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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ungwon LEE Aug 25. 2022

갑(甲) 을(乙) 관계의 조건

하기 싫은 일도 할 줄 아는 마음

라이프 타임 (Life time)

프로젝트마다 라이프 타임 (Life time)이 있다. 보통 3년 꼴로 *페이스 리프트 (Facelift, 플랫폼은 유지하되 편의 사양 및 램프, 휠과 같은 외장 그리고 시트와 같은 내장 일부를 변경하는 단계)가 이루어진다. 그리고 5~6년 주기로 신차 (Full change, 풀 체인지)가 생산된다. 이렇게 보면 한 프로젝트의 라이프 타임은 6년 정도로 볼 수 있다. 물론 프로젝트마다 그리고 그때의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신차 개발에는 많은 비용과 시간이 소요됩니다. 소비자들은 3년이 지나면 새로운 차를 원하기 시작하죠. 그래서 절충안으로 페이스 리프트라는 단계가 만들어졌습니다. 페이스 리프트에서는 일부분을 변경합니다. 하지만 항상 이러한 규칙이 성립하진 않습니다. 그랜저의 경우가 그런데요, 신차가 출시된 지 3년이 채 안되었을 때 페이스 리프트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풀 체인지 (Full change)라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로 바뀐 폭이 컸습니다. 시장에서 경쟁자가 없는 독자적인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러한 라이프 타임의 차량 볼륨 (Volume)을 감안하여 계약이 성립된다. 그리고 양산 (Mass production)의 EOP (End of Production) 후에도 A/S (After Service) 파트는 계약 기간에 따라 계속 생산이 된다. EOP가 되었다 하더라도 기존 차량 구매자들이 수리를 받으러 사업소에 오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량의 라이프 타임이 주기적으로 잘 순환되면 파트를 공급받는데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반대로 라이프 타임이 연장된다면 이슈가 발생할 수 있다.


한 프로젝트의 EOP가 계약상의 기간보다 연장되고 있었을 때였다. 차량의 판매 대수가 매우 적은 것이 문제로 제기되었다. 해당 파트는 Tier 2에서 생산한 후 Tier 1에서 품질 검사만 하고 납품을 하는 구조였다. 계약 상의 EOP가 지났고 생산 대수가 매우 적었기 때문에 Tier 2에서는 더 이상 생산할 수 없음을 통보하였다. 타 완성차 회사와 공용되는 파트가 아니기에 별도로 라인을 운영해야 하는데, 너무 비효율적이기 때문이었다. 단가 인상을 요구할 수도 있지만 협력사에서는 단종 (斷種)을 요청하였다.


갑과 을이 결정되는 조건

당시의 프로젝트 볼륨으로는 다른 협력사와의 새로운 계약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필요한 수량을 예상하여 최종 발주 (Last order)를 내기로 하였다. 수량과 보관 방법, 그리고 품질을 유지하는 방법을 의논하기 위해 Tier 1 담당자와 함께 Tier 2 회사를 방문하였다. 도착해서 회의실로 가니 영업부 이사, 생산부 이사 및 실무 직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보통은 물건을 판매하는 사람이 을 (乙), 사는 사람이 갑 (甲)의 위치에 선다. 이 관계가 성립되기 위한 조건은 물건을 판매하는 사람이 많이 있고, 구매하려는 사람은 충분한 수량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조건이 성립되지 못하면 갑과 을의 관계가 바뀌게 된다. (또 한 가지, 판매자가 반드시 계약을 성립하기 위해서 전략적으로 검토를 하는 경우에도 구매자는 갑의 위치에 있게 된다.)


계약이 끝나서 파트를 더 이상 생산하지 않아도 법적으로 문제를 삼기 어려운 점, 생산 수량이 너무 적은 점 그리고 새로운 협력사를 찾을 수 없는 점이 Tier 2 협력사를 갑의 위치에 올려놓게 하였다. Tier 1 협력사 담당자는 생산 중단을 일방적으로 통보한 Tier 2에 문제를 제기했고 동시에 나에게도 불만을 표시했다. 최종 구매자의 입장이지만 Tier 1, Tier 2 모두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가장 낮은 을의 위치에 서게 되었다.


이럴 때는 협력사에서 요구하는 부분을 우선 들어주는 게 좋다. 혹시 문제가 생겨 최종 발주도 못 내게 된다면 더 심각한 문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협력사에서는 생산 중단을 원하였고, 나는 생산 라인이 끊기지 않도록 충분한 재고를 확보해야 했다. 프로젝트 팀으로부터 예상 수량을 받은 후, 보수적인 숫자로 판단되어 내부 회의를 통해 1.5배를 곱하여 협력사에 요청하였다. (불용 (不用) 재고가 생기더라도 파트 공급이 끊기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판단하였다.)


Tier 2에서 요청된 수량을 일괄적으로 생산한 후, Tier 1에서 해당 파트를 계약된 기간 동안 보관하기로 합의하였다. 품질 검사도 Tier 1에서 맡기로 하였다. 무사히 회의를 마치고 사무실로 복귀하였다. 양사 간에 적당한 선에서 협의를 마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어떤 일은 의욕이 생기고 어떤 일은 피하고 싶다. 위의 경우는 싫은 소리를 들어주면서 협의를 마쳐야 하기에 피하고 싶은 일로 분류된다. 피하고 싶은 일을 피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을 많이 경험한다.


사실 하고 싶은 데로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하기 싫은 일도 하고, 하고 싶은 일도 참을 수 있도록 마음을 잘 꺾을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마음에 안 드는 일을 만나면 짜증을 낼 때가 자주 있었다. 옆에서 보면 참 가까이하기 싫은 사람이었다. 내 삶에 마음을 꺾어야 되는 시간이 계속 주어지는 것이 참 감사하고 다행스러운 일이다는 생각이 든다 :D



ps. 첫째 아이가 어렸을 때 (지금도 5살이지만) 마음에 안 들면 드러누울 때가 있었다. 따끔하게 혼을 내고 난 이후부터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아이들에게는 항상 좋은 것만을 주고 싶다. 사달라고 하는 것은 뭐든지 사주고 싶다. 그런데 10개 중에 3개는 일부러 들어주지 않는다. 사탕을 사달라고 조르지만 안된다고 엄포를 놓는다.


밖에서 드러눕고 악을 쓰는 아이를 본 적이 있다. 어릴 때부터 자제력을 키울 수 있도록 상황을 만들어주는 것이 가장 큰 선물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건강히 잘 커가는 첫째 아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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