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달 아래
풀잎은 울고 나무는 뿌리를 놓아버렸다
빛은 문턱을 넘지 못해 바닥을 기어가고
비워 낸 마음이 무거워졌다
은밀히 숨은 달은
구석구석 핏빛을 칠했다
짖이겨진 꽃잎을 손톱 끝에 묶으면
달의 피부가 먼저 붉게 짓물렀다
그 색을 품기 위해
그리움으로 터질듯 부푼 너
나는 빛을 가로채
내 그림자 뒤에 너를 가둬야 한다
빛이 막혀야
가장 깊은 붉음을 품는다
가려져야 선명해지는 모순된 세상
달의 자취가
점선처럼 불확실해진다
우리는 그 선을 따라
사라지는 시간을 본다
불면이 어둠을 뒤척이는 사이
손톱에는 잔상처럼 붉게 물이 들고
비워낸 기억은
묵직해져
붉은 심연으로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