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는 팁이지
출근 시간대, 남부터미널 근처에서 콜을 받았다. 목적지는 '서울 만남의 광장 휴게소 부산방향'. 순간, 거기까지 갔다가 그냥 경부선 타고 부산이라도 내려가고 싶은 생각이 스친다. 이 시간대에는 돌아 나오는 길이 만만치 않으니까. 난 가맹택시라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 역시 택시는 운(運)이다.
승차위치에는 70대 정도로 보이는 손님이 커다란 골프백과 가방을 가지고 기다리고 계신다. 아마도 휴게소에서 일행분들을 만나기로 하신 모양이다. 짐을 트렁크에 싣고 차를 돌려 나오는데, 내비는 아파트 입구에서 우회전을 가리킨다. 손님이 "여기서 왼쪽으로 가주세요." 골목길이나 이면도로는 사실 내비보다는 승객이 더 좋을 길을 알고 있을 때가 많다. 길이 막혀 있는 경우도 있고 순간적으로 내비가 방향을 잘 못 잡고 있는 경우도 많다.
"네, 고맙습니다."라며 좌회전으로 골목을 빠져나온다.
"죽 가시다가 여기서 왼쪽, 어..., 여기선 오른쪽."
손님의 안내로 좁은 골목길을 수월하게 벗어나 남부순환도로에 들어서긴 했지만, 갑자기 세한 기분이 든다.
이제 직진을 하다 경부고속도로로 들어가면 되는데, "이제부터는 3차선으로 가세요. 저어기 신호등을 지나서 끼어들면 돼요. 오른쪽은 차가 많아요."
손님 내비게이션이 켜졌다. 방향뿐만 아니라 차선도 지정해 주신다. '요새 끼어들기 단속이 얼마나 심해졌는데, 글고 이건 얌체운전인데.' 물론 속으로만 삼키는 말이다.
"네, 이 길을 정말 잘 아시네요. 고맙습니다." 이게 내 입에서 흘러나온 말이다. 나도 이럴 때 보면 분명 겉과 속이 다른 인간이다. 내 머릿속과 그 결과로 나오는 말이 완벽하게 다르다.
이후 몇 번의 차선 변경 지시를 받고 무사히 휴게소에 진입했다.
"휴게소 안 어디로 가세요? 짐이 있으신데 일행분 계신 곳이 어디시죠?"
"4*** 차가 있을 거예요"하고 일행들이 있는 차량 번호를 알려주신다.
'음, 이 넓은 휴게소 주차장에 어딘가엔 있겠지. 그래도 여긴 지상만 있잖아.'
얼마 전 아파트 지하 주차장 105동으로 와달라는 분이 계셨다. 지하 1층 주차장에서 전화를 했더니, 지하 2층이란다. 쩝.
그에 비하면 만남의 광장 주차장은 한 바퀴만 돌아보면 되는데 몰.
다행히 대형 차량 주차장 한켠에 대절버스 한 개가 4*** 번호판을 달고 있었다. 버스인 줄 알았으면 좀 더 빨리 찾았을 텐데.
버스 가까이 내려 드리니 '수고하셨어요'라는 말과 함께 팁을 주고 가셨다.
현금으로 내시는 분들이 동전 거스름돈을 안 받으시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팁으로 현금을 주시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간혹 주시는 경우도 천 원, 이천 원 정도를 커피라도 한 잔 하세요라며 주시는 정도다.
근데 5천 원이다.
역시 우아함이 아우라처럼 뿜어져 나오시는 분들이 길도 잘 아시고, 안내도 품격 있게 해 주신다.
난 자본주의의 노예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