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벗님들의 사연 1
글벗님들께서 나눠주신 소중한 각각의 댓글의 구절들로 [편지]라는 제목의 연작시를
먼저 써 보았습니다. 전체 열여섯 분 댓글 중, 순서대로 여덟 분 글벗님의 댓글로 쓴 8편의
연작시를 우선 올립니다.
아마추어의 수준의 시이지만 정성껏 주신 답글에 대한 감사함을 담고자 했습니다.
나머지 연작시도 준비되는 대로 올리겠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연작시 끝나면 최종 한 편의 시로 완성해보려고 합니다.
댓글을 남겨주신 글벗님들의 브런치도 함께 링크해 두었으니, 발걸음 하시어 따스한 글들을
만나보시면 좋겠습니다.
어릴 적 종종 편지를 써 주셨던 아버지가 그립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마음 편지 한 장 보내야겠다.
아빠, 나 잘 살고 있죠?
-1-
편지를 썼습니다
하늘 끝까지 멀리 날아가라고
바람만 불어넣었지요
못내 아쉬워
마음 하나 접어 동봉합니다
바람에 실려온 마음
잘 지낸다는 말
들리시나요
오늘 바람이
볼을 스치고 가네요
당신의 따뜻한 답장처럼요
스쳐가고 사그라지고 쓸려가며 비워졌다. 텅 빈 마음이 되었다.
-2-
힘든 하루의 잔해들이
스쳐가고
사그라지고 쓸려가며
비워진 오늘이
텅 빈 마음을 닮아갑니다
그래도 잘 살아낸
하루를
편지봉투 안에 넣었습니다
안에서 자꾸 바스락거립니다
서걱 서걱
바스락..
잘 살고 있다는 말이랍니다
하얀 마음에 그릴지 여백으로 둘지 오늘도 서성거리는 펜
-3-
눈을 감아도
당신이 보는 풍경이 가득합니다
편지지를 펼쳐
하얀 마음에 그릴지
여백으로 남길지
곁에서 서성거리는 펜을 잡고
오늘도 머뭇거렸습니다
그 풍경 속에 내가 없어서요
언제쯤 그대 눈동자에
나를 담을 건가요
이 한마디 적지 못하고
내가 보내는 편지는 내 마음이 너의 손끝을 지나 네 마음으로 스며드는 가장 아름다운 여행길이다.
-4-
주소가 달라도
내 편지가 가는 길은
매번 같았다
너의 손끝을 타고
내 마음이
네 마음으로 스며드는
가장 아름다운 여행길
무심코 길을 걷다
네 마음을 지나치고는
화들짝 놀라
그림자마저 되돌아가는 길은
모두 네 마음으로 스미는
아름다운 길이었다
단어와 문장보다 표정, 뉘앙스, 분위기에 따라 그 뜻과 감정을 오감으로 느낀다. 네 눈동자에 취해. 정성껏 꾹꾹 눌러썼다. 진심에 가까울수록 그 표정과 의미가 오롯이 네 눈을 통해 가슴에 맺히겠지.
닿지 않는 진심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사는 세상이 다를 뿐..
-5-
네 눈동자의 오묘한 온도에
나만 항상 취했다
얼굴보다 먼저
붉어지는 표정과
진심을
꾹꾹 눌러 담아 보낸 편지
네게 닿지 않아도 괜찮아
흔적이 남으니까
진심이 비껴가는 건
누구의 잘못도 아닌
그저 두 세상의 기울기가 다른 것일뿐
꾹꾹 감정을 담아
써 내려간 나의 마음의 글씨
지우개로
지웠다 다시 썼다
연필 끝에 시선을
다시 써 내려가는 나의 마음
종이 한 장이지만
마음이 담겨서일까 묵직하다
-6-
심장이 옮긴 온도로
적은 것처럼
묵직한 손끝에 눌려 지워진 문장이
뒷장에 배겼습니다
손끝으로 읽어봅니다
지워진 문장들
지우개 가루처럼 흩어진 마음
다시 모아 적는 손끝
어딘가로부터
천천히 돌아오는
연필 끝에 걸린 당신의 시선도
바라봅니다
한 장의 종이가
이토록 무거운 까닭을
오래 읽었습니다
읽지 않아도 좋아 / 당신 손에 / 닿기만 해도 충분하니까
-7-
당신 손길로 피어나는
바람을 보았어요
꼬박 하루를 데우고도 남은
당신 체온이
길을 걷다 바람에 스쳐요
그대도 모르게 스친
그 짧은 동안 데워진 바람이
내게로 왔네요
읽지 않아도 좋아요
바람처럼 당신 손에 닿기만 해도
충분하니까
그것만으로도
따뜻해지도록 쓴 편지니까
낮에 쓰면 위트가 있고 덜 진지해 밤에 쓰면 왜 이리 깊어져 우물물 같아서 아침이면 다시 퍼내줘야 해 밤에 쓴 건 왜케 유치해 보일까 그래서 덜 축축해 보이려고 벌레먹은 이파리라도 운치있게 넣어서 우표 동봉했지
-8-
달이 저녁을 빚은 탓입니다
햇빛으로 쓴 글이 가볍게 떠다니는데
달빛을 담은 사연이
깊게 우물 속으로 잠기는 이유는
어둠에 젖은 글을
아침마다 퍼내어 말립니다
눈물에 젖었다 생각할까 봐
끝내 마르지 않은
한 귀퉁이를 찢었습니다
벌레 먹은 이파리를 한 장쯤
같이 넣어야
찢어진 편지를
벌레 탓으로 돌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사진: Unsplash의Debby Hud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