으러 다니는 장난을 쳐본다.  함께 웃으니 또 한결 행복해진다.

우린 양치를 하고 침대에 누웠고 아이는 곧 잠이 들었다.


나는 쉽사리 잠이 들지 못했지만 맛있게 좋아하는 걸 배불리 먹은 터라 속상한 마음은 어느 정도 사그라들어 있었다.

"내일은 운동을 가고 영어도 세줄만 외우고 조금 더 나은 기분으로 하루를 맞이해야지."

생각해 보니 곧 제철이 지나갈 과메기를 먹은 건 오늘 참 잘한 일이다.

일 년 동안 후회할 뻔한 일을 막았다고 해야 할까.

역시 달달한 디저트나, 배 향이 향긋한 차 한잔을 마셔도 기분이 좋아지지만 , 고소한 제철 과메기 같이 맛있는 걸 먹으면 나는 기분이 조금 더 좋아진다.

글을 썼더니 또 조금 기분이 좋아졌으니까

자고 일어나면 내일의 나도 조금 더 행복한 하루를 선택할 힘이 생겼으리라 믿어본다.


혹시 별 이유는 없는데 속상하다면, 먹고 쓰고 자는 걸로 조금은  위로가 되니까 혼자 슬퍼하지 말고 맛있는 거 드셔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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