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이름이 없다면
우리는 서로를 무엇이라 부를까
손끝에 스미는 감각
수은주로 잴 수 없는 눈빛
바람결에 가라앉은
이름 없는 향의 비문(碑文) 일까
그렇다면 그 향은 매번 같을까
아니면 날마다 다른 향기로 기억해야 할까
어느 기억으로 각인해야
지워지지 않는 목소리
손끝에 머문 온기
눈빛 아래 숨은 무명의 울림이
이름을 대신할 수 있을까
어느 시인의 시처럼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도
향기로 기억되는 꽃이 될 수 있을까
이름 없이
존재만으로 꽃을 피워
무게 없는 향기로
바람보다 오래 머물 수 있을까
향이 흩어지고,
손끝의 체온이 증발하고
눈동자에 남긴 감정의 색마저 바래면
그제야
그저 하나의 이름으로
무사히 요약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