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 과정은 나름 틈틈이 기록해둔 것이 있어서 막힘 없이 쓸 수 있었는데, 정작 출국부터 되짚어보자니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그리고 얼마만큼 어떻게 이야기를 풀까 싶어 고민하느라 한 주가 쏜살같이 흘렀습니다. 그 사이 새로운 한 달이 시작되었고, 지나는 길에 벚꽃 구경도 했고, 진정한 새해를 맞이하기도 했죠ㅎㅎ 이런 저런 일들과 함께 마음이 싱숭생숭한, 봄입니다.
어학연수 블로그를 쓰기 위해 당시에 남겨둔 사진이나 글들을 다시 읽는데, 한 번 시작하면 추억이 끝도 없이 밀려드네요. 가기 전에도 여럿 들었지만, 정말 "이 기억으로 평생을 살 수 있다"라는 말이 사실인 것 같아요.
제가 말이 정말 많은 편인데, 블로그에서도 고스란히 그 성격이 드러나네요. 모쪼록 즐겁게 봐주시면 좋겠습니다ㅎㅎ
대한민국에서 몰타까지의 직항 항공편은 아직까지 없어요. 그래서 저는 먼저 인천 공항에서 이스탄불로 가는 비행기를 12시간 정도 타고, 이스탄불 공항에서 2시간 반 정도 대기 후에 경유해서 비행기를 2시간 반 더 타고 몰타로 들어가야 했습니다. 총 17시간의 긴 여정이었죠.
인천공항까지는 부모님이 차를 타고 데려다 주셔서 수속까지 함께 밟았어요. 그런데 인천공항에서부터 이슈가 자잘하게 발생합니다.
저는 짐을 좀 많이 싸긴 했어요. 일단 옷을 많이 챙긴 것 같아요. 당시가 1월 중순 무렵이었으니 몰타는 15도에서 20도를 웃도는 날씨였습니다. 패딩만 안 챙겼지 겨울 옷, 여름 옷, 봄 옷에 자켓까지 여러 벌 챙겼더니 캐리어가 아주 빵빵했었죠. 그리고 저는 한식 애호가는 아니었지만 어머니께서 전투 식량이나 밀키트 같은 걸 저 모르게 가방에 엄청 넣어주셨어서ㅋㅋㅋㅋ 집에서 캐리어 무게를 따로 안 재보고 일단 가서 봐야겠다 하고 공항까지 끌고 갔었는데요.
그냥 막연하게 얼마 안 넘을 거라고 생각하고 갔다가 무려 22키로나 오버되어서(규정은 40키로였어요.) 체크인 카운터에서 52만원을 추가 결제했습니다…. 하하. 이후론 캐리어 저울을 구매해서 출입국 할 때마다 무게 꼬박꼬박 재게 되었다는 교훈적인 이야기입니다.(슬프니까 꼭 경험해야만 아는 거냐고 하지 말아주세요ㅠ)
그 뒤에도 시간이 늦어 식당가가 전부 문을 닫아 부모님과 마지막 식사로 쉑쉑버거를 먹고 헤어진 일이나, 출국장에 들어가고 나서 들고 있던 가방 지퍼가 터져 몰타 기숙사에 도착할 때까지 활짝 열린 가방을 어찌저찌 짜매며 갔던 일들도 있고요……. 이스탄불 공항에서 경유를 기다리는 동안 화장하는데 마땅히 거울로 쓸 게 없어서 아이패드 동영상 셀피 모드로 켜놓고 했더니 지나가는 외국인들이 저를 K-유튜버로 착각했는지 기웃기웃 거리기도 했어요 재미있었죠.
왜 내게 이런 일들이? 싶다가도 그래~ 이게 다 컨텐츠다. 하며 겸허히 받아들입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썰을 푸는 날도 오는 거죠 하하하.
몰타로 들어가는 비행기 안에서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봤답니다.
바로 <맘마미아!>를요.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맘마미아는 아바의 노래들로 구성된 작품이잖아요. 유럽에서는 거리에서 아바 노래가 들려오면 함께 춤추고 노래하는 게 일상적인 분위기라는 걸 알고 난 뒤로는 그게 너무 기대됐어요. 실제로 그걸 많이 겪어봐서 행복했어요.
Life is short, the world is wide, and I wanna make some memories.
영화를 보면서 유독 마음에 새겨졌던 문장이에요. 새로운 세상으로 잔뜩 기대를 안은 채 날아가는 중이었으니 상황에 정말 딱 맞았죠.
제가 몰타에 도착하고 나서 가장 먼저 연락한 사람은 가족도, 어학원 사람도 아니었어요. 바로 제가 가르치던 초등학생 아이들이었습니다ㅎㅎ. 저는 성당에서 초등부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하다가 휴임을 하고 어학연수를 다녀왔거든요. 제가 출국하던 날이 토요일이었는데, 몰타에 도착한 시간이 마침 한국 시간으로는 아이들이 집에 갈 시간 무렵이었어서 타이밍이 잘 맞아 아이들에게 온 연락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리며 아이들과 영상 통화를 하는데, "선생님 입국 심사 탈락해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면 좋겠다" 라는 이야기를 왕창 들었어요. 17시간 걸려 왔는데 몰타 땅도 한 번 못 밟아보고 다시 돌아오라니. 초등학생의 그 솔직한 마음이 참 재미있고 고마웠죠ㅋㅋㅋㅋ 덕분에 시작부터 든든하게 응원 받은 것 같았어요.
아이들의 바람과는 다르게 입국 심사를 무사히 통과하고서는 입국장으로 나와 보니, 제가 다니기로 한 AM어학원 직원이 제 이름이 적힌 팻말을 들고 서 있었어요. 제 이름뿐만이 아니라 다른 이름이 적힌 종이도 한 장 더 들고 있었는데, 그 이름도 한국인의 것이라 잠시 당황했었죠. 한국인이 많은 학교면 안되는데, 하는 생각을 했어요. 기껏 영어 공부하러 왔는데 한국인들 많은 학교라면 보람이 없을 것 같았거든요. 곧 그 한국인 분도 나오셔서 어색하게 인사를 하고, 같은 차량에 탑승했어요. 어학원 기숙사까지 가는 내내 대화가 오가진 않았습니다. 그렇게 저는 슬리에마에 위치한 제 기숙사에 먼저 도착해 짐과 함께 내렸습니다. 분명 장시간 비행을 했는데 정작 몰타 기숙사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9시 무렵이었어서, 몰타에서의 첫날은 엄청 길게 느껴졌어요ㅋㅋㅋ
제 기숙사는 플랫2였는데, 유럽 건물의 1층은 우리 나라로 치면 2층이에요. 첫 층을 Ground floor로 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도 사실상 3층을 배정받았고, 안타깝게도 이 건물엔 엘리베이터가 없었어요…. 덕분에 62키로가 나가는 캐리어 2개를 쿵 쿵 쿵 끌고 올라가야 했답니다 하하하.
처음 기숙사에 들어갔을 땐 남자 한 명이 있었습니다. 아시안이었는데, 스타일로 보아 한국인 같진 않았어요. 다행이라고 생각했죠. 여러 친구들을 만나고 싶다고는 생각했지만, 처음 만난 상대부터 유러피안이었다면 조금 낯을 가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아시안이면서 영어를 사용해야 하는 상대를 만났으니 친숙함에 안도했습니다.
저를 기숙사로 안내해준 인턴에게 간략한 설명을 듣고서, 입주 신고서 같은 것에 싸인을 했어요. 인턴이 사라지고 난 뒤에야 그 아시안 남자와 인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커피 마시겠냐고 물어보길래, 부탁한다고 말하고 식탁에 앉아 함께 담소를 나눴습니다.
일본에서 온 사쿠군은 작년 10월부터 이미 4개월 이상 몰타에서 거주한 선배님이셨어요. 처음엔 제가 장난삼아 센빠이라고 불렀던 기억이 나네요ㅎㅎ. 그 집에는 방이 3인실과 2인실이 있었으니 총 5인까지 살 수 있었는데, 같은 층에 살던 플랫메이트들이 모두 고국으로 돌아간 뒤로는 새로운 사람이 아무도 들어오지 않아 사쿠군은 거의 한달을 혼자 살았다며 이제 막 이곳에 도착한 저에게 연신 고맙다고 했어요. 저는 5월 말까지 몰타에 있을 예정이었는데, 사쿠군은 3월 초에 일본으로 돌아간다고 해서 그 기간 동안 잘 부탁한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앞으로 이야기할 일이 많겠지만, 저는 유독 해외에서 일본인 친구들을 많이 만난 케이스입니다. 그리고 사쿠군은 제가 만난 모든 일본인 중에 두 번째로 잘생긴 친구였는데, 성격이 참 웃겼어요ㅋㅋ. 갑자기 기타를 매고 등장하질 않나(무려 일본에서부터 가져왔답니다.), 트와이스를 좋아해서 고등학생 때 콘서트도 다녀온 적이 있다며 티티를 부르며 춤추질 않나. 개성 강했죠.
아니 그런데 이 학교 정말 어이없지 않나요? 제가 유교걸이라 그렇게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그러니까 이 기숙사에는 저와 사쿠군, 단 둘이 살게 되었습니다…. 적어도 새로운 플랫메이트가 들어오기 전까진요.
역시 유럽은 개방적인 곳인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아니근데아무리생각해도.뭐지?)
아무튼 잘 도착했다며 가족들, 친구들과 영상통화도 하면서 짐 정리를 하다 보니 어느덧 낮 시간이 되었고, 사진을 꼭꼭 보내달라던 초등학생에게 비행기 안에서 찍은 구름 사진부터 집앞 풍경 사진까지 전송해준 뒤 점심으로 짜파게티를 끓여 먹었어요. 그리고는 동네 둘러볼 겸 나와서 산책도 좀 하고, 바닷길 따라서 걷다가 웰비스라는 대형 마트에 가서 생필품을 사기로 합니다.
이 때!! 멍청이슈가 발생했죠. 그 때 웰비스 마트가 기숙사에서부터 도보 18분? 이 정도 거리였던 것 같아요. 오르막 내리막 언덕들도 참 많았구요. 그런데 저는… 그저 몰타에 도착해서 신난 마음으로 룰루랄라 마트에 갔어요. 빈손으로요. 카트에 물건들을 골라담을 땐 스스럼이 없었습니다……. 자주 먹을 것 같으니까 계란 한 팩 사고, 맛있어 보이니까 푸딩 한 팩 사고, 세일한다니까 음료 두 병 사고, 필요하니까 샴푸 린스 바디워시 사고, 두루마리 휴지 팩 사고, 2리터짜리 생수 6개(이거 진짜 무슨 생각으로?) 사고, 그냥 필요해 보이는 거 한 번에 다 사겠다는 마음으로 카트에 담을 땐 몰랐죠. 계산 할 때에나 깨달았습니다. 이거 어떻게 들고 가지?
…….
우선 비어있는 상자를 하나 주워서 물건들을 채워 넣었어요. 그리고 그걸 어떻게 들고 마트 밖을 나오는 순간. 그냥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아빠 보고 싶다.
여기서 자랑 하나를 하자면 저는 살면서 저희 아버지보다 가정적이고 다정한 남자를 본 적이 없어요. 제가 학생 땐 매일 밤마다 학원 끝나면 차로 데리러 오셨고, 낮에도 집에 계실 때 "어디 가는데 태워 줘" 하면 데려다 주시고. 자다가도 제가 배고프다고 하면 일어나서 과일 깎아주시고, 아무튼 딸래미가 해달라는 건 다 해주시는 슈퍼맨 같은 분이세요.
만약 한국이었으면 아빠한테 곧장 전화했을 텐데. 그럼 아빠가 곧장 차로 데리러 와서 이 짐은 죄다 트렁크에 싣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텐데. 도착한지 반나절도 안 되어서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근데 뭐 어쩌겠어요. 당장 여긴 지구 반대편 몰타라는 섬 나라이고, 여기서 나를 책임질 수 있는 건 정말 나 혼자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그냥 용감해지더라고요ㅋㅋㅋ 그 무거운 걸 들고 어떻게 어떻게 걸었어요. 아시안 여자애 혼자서 그 짐을 양팔로 겨우 들고 비틀비틀 가니까 친절한 현지인들이 몇 번 묻기도 했어요. 괜찮냐, 어디로 가냐, 도움 필요하냐 이렇게요. 괜찮다 고맙다 하고 가다가, 와 이거 절대 집까지 못 가겠다 싶은 거예요. 그래서 제가 내린 결론은. 그 생수 6개입 팩을 닫혀 있는 상가 건물 앞에 내려뒀어요. 마치 택배 발송된 것처럼. 제 딴에는 그렇게 생각하고 일단 내려두었습니다. 나머지 짐들 무게도 여전히 무거웠지만, 확실히 그 물병들을 내려두니 할만하다고 느껴지더군요. 그리고 그냥 무식하게 읏쇼읏쇼 집으로 날랐습니다.ㅋㅋㅋㅋㅋㅋㅋ
집에 도착하자마자 제 방에 짐이 담긴 박스를 내려놓고, 다시 잽싸게 계단을 내려갔어요. 누가 이미 가져갔다면 어쩔 수 없이 새로 사야겠다 라는 생각이었지만, 그래도 몰타 사람들을 믿으며… 읏쇼읏쇼. 다행히 2리터 물병 6개입은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있었고, 다시 그걸 들고 집까지 옮겼답니다. 물병만 들고 가는데도 정말 무겁더라고요. 정말…….
그렇게 두 번 왕복하고 집에 돌아오니 땀이 흥건했습니다. 참고로 제가 도착했던 날이 유독 더웠어요. 그 날이 20도였어서 도착하자마자 반팔로 갈아입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런데 집에 다시 돌아왔더니 캐리어와 함께 새로운 인물이 등장해 있었습니다. 이 남자의 이름은 츠바군. 몰타 어학원에서의 학업을 모두 마친 뒤 주변 유럽 국가로 여행을 다니다가 이제 막 돌아왔다고 했었죠. 분명 몰타에 온 건데, 집에서 계속 일본어가 들리니 묘했습니다. 저는 이때까지만 해도 일본어는 거의 알아듣지 못했거든요. 히라가나와 단어들만 조금 아는 정도였어요.
그리고 한국에서 챙겨온 콘스프로 저녁을 대충 먹었는데, 제 밥 그릇이 짱구 그릇이었거든요. 그래서 사쿠군에게 신짱 그릇이라고 보여주었더니 자연스럽게 오타쿠 토크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후에 사쿠군의 말에 의하면, 일본 남자아이들은 거의 모두 오타쿠다. 라고 하더라구요. 아무래도 어렸을 때부터 애니메이션을 수도 없이 많이 보고 자라서 그런가 봐요. 대화가 짱구에서 코난으로, 코난에서 점프로 넘어갔는데 전 애니메이션을 잘 아는 편은 아니라 몰랐지만 그때 사쿠군이 입고 있던 옷도 점프 만화의 콜라보 티셔츠라고 했어요. 그래서 저도 떠오른 게 있었죠. 바로… 한국에서 가져온 이 티셔츠를요.
이런 게 왜 있냐고요? 그냥 재미있잖아요. 저도 제가 오자마자 일본인들과 살게 될 거라곤 생각 못 해서 사쿠군을 보자마자 옷장 가장 깊숙한 곳에 이 티셔츠를 처박을 생각이었는데, 다행히도 사쿠군이 오타쿠라길래(ㅋㅋ) 하루만에 공개하게 되었습니다. 사쿠군은 한바탕 웃음을 터트리며 이걸 어디서 산 거냐, 사진 찍어도 되냐면서 제 사이키 쿠스오 티셔츠 사진을 왕창 찍어갔어요. 하하. 그 순간 느꼈죠. 얘랑 친해질 수 있겠다.
혹여나 시차 적응을 못하게 될까봐 첫날은 밤 10시까지 버티다 자러 들어갔어요. 그때까지도 거실에 나와있던 일본인 친구들은 저에게 "오야스미", 하고 인사를 해줬어요. 그러고 보면 사쿠군이 떠나는 날까지도 거의 매일 밤 이렇게 인사했던 것 같아요. 자러 들어갈 땐 굿나잇이 아니라 오야스미, 하던 게 습관이 되었던 나날들이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이르게 눈이 떠진 제가 한 일은 근방의 성당 찾기였어요. 제가 신앙이 아주 깊은 사람은 아니지만, 그 당시엔 출국 직전까지 빡빡한 성당 스케줄 사이로 아이들에게 사랑을 듬뿍 받고 왔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주일 미사를 떠올린 거죠. 집에서 12분쯤이면 도착하는 거리에 성당이 있다기에 미사 시간에 맞춰 나왔습니다. 날씨가 화창했고, 기분도 정말 좋았어요. 영어로 진행되는 미사였지만 앞쪽 모니터에 기도문이 영어로 적혀 있었기 때문에 따라 읽는 데에 지장은 없었습니다.
미사가 끝나고 성당을 나왔더니, 큰 길 쪽에 정말 파란 바다가 보였습니다. 정말, 그야말로 지중해였죠. 홀린듯이 그쪽으로 내려가 바닷가로 나왔습니다. 바닷가를 따라 산책로가 길게 나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일요일 아침의 여유를 만끽하며 산책하고 있었습니다. 산책로 쪽에서 내려다 보니 파도 부서지는 모양이 너무 예뻐서, 더 가까이 다가가서 보고 싶단 마음에 계단 아래로 내려가려던 참이었어요.
물컹, 했죠. 혹시 이 감각을 느껴보신 분이 또 계실지 모르겠네요. 불행히도, 저는 이 감각을 알고 있었습니다. 학생 때도 한 번 경험해본 적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발 아래를 보기 전부터 직감할 수 있었어요. 아. 개똥 밟았다.
출국하기 전에 산 새 운동화였는데 신고식 한 번 화려했습니다…. 여기서 앞으로 얼마나 좋은 일들이 생기려 이러나, 하고 생각하면서 바닷물이 고인 웅덩이에 한참 헹구었어요 하하.
그리고 가까이에서 본 바다는 정말 아름다웠어요. 제가 살면서 본 바다 중에 제일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아요. 실제로도 그 뒤론 어떤 바다를 보아도 엑실스 베이를 떠올릴 수밖에 없게 되었거든요. 특히 파도가 부서지는 순간, 새하얗게 튀어오르는 물 알갱이들을 자세히 보고 싶어 다가갔다가 바닷물 미스트를 잔뜩 맞아버려서 뒤에서 저를 보시던 아주머니께서 웃던 것마저도 생생합니다. 이 바다를 정말 좋아했던 큰 이유 중 또 하나는, 땅이 모래 사장이 아닌 바위란 점이었어요. 신발 밑창에 달라붙는 모래알이 없어서 참 좋았어요.
다시 집으로 돌아가자, 츠바군이 점심을 먹고 있었어요. 옆에 앉아 오는 길에 사온 딸기를 먹으면서, 어제 사쿠군과 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제가 사쿠군에게 일본어 비속어를 안다, 하고 "코롸-!!!!!!" 하고 외쳤을 때 사쿠군이 알려준 게 있었거든요.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쿠타바레 코노야로"라는 일본어를 제게 가르쳐주었던 사쿠군… 예, 제정신 아닌 놈입니다. 하하. (뒈져라 이런 뜻이라고 함 시누보다 격한 욕이라고ㅋㅋ;)
이거 욕이지? 사쿠군이 써도 되는 말이라는데 뻥인 거 안다. 하니 서른 살의 츠바군은 엄청 웃더니 저에게 설명해줬어요. 한국인인 내가 쓴다면 너 그거 어떻게 아냐고 웃겠지만 일본인이 일본인에게 쓰면 하아아아-?!?!? 하고 싸움날 만한 욕이라고ㅋㅋㅋㅋ 당연히 지금까지도 누군가에게 사용해 본 적, 없습니다.
점심을 먹은 뒤로는 또 딱히 할 게 없어서 집에 있다가, 저녁 무렵에 유학원 원장님의 초대를 받아 원장님의 숙소로 갔어요. 원장님의 몰타 출장 기간과 겹친 시기에 제가 몰타로 가게 되어서, 감사하게도 원장님이 엄청난 한식 파티를 열어주셨죠. 한식을 그리워할 틈도 없이 이틀만에 원장님표 부대찌개를 먹으며 같은 유학원을 통해 오신 한국인 분들을 몇 분 만났어요.
그리고 집에 갔더니…… 제가 몰타에 있는 게 맞나, 다시 의문이 들었습니다.
저희 집 거실에 일본인 남자 다섯 명이 둘러 앉아서 일본어로 수다를 떨고 있었어요.
뭐야?
어학원을 아직 가보지 못해서 국적 비율은 알 수가 없는 상황이었는데, 와서 본 외국인이라곤 인턴 빼고 전부 일본인이었으니… 제가 얼마나 황당했겠어요.ㅋㅋㅋ 심지어 저는 2인실을 사용했지만 제가 들어왔을 땐 룸메이트가 없었어서, 혼자 2인실 베드에 앉은 채 잠시 혼란스러했습니다. 어쨌든 다음 날 아침에 학교를 가 봐야 했으니 저는 일찍 자기로 결심했습니다. 세안과 양치를 마치고 자려 들어가는데, 남자 다섯이서 저에게 "오야스미"하고 인사해줬어요. 다시 생각해도 웃기네요.
그리고 셋째 날, 드디어 월요일이 되었습니다. 저의 첫 등교일이었죠.
기숙사 바로 앞 블록에 위치한 학교에 처음으로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매주 월요일 아침마다 새로 온 학생들을 대상으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 있다는데 저희 유학원 원장님께선 딱히 들을 필요가 없어서 안 알려주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오티에 가면 뭘 하는진 잘 모르겠지만, 안 들어도 지장은 없는 것 같습니다! 학원생들 몇백 명 이상 있는 단체 왓츠앱(졸업 후에도 나가지 않아서 쌓인 숫자인듯..)에 매주 신입생 사진이 올라오는 것을 보면서, 딱히 아쉽단 생각은 안 하게 되었어요. 나중 가서는 월요일마다 어떤 사람들이 새로 왔나 왓츠앱을 확인하기도 했죠ㅋㅋㅋ
보통 몰타의 어학원은 오전반과 오후반이 주로 있는 걸로 아는데, 제가 다닌 AM Language는 저녁반 수업도 있었어요. 4시 45분부터 8시까지 진행되는 수업이었는데, 낮에는 몰타에서 일하면서 영어 공부를 하는 친구들이 이 수업을 많이 들었습니다. 저는 수업 시간을 이른 시간대로 배정받고 싶었는데, 처음 학교에서 안내해준 수업이 바로 그 저녁 수업이었어요. 반은 pre-intermediate이었습니다.
일단 배정 받은 대로 다녀보자 싶긴 했는데… 첫날부터 지각을 했어요. 집에서 딱히 할 게 없어서 침대에 잠깐 누웠다가 그만……. 5시 반에 헐레벌떡 가방을 가지고 건너 블록에 있는 학교로 들어갔죠. 그리고 교실을 찾아 들어갔는데.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익숙한 얼굴이 저를 보고 어! 했어요. 사쿠군이었습니다. 저의 플랫메이트인 사쿠군이 알고 보니 같은 수업까지 듣는 친구였던 거예요. 정말 반가웠습니다 하하.
수업은 총 3시간이고, 1시간 반이 지나면 15분의 휴식 시간이 있었어요. 그 휴식 시간에 잠깐 학교 밖으로 나와 있었는데, 누군가 저를 불렀습니다. 저는 그 여성분을 한 번에 알아볼 수 있었어요. 몰타에 도착하자마자 공항에서 마주쳤던 한국인분이셨거든요. 간단히 자기 소개를 한 뒤 민양과 인스타 아이디를 교환했습니다ㅎㅎ
그리고 매주 월요일 저녁에는 학교에서 주최하는 환영회가 있었는데, 저는 여기에 엄청 가고 싶었어요. 막상 첫 등교를 하기야 했지만 첫날이라 그 누구와도 말을 별로 붙여보지 못해서 친구를 사귀지 못했거든요. 환영회에 가면 저와 같은 처지의 친구들이 있을 것 같아서, 그런데 혼자 가긴 싫어서…… 사쿠군에게 용기 내어 물었습니다. 웰컴 파티에 가고 싶은데, 장소가 어딘지 모르겠다. 같이 가줄 수 있겠냐, 하고요.
착한 사쿠군은 흔쾌히 함께 가겠다고 해주었고, 덕분에 저는 웰컴 파티에 갈 수 있게 되었답니다ㅋㅋ
그런데 웰컴 파티에 도착해 보니… 신입생들이 모여 앉은 테이블에 유독 아시안들이 많아 보였어요. 자리에 앉아 물어보니, 제 앞의 세 명이 일본인이라는 거예요. 하하하, 이런 우연이. 사실 몰타에 오기 전부터도, 여기에서 일본인 친구도 사귀게 된다면 좋겠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정말 일본인 친구들을 이렇게 많이 알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죠. 이건 시작에 불과하지만요.
그렇게 저는 그날 일본에서 온 아리양, 히나양, 미키군, 그리고 콜롬비아에서 온 미셸양까지 네 명의 친구를 새로 얻게 되었습니다ㅎㅎ 미키군은 어쩐지 낯이 익었는데, 자세히 보니 어제 저희 집에 놀러 왔던 그 일본인 남자 무리 중에 하나였더라고요. 친구들을 사귀고 대화를 나누면서 본격적으로 제 유학 생활이 시작되었다고 느꼈어요. 저는 참 운이 좋았죠. 가장 좋은 시기에 최고의 친구들을 만나 추억을 쌓았으니까요.
제가 친구들과 얼마나 특별한 하루 하루를 보냈는지는 다음 글에서 이어 적겠습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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