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벗님들의 사연 2
글벗님들께서 나눠주신 소중한 각각의 댓글의 구절들로 [편지]라는 제목의
연작시를 써서 며칠 전 글벗님들의 편지 1에 올렸습니다.
전체 열여섯 분 글벗님 중 나머지 여덟 글벗님의 댓글로 쓴 8편의 연작시를
이어서 올립니다. 그리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최종 한 편의 시로 완성해보려고 합니다.
댓글을 남겨주신 글벗님들의 브런치도 함께 링크해 두었으니, 발걸음 하시어 따스한 글들을
만나보시면 좋겠습니다. 시는 댓글 주신 작가님 것이니 원하시면 가져가셔도 됩니다.^^
'P.S.' ....... 편지 끝에 꼭 너를 넣는 이유는...
-9-
P.S. .......
편지 끝에 꼭 너를 넣는 이유는
어제 본 영화가 너무 좋아서. 아침에 일찍 잠이 깨서. 길가의 은행나무 잎들이 노랗게 물들어서.
네일 아트한 손톱이 너무 예뻐서. 새로 산 신발이 잘 맞아서. 편지 글자 수가 997자여서 네 이름으로
1000자를 채우려고.
.
.
사실
그냥 널 사랑해서
너라는 닻을 내려 내 마음을 정박시키려고
글을 쓰며 데워진 온기를 네 이름으로 봉인하고 싶어서
네 이름이, 내 마음을 열 수 있는 P.S.의 비밀 번호라서
이 편지를 닫고도 너게로 흐르는 시간이 닫히지 않았으면 해서
누군가에게서 받은 첫 문장 "잘 지내고 있니?"라는 말에 울컥 울었던 기억이 나네요^^
마음과 함께 보낸 안부인사가 그 어떤 말보다 감동이었던 편지였어요^^
너의 마음과 함께 온 안부인사가 내 맘에 녹아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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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은
반려 슬픔을 키웠지
내 곁만 졸졸 따라다니는
잘 지내고 있니?
겨우내 얼은 길을 한 걸음씩 걸어 온
너의 첫 문장
너의 마음과 함께 온 안부인사가
내 맘에 녹아드네
네 뒤에서
조용히 햇살을 주우며 따라온
따스한 안부에
왈칵
내 마음이 녹아내렸다
"편지는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가장 효과적인 전달 수단이다."
그런데 사실 편지가 그런 힘이 있다는 걸 여러번 겪어봐서요.
-11-
편지는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주파수를 내도록
정교하게 발명된 기계다
마음의 떨림을 파장으로 바꾸고
편지지, 봉투, 우표 순서로 조립하면
먼 곳의 심장까지 전달하는 기계
조립하기 전 파장을 집어넣는다
도착하는 순간
네 심장이 흔들리도록
편지는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가장 효과적인 전달수단이다
사랑한다. 이토록. p.s 머리부터 발끝까지를 추신으로 동봉함.
제 편지는 주로 이런식..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으면 말이 짧아지더라고요, 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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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부재인 밤은
필요 이상으로 길었다
그런 날에는 마음조차
실타래처럼 길어져
조금씩 조금씩 잘라내야만 했다
사랑한다 이토록
이말만 남았다
끊어낸 마음으로 칭칭 동여매어
머리부터 발끝까지 추신으로 동봉했다
네가 편지를 읽을 때
내 마음이 네 온몸을 칭칭 감도록
편지에 담은 내 마음보다 네가 더 보고 싶어서 더해진 내 마음을 따로 보낸다.
그 보탠 마음이 먼저 가서 너의 집 앞 우체통을 서성이다가 도착한 내 편지
내 마음이 먼저 꺼내서 우체통 여는 너를 와락 껴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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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에게 편지를 보낼 때에는
우표 두장을 붙입니다
한 줌 덜어낸 그리움도 매번 중량을 초과해
돌아온 적이 있거든요
그대 생각만으로 더해진 마음을
편지 하나에 다 담지 못해 따로 보냅니다
그 마음이 먼저 도착해
그대 집 앞 우체통 앞을 서성이다
내 편지를 먼저 꺼내 들고
우체통을 여는 그대를 와락 껴안겠죠
그대가 편지를 읽는 동안
그 안에 담긴 내 마음은
그대 고운 눈을 따라 볼 테고요
편지는 마음이 먼저 도착하는 방식이라는 말이 오래 남아, 오늘 내 마음이 향한 곳을 잠시
들여다보았습니다. 런던에 첫눈이 내려 더욱 그랬는지,
스무 해를 함께 지내다 독일로 떠난 친구 Miran이 문득 많이 그리워졌습니다.
그 친구에게 조용히 한 줄 적어봅니다.
-14-
지금 런던에는
설화(雪花)가 피고 있는데
너의 하늘은 어떤지
스무 번쯤 덧대어진
첫눈의 기억이
매번 같은 빛깔로 만개했는데
같은 눈이
스물한 번째서야 낯선 표정인 이유
문득 네 부재(不在)의 무게를 가늠한다
편지는 마음이 먼저 도착하는 방식이라는 말이 오래 남아
그리움이 향한 곳을 바라다본다
마음이 먼저 닿는 방식으로
내 마음이 네게 도착했을까
그 종이는 그의 필체가 아니었다.
필체는 나의 것이었다.
종이도 나의 것이었다.
시간과 공간 안에 갇혀
나는 스스로 일그러졌다.
그 선반 위에는
틀어져 있던 액자들,
완벽한 각도들이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었다.
나는 다시 종이를 바라보았다.
그 표정에 무언가 미세한 변화가 일었다 ㅡ
예전에 본 적 있는, 작고 정교한 긴장.
종이는 다시 한번 숨을 들이켰다.
나는 숨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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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필체로 내 마음을 쓰는데
자꾸 오타가 생겼습니다
내 필체로 당신 마음을 써봅니다
나의 것이라 고백한 숨결과
당신 것이라 고백한 그 숨결들은
일그러진 시간과 공간에 갇혔습니다
완벽한 각도들이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네요
기울어진 완벽
완벽한 기움
당신과 나의 차이입니다
당신이 보았던 그 작고 정교한 긴장은
이번에도 기시감 같았을 겁니다
내 필체로 내 마음을
당신 필체로 당신 마음을 쓰는데도
비밀처럼 오타가 생기니까요
그게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그것은 메아리였다.
그리움 담아 꾹꾹 눌러쓴 몇 자 안되는 안부는
수취인 불명으로 돌아온,
네게는 닿지 못한 나의 애달픈 메아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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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당신의 부재를 주소로 적었다
그렇게라도 보내면
어느 풀 어느 나무라도 먼저 듣고
내 마음을 전해줄 것 같았다
그것은 메아리였다.
그리움을 담아 꾹꾹 눌러쓴 짧은 안부는
네게 닿지 못하고
수취인 불명이 되어
늘 그렇듯
나에게 되돌아온
애달픈 메아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