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오늘 회사에서 충격적인 일이 있었어.”
남편이 설거지를 하다 요리하는 나를 흘끗 보며 무심하게 말했다.
어지간해서는 <충격> 같은 단어를 잘 쓰지 않는 남자라 긴장하며 이유를 물었더니,
“회사에서 나가래.” 툭 던진 한마디.
남편이 육아휴직에서 복직한지 두 달 만의 일이었다.
아직은 남자의 육아휴직이 사회에서 그다지 반겨지지 않는 일이란 건 알고 있었지만.. 바로 이렇게 내친다고..? 복직 후, 두 달 동안 남편의 회사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복직하자마자 팀장은 자주 회식에 불러서 술을 먹이며 ‘잘리기 싫으면 똑바로 해야 된다’는 경고 어린 말을 수없이 반복 해댔고, 급박한 보고서를 쓰게 하는 통에 퇴근하고 와서도 밤마다 노트북을 켜고 보고서를 쓰던 그였다. 다행히, 보고서가 잘 통과되어 한숨 돌리고 있던 차에 권고사직 명단에 떡하니 본인의 이름이 들어가 있더란다. 격동 어린 두 달간의 시간을 보냈었는데 결과가 이거라니..
“아, 어차피 잘 됐어! 여보 사진가가 되고 싶다고 했잖아. 회사 그만두고 정말 좋아하는 일을 시작할 기회인 것 같아.”
어른스럽고 남편을 응원해 주는 멋진 여성인 양 아무렇지 않게 남편에게 말해주었지만, 속으로는 앞으로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한 움큼 올라왔다. 노산 인지라 우린 마흔 동갑이었다. 더욱 열심히 돈을 벌어야 하는 나이 같았다. 하지만, 마흔이기에 지금이 아니라 더 늦게 뭔가를 새로 시작하기란 어려울 것 같기도 했다.
남편은 10년 넘게 회사원으로 일해왔다. 이직에 이직을 거듭하며 대기업에서 일하고 있었지만, 사실 그의 적성과는 맞지 않는 일이었다.
육아휴직을 함께하며 우리는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복직 이후, 나도 남편도 굉장히 힘들었지만 아이를 낳은 것과 육아휴직을 같이 했던 일은 정말이지 일말의 후회도 없었다. 육아휴직을 하는 동안 우리가 나눈 대화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내용이 많았다. 어떤 삶이 행복한 것인가, 우리는 그럼 어떻게 살아가야할 것인가 하는.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디자인 작업을 주로 하는 나에게 사진 작업 요청이 들어왔었다. 남편이 취미로 쓰는 조그만 카메라가 있길래 별 생각없이 "동혁아 사진 찍을 수 있지~? 내가 디자인할께!" 했던 것이 남편의 적성을 찾는 첫 열쇠가 되었다.
그 후로는 일부러 사진 프로젝트를 받아서 같이 진행을 해봤다. 남편은 사진을 찍으며 너무너무 행복해했다. 사십 평생 자신의 적성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아왔는데 적성을 찾은 것 자체로도 정말 기쁘다고 했다. 하지만, 아기도 태어난 마당에 회사를 그만둘 수는 없으니 언젠가 먼 미래에 사진가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런 그의 꿈을 시작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말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가 행복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 배우자가 행복해야 나도 행복할 수 있으니 그건 나를 위한 일이기도 했다.
남편의 권고사직 후, 이제 딱 1년이 지났다.
그간 내가 바라본 남편과 그가 꿈을 이루어가는 과정을 앞으로의 글에서 담아보려 한다.
그 꿈은 현재도 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