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위암 수술
제가 9살이 되던 무렵, 1월 또는 2월 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위암 수술을 하셨습니다. 그때가 40대 초반이었을 것입니다. 지금도 암에 대해선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합니다. 병원에서 암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으면 죽음부터 생각을 하게 되지요. 그래도 지금은 의학이 발달하여 암 치료에 대해 조금 더 길이 열려 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 수술을 할 때는 암은 곧 죽음으로 생각되던 때였습니다.
아버지는 수술을 하시고 나서 몸무게가 40킬로대로 줄어들었습니다. 위의 1/3을 절제하셨지요. 그때부터 우리 가족의 삶은 많은 것들이 변하였습니다. 아버지는 원래 교도관이셨습니다. 그런데 수술을 마치고 나선 더 이상 일을 계속하시기가 어려웠습니다. 재소자들의 시선, 주변 직원들의 반응이 견디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 자신의 몸도 업무를 수행하기 좋지 않았을 테고요. 업무에 복귀하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퇴직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부모님께선 제게도 일찍부터 암보험을 들어 놓으셨습니다.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하기 위함이지요. 취업을 하고 나서 매달 나가는 보험비를 보며 해제할까도 생각했지만 어머니께선 계속 보험을 가입해 두길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유지하고 있어요. 하지만 보험은 돈에 대해서만 도와줄 뿐 실제 암 진단을 받은 사람들의 마음을 절망과 죽음에서 건져내 주지는 못합니다.
오늘은 시작 글이 조금 무거운데요,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하기 위한 회사의 여러 지침 중에서 환율 관리에 대한 부분을 소개해 드리려 합니다. 특히 최근에 달러의 급등세로 인하여 환율에 대한 관심이 더 많아졌지요. 이러한 환율을 관리하는 배경에는 예측하기 힘든 변수의 영향을 줄여 단가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우선 단가를 구성하는 통화 (Currency)가 하나가 아닐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파트의 SOP (Start Of Production) 단가가 10,000원이라고 해보겠습니다. 그런데 파트의 구성품들 중에는 중국에서 수입해 오는 것도 있고, 멀리 떨어진 멕시코로부터 구매하는 것도 있을 수 있습니다. 보통 구매 거래 통화는 그 나라의 화폐나 또는 미화 달러 (USD)로 이루어집니다. 중국은 CNY (위안), 멕시코는 USD로 거래될 가능성이 높겠지요. 그러면 파트 단가 10,000원을 구성하는 구성품들의 단가는 아래와 같이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파트 단가 : 10,000원
환율 (원화 대비) : USD 1,100원 / CNY 160원
멕시코 구매 구성품 5.5 USD (=6,000원)
중국 구매 구성품 : 25 CNY (=4,000원)
그런데 파트 생산 후 시간이 지나 환율이 아래와 같이 바뀌게 된다면 파트 단가는 어떻게 될까요?
환율 (원화 대비) : USD 1,200원 / CNY 170원
멕시코 구매 구성품 6,545원 (5.5 USD * 1,200), 중국 구매 구성품 4,250원 (25 CNY * 170)으로 파트 단가는 10,795원이 될 것입니다. 생산 라인과 파트 스펙에 아무런 변동 사항이 없는데 단가가 795원이 올라가지요.
파트를 판매하는 협력사와 구매하는 고객사 양사 모두 변수로 인한 영향을 줄이는 것이 좋습니다. 일관된 단가 경쟁력 확보와 더불어 재무관리에도 효율적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아래와 같은 방법으로 환율을 관리하기도 합니다.
SOP 단가 대비하여 변동률이
+-2% : 환율 차를 반영하지 않음
+-2% ~ +-8% : 환율 차의 50%만 반영
+-8%~ : 100% 반영 후 필요에 따라 단가 재조정
양사 모두 환율 차에 의한 영향을 분배함으로써 일정한 단가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반영하는 시점은 3개월 또는 6개월 평균을 갖고서 합니다.
이렇게 양사 모두 안정적인 단가를 유지한다는 점에서 윈윈 전략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상황에 따라 양사가 처하는 입장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아래 최근 10년간의 원화 대비 달러 환율의 변동성을 보면서 그 이유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최근 몇 달 사이에 달러가 유로를 넘어섰지요. 굉장히 특이한 상황입니다. 위의 노란색 원으로 표시된 지점을 SOP 때의 기준 환율이라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앞서 환율 차에 의한 영향을 판매사와 고객사가 분담함으로써 그 폭을 줄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즉, 특정 순간에는 이익과 손해가 발생할 수 있지만 오르고 내리는 전체 구간을 보면 똑같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환율이 떨어질 때는 서서히 내려가고, 올라갈 때는 급격히 상승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2% 안쪽으로 내려갈 경우에는 단가는 그대로 유지될 것입니다. 즉, 3개월간 2%씩 내려가서 SOP 대비 30%가 내려간다 해도 단가는 그대로입니다. 반면에 갑자기 약 10%씩 세 번에 걸쳐 상승한다면 단가는 크게 오르겠지요.
최근 달러 환율의 변동성이 이러한 예에 해당됩니다. 처음 말씀드렸던 것처럼 SOP 환율을 1,100원이라고 가정한다면 지금은 약 30%가 올랐습니다. 그것도 급격히 말이지요. 즉, 과거에 환율이 떨어질 때는 완만히 내려가면서 단가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다가 최근에는 단가가 매우 상승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고객사는 판매사 대비 많은 손해를 보고 있다고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여기에도 안전장치가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고객사는 절대 손해를 보면서 제품을 구매하지 않습니다.) 환율 차이가 8%를 넘어설 경우 차액을 100% 반영하고 단가를 재조정한다고 했습니다. 필요에 의해서 말이지요. 필요라 함은 추후의 환율 변동에 대한 예측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8% 넘게 상승했지만 곧이어 8%가 다시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면 굳이 단가를 새롭게 조정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원래대로 돌아오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조정하지 않겠다고 협의한 후 예측과 달리 계속 차액이 커진다면 판매사나 고객사 한쪽은 뜻하지 않은 이익을 취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안정 장치가 있습니다. 바로 부품을 국산화하는 것인데요, 멕시코에서 수입해 오는 부품을 국내에서 구매하는 것으로 바꾼다면 더 이상 환율 차에 의한 영향을 받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판매사와 고객사 양사 모두 안정적인 단가를 확보할 수 있게 되겠지요. 그런데 문제는 언제 국산화를 검토해서 진행하느냐입니다.
환율이 급격히 떨어진 시점에서 국산화를 한다면 이후 환율이 오른다고 해도 단가는 그대로 유지되겠지요. 즉, 고객사가 이익을 보게 됩니다. 물론 국산화 시점에 파트 단가 차이에 대한 효과 금액도 함께 고려해야 되지만 적용 시점과 기간을 함께 고려하면 평등하게 만들어지지는 않습니다. 예측은 하지만 결과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것이지요.
제 아버지께서 수술한 당시만 떠올려 보면 저희 가족은 참 힘들고 어두웠습니다. 그간 모아둔 돈이 수술비와 회복하는 곳에 쓰였고, 그 이상으로 아버지와 어머니의 마음에 어둠이 자리 잡았습니다. 9살이던 저도 그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 번은 친구들과 PC방에 놀러 갔는데 그곳에서 아버지를 만났습니다. 새로운 일자리를 찾았지만 잘 구해지지 않던 아버지는 당시에 PC방에서 시간을 보내며 게임도 하고 주식도 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런 아버지가 부끄러웠습니다. 인사도 하지 않은 채 고개를 돌렸지요. (물론 아버지께선 저를 보셨습니다.) 제 마음에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고 집에 대한 원망이 있었습니다. 그런 마음을 갖는 게 타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마음에서 벗어나 아버지를 다르게 보게 되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40대 초반의 나이에 생각지도 못한 암 수술을 하시고 나서 두 아이들을 키울 생각에 많은 고민과 어려움을 겪으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보면 모든 것을 다 한 것은 아니지만 돈이 없어서 제게 꼭 필요한 무언가를 하지 못한 적은 없었습니다. 짜증과 초라한 모습 뒤에는 자녀를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 마음을 보고 나서부터는 더 이상 예전과 똑같이 아버지를 대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 제 첫째 아들은 5살입니다. 아빠가 놀아주기로 해놓고 안 놀아 준다며 짜증을 내는 나이이지요. 그리고 아빠에게 당연하게 맛있는 것을 사달라고 말합니다. 저는 아이에게 제 마음을 조금씩 전달해 주려하고 있습니다. 지난 저의 삶을 돌아보면 학교에서 공부 잘하고, 운동 잘하고, 좋은 학교 가는 것들은 가족끼리 마음이 흐르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봅니다. 저희 아이들이 자기 마음만 주장하는 똑똑한 아이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보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아이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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