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nterior 生

by 짧아진 텔로미어

Planterior 生


카메라 앵글 속에 꽃을 가뒀다.

꽃은 하루를 꼬박 포즈를 취했다.

만개는 의무, 시듦은 벌이다. 죽은 건 프레임 밖이다.


잎맥은 보정되고 싱싱한 잎은 무조건 앞줄이다.

조명을 분칠 한 화분이 번쩍인다.

광합성도 촬영된다.


찰칵.

‘좋아요’가 빛보다 빠르다.


갈증은 관리 항목이 아니다.

물 주는 시간은 고정되어 뿌리는 시차를 배운다.

비를 맞는 건 바깥 식물의 일. 시차는 필요 없다.


태어난 곳은 숲이지만 기억의 시작은 화분이다.

베란다 크기만큼 허락된 生.

그 아래 자란 뿌리는 잘리는 꿈을 꾼다.


햇빛은 모든 생에 평등하지 않다.

투과된 채, 고정된 채, 숨은 기능이 된다.


뿌리는 뻗는 방향을 강요당했다.

보정된 생명의 침묵은 순종으로 오역된다.

꽃은 피는 대신 기준을 통과해야 한다.


꽃말은 붙박이 가구처럼 탈부착이 가능해졌다.


“잘 자라라”는 말은 종종 감옥의 문패다.

정성껏 돌려보내지 않기


돌려보낼 마음 없는 돌봄은 포획이다.

플랜테리어라는 이름으로 자립을 유예하는 기술이다.

때때로 철창보다 더 매끄러운 감옥이다.


그들은 단 한 번도 묻지 않았다. 어디로 가고 싶은지

숲은 너의 조국이었고 그들은 그 국경을 폐쇄했다.

숲은 이미 목적지에서 삭제됐다.


방향이 지워진 너는 귀국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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