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꿈?그게 몬데

내게 글쓰기라는 건

by 채니아빠

얼마 전 핸드폰에 번인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내비게이션을 켜놓고 다니니 이 친구도 견디기 힘들었나 보다. 써니에게 번인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하며 화면을 보여주었다. 일하는데 필수템인데 어쩌지 하며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내니 새로 하나 장만하란다.
사실은 자세히 보지 않으면 번인인지 잘 모른다. 써니가 기계치에 가깝다는 걸 잘 알고 있는 나의 술수에 넘어간 지. 고마워, 써니.

매장에서 적당한 구형폰을 고르려고 하다가 매장 직원의 화려한 말빨에 넘어가 호갱이 됐다. 최신 폰을 덥석 물었다. 일할 때 쓸 건데, 밥벌이에 쓰는 장비인데 구형은 아무래도 무리가 있것지.
최신폰에 따라오는 건 항상 비싼 요금제이다. 6개월만 쓰고 이후엔 싼 요금으로 바꾸면 된다는 유혹에 빠져 덥석 최신폰을 들고 나왔다.

최신폰인데도 광고 문자가 수시로 날아온다. 최신폰은 AI 가 광고쯤은 자동으로 걸러주는 줄 알았는데.
그중에 내 눈길을 끄는 데 성공한 광고문자가 하나 있었다. **의 서재 무료 구독권. 비싼 요금제에 따라붙는 VIP 혜택이다.
회사 택시를 운행하기에 내게 주어진 시간은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12시간이다. 이중 대략 10~11시간 정도를 운전한다. 인사말과 꼭 필요한 말이 아니면 나는 손님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 손님들 역시 나와 거의 대화할 일이 없다. 모든 일에는 장단점이 있고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가장 큰 장점은 운전 중에 묵언수행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젠 어느 정도 길도 익숙해졌고 서울은 유난히 차가 막히는 곳이 많아 생각하는 시간이 많다. 한때는 음악을 틀어두곤 했는데, 이젠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고 오디오북을 주로 듣는다. 에세이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분야 중 하나이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삶에 나를 접목시켜 보기도 하고, 내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지혜도 얻는다. 운전 중에 잠도 깨고.

최근에 시작한 취미가 있다. 만년필 펜 드로잉과 필사. 새 취미를 시작하면서 '글과 그림'이라는 어릴 적 꿈이 스멀스멀 내 한 구석에 다시 피어났다. 그리고 타인의 글이 아닌 나의 글을 쓴다는 매력이 나를 사로잡았다.

단 한편 짧게 쓴 에세이로 브런치 작가에 도전했다. 되겠어? 될까? 되겠지? 까이꺼 안되면 어때. 그렇게 시작했는데 덜컥 내게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며 축하 메일을 보내왔다. 되면 어떻고 또 안되면 어떠랴. 그저 난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싶을 때까지 하고 싶은 만큼만 하면 되는 걸.

내 글과 그림 실력은 초등학교 시절 방학 숙제 이후 잊고 지냈기에 지금도 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어찌 보면 재앙에 가까운 실력이다. 낙서에 머무는 수준이긴 하지만 모 어떠랴. 그저 몰입할 수 있다는 게, 몰입할 수 있는 게 있다는 게 내겐 즐거움인데.

'작가님의 꿈'이라는 주제로 10주년 팝업 전시를 한단다. 내게 글쓰기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화두를 던져 주었다.

내겐 열심히 그리고 꾸준히 해서 무언가를 이루어야겠다는 생각은 없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적은 이 시점에 남아 있는 삶 동안은 그저 하고픈 걸 하고 싶을 뿐이고, 그게 무엇이든 최선을 다하고 싶진 않다. 한 번뿐인 인생이기에 최선을 다하라는 말을 수없이 들어왔고 그 방식으로 살아가려 애써 왔다. 앞만 보고 달리는 삶에 무슨 낙이 있겠는가, 옆도 보고 뒤도 보면서 길에 핀 꽃도 보고 하늘에 굴러가는 구름도 보고 해돋이와 해넘이도 보고 내 사람들과 내 발끝도 보면서 그리 살아가련다.

글쓰기가 내게 주는 의미는 나를 그리고 내 주변을 보게 하는 하나의 과정이기에 아마도 한동안 계속 쓰게 될 것 같다. 목표가 아닌 과정이기에 어쩌면 나는 시작함으로써 꿈을 이미 이루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또 다른 무언가를 찾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오늘은 하나의 글과 하나의 낙서로 나를 다시 알아가는 여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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