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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메랄다 Jul 13. 2022

당근이 필요해

인생의 작은 장애물들은 여기저기 널려있다.

나는 오후에는 문화센터 영어 발레 수업을 하고, 오전에는 영어유치원, 놀이학교 , 국제학교에서 정규 PE( physical education) 수업과 발레 특강을 진행하고 있다.  

이번 학기에 내가 만나는 아이들은 대략 200명 정도가 된다.

백명의 사람에게 백개의 마음이 있듯이 아직 어린아이들도 그러할 것이다.


어느 날 수업에서 있었던 일이다.

여자아이 한 명이 강당을 울기 직전의 표정으로 들어와서는

수업 시작 후 기본 동작조차 따라 하는 둥 마는 둥 곤란한 표정으로 서있다.

승패가 갈리는 게임을 시작하자 슬며시 내 옷자락을 잡는다.


이제 고작 여섯 살인 아이가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서, 그날 하루 친구들 하는 걸 참관하도록 했다.

그런데 그다음 주, 그다음 주에도 참관을 하겠다고 하길래 나는  아이에게 미션을 주었다.

수업 활동 중 가장 중요한 메인 활동 한 가지는 꼭 하고 갈 것.

겨우 나와 약속을 한 아이는 활동 한 가지를 잘 마치는 듯싶더니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난감했다. 놀이처럼 몸을 움직이는 활동은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수업이고, 선택과목도 아닌 정규 수업을 매번 참관하도록 해 줄 수는 없다.

아이에게 꼭 필요한 수업을 특별한 사유 없이 빠져도 된다고 가르치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울음을 그친 아이에게 가서 물었다.

"왜 눈물이 나는지 선생님에게 이야기해줄 수 있을까?

"...."

"뭐든 얘기해도 괜찮아. 선생님이 도와주고 싶어서 그래"

"할게... 너무 많아요.."


영어 유치원은  특성상 아무래도 공부할 것도 더 있을 테고 아이가 요즘  힘들었구나... 하고 생각하는 찰나 아이가 말을 덧붙인다.


"선생님이 계속 춤추자고 하고 앉았다가 바로 일어나라고 하고 점프하라고 하구......"

"응...????"


일주일에 한 번 30분.

즐겁게 뛰어놀기 위한 몇 가지 안전규칙만 지키면 되는 수업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몸을 움직이는 것 자체가 눈물이 날 만큼 큰 스트레스였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나는 어떤 방식으로 아이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돌릴지 고민이 되었다. 

눈물까지 나다니 적응 시간이 조금 걸리겠구나, 생각했다.


한주가 지나고 아이와 원에서 마주치면 내가 먼저 알은체를 하며 더 반갑게 인사하고, 괜히 머리도 한 번씩 쓰다듬어 주었다. 수업 중 활동 한 가지는 내가 아닌 본인이 스스로 선택하게 해 주었다. 작은 점프라도 성공하면 눈으로라도 아는척하고, 엄지 손가락을 추켜올려 보였다.

개인적으로 아이들에게 채찍을 용납할 수가 없는 이유는

대부분 당근과 진심을 담은 대화 후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긍정적으로 변하는 걸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반년이 지나고 아이는 여전히 조용하고 수줍음이 많은 7세가 되었다.


얼마 전 한 명씩 차례차례 점프를 하는 시간이었다.

이제 얼추 두어 번씩 고 마치려던 참에 그 아이가 소리쳤다.


"선생님 전 아직 한 번밖에 못했어요!!"

듣던 중 반가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눈물 날만큼 힘들고 싫던 수업을 아이는 스스로 참여 요청을 할 만큼 적응해낸 것이었다.

일곱 살의 아이가 나름의 관문 하나를 넘어가는걸

목격하는 것은 이 직업의 보람이자 기쁨이다.


나는 수업을 마치고 담임선생님께 이 이야기를 전달드렸다.

담임선생님께도 아이의 어머니에게도 진한 칭찬을 듣게 해주고 싶었다.

상장을 만들어 주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

"몸도 마음도 쑥쑥상"


물론 드라마틱하게 딴 아이가 된 것처럼 수업을 참여하는 것은 아니지만, 토끼 같은 아이가 슬픔 가득한 눈으로 수업을 힘겹게 따라가는 얼굴 대신 옅은 미소를 순간순간 볼 수 있게 되었다.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내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예닐곱 살 무렵 유치원에서 발표회 준비를 했었는데 머리 장식으로 금색 머리띠와  은색 머리띠를 두 그룹으로 나누어 주었다.

크레파스에도 금색이 가장 먼저 있고 금색이 더 멋진 색인데 은색 머리띠를 받고 신나던 기분은 온데간데 없어져 버려 하던 동작을 멈춰버렸다. 섭섭한 마음을 혼자 다스리기에 나는 너무 어렸다.

나의 선생님은 나를 꼭 안고서 "사실 은색이 진짜 멋진 색이라 준 건데 역시 너무나 예쁘구나."라고 하셨는데 그 말을 듣고 나는 다시 즐겁게 율동을 했다.

삼십여 년 전의 일이지만 나는 아직도 그 일을 기억하고 있다.

선생님은 쉽게 달래 져서 다행이야 싶으면서도 "저 단순한 녀석", 하고 귀여워하시지 않으셨을까.


만약 그때 선생님이 "다른 친구들처럼 받은 대로 하지 그러니."라고 쌀쌀맞게 이야기했다면 조금  의기소침한 아이가 되었을 수도 있고, 이런 소소하지만 기분 좋은 기억들도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경험의 기억은 인생의 힘이 되어주니 소중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아이나 어른이나 역시 채찍보다는 당근, 재촉보다는 기다림이 약이라고 믿는다.

물론 쉽지는 않지만 아이들은 자라서 어른이 되고, 이런 기억이 많을수록  아이들에게 조금 더 너그러운 어른이 될 가능성이 높아질 테니 노력해볼 만하다.


그런데 어려운 파트는 스스로에게 올바르게 당근을 주는 법이다. 나는 엄청난 주당으로 그동안 당근 ="오직 술. 술 그리고 또 술"이었다. 거의 매일 밤 아이가 잠든 뒤 두 시간 정도 방구석에 앉아 술로 마음을 달랬다.

술은 나의 벗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고 우리는 이별할 수 없는 사이이지만 최근 횟수를 3분의 1 정도로 줄였다. 나의 당근에 취미 발레와 글쓰기가 추가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건강한 선택을 스스로 하기까지 십 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인생이란 오묘해서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 쓸만한 당근을 받기도 하는 모양이다.

그러니 인생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며 한 번쯤 살아볼 만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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