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 속의 안부는
노출된 철근처럼 쉽게 부식된다.
나무 사체를 석유로 길러낸 시간도 쉽게 표정을 잃는다.
진심은 매번 나무처럼 뽑혀 나가고
아이들은 잎 대신 막대그래프가 달린 나무를 그린다.
사람들은 공사 중인 표정을 짓는다.
완공일은 없다.
투명한 칸막이는 안전을 가장하고
자발적으로 감시당하는 자유는 해방처럼 포장된다.
하늘에선 바람 대신 수치가 내린다.
기상도는 감정 없는 숫자로만 갱신되고
사람 사이의 거리는 이제 ‘적정 거리’로만 표시된다.
가깝다는 건 선을 잘 긋는 기술,
말하자면 친절하게 멀어지는 방식이다.
‘괜찮아’라는 말도 정해진 맥박수에 맞춰 건넨다.
비효율로 분류되기 싫어서다.
슬픔의 원인이 없는 날, 그 감정은 치료 대상이다.
감정보다 해상도를 먼저 의심하고,
나보다 먼저 내 하루가 유통되는 세상.
진심은 사용 조건이 까다로워 재현 가능해야 진짜다.
누군가의 어깨 위에 기댄 마음은 정서 위반이다.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은 불법이라서.
“나는 나”라는 문장은 이제 애매해졌다.
너무 오래 바라보면 오해가 되고 너무 짧게 말하면 단절이 된다.
감정은 통계치 이상 보유 시 보고 대상이 된다.
감정이 섞이면 표정은 오작동한다.
사람이 가장 정확히 작동하는 건 오작동의 순간.
알고도 잊은 척한다.
감정은 폐기된 사용설명서다.
지금은 감정을 사용하지 않는 무표정사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