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틈으로 스며든 냄새가 바뀌어
말끝이 눅눅해진 오후.
질척거리는 구름이 햇빛을 구금하고 세상은 회색 수면 위를 떠다닌다.
바람은 빗물의 리허설을 끝냈다.
읽다 만 시집의 날씨처럼 한 문장씩 젖어드는 마음.
당신이 쓰다 만 말들이 허공에 과포화되어
작은 손짓에도 우두둑, 쏟아졌다.
장마란
오래된 감정이 되풀이되는 방식이다.
말하자면 창밖을 바라보며 오래된 시간에 나를 적셔보는 일.
나는 시를 쓰지 못했다.
종이가 젖고
말은 물속에서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냥 잠시 젖어 있는 것, 그것으로도 충분한 날들이 있다.
무릎 아래까지 차오른 침묵,
조용한 누수.
여전히 물이 되는 법을 배우지 못한 나는
가끔 비에서 나는 비릿하게 녹슨 철근의 맛, 젖은 흙냄새, 사라진 대화의 잔향을 맡는다.
구부러진 척추로 현관에 웅크리던 우산도
정맥 속을 유영하는 물결을 조용히 흉내 냈다.
당신의 침묵에도 비가 예보되어 있다.
"계속해서 강한 비가
시간당 10mm의 속도로 가슴 안쪽으로 내릴 예정입니다.
감정 취약 지대에 있는 분들은 대피하십시오"
문득,
당신이 머물던 자리도
침수된 감정으로 폐쇄되었다는 안내 방송.
빗소리에 섞인 그 날의 말투가 다시 들렸다.
조용히 무너지는 톤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