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 루트 최적화
예전에는 낯선 곳을 갈 때에 차를 멈춰 세워놓고 길을 지나가는 분이나, 상점에 들러 길을 물어보곤 했습니다. (어릴 때 아버지께서 그렇게 하시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그리고 종이 지도를 펼쳐 놓고 지금 위치를 짚어 가며 길을 찾아가기도 했고요. 지금 생각하면 인간미가 잔잔히 흘렀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상점에서 뭐 하나 사 먹기도 했고요.
그런데 지금은 이러한 모습은 사라졌습니다. 왜냐하면 이젠 모두가 내비게이션을 보고 운전하는 데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에요. 심지어 항상 다니던 곳인데도 더 빠른 길이 있었음을 알려주기도 합니다. 또 시간대별로 도로 상황에 따라 다른 길도 제시해 주고요. 그렇게 최적화된 길을 따라 목적지에 가장 빠르게 도착할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빨리 도착해서 좋은데 무언가 조금 아쉬움이 남기도 합니다.
자동차 부품의 해상 운송에 있어서도 여러 길이 존재하고, 회사는 최적화된 루트 (Route, 경로를 의미하는데 현업에서 루트라고 많이 말합니다.)를 원합니다. 이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되는 요소 중 하나가 비용입니다. 그런데 가장 최적화된 길이 있음에도 외적 요인들에 의해 더 비싼 비용을 지불할 때도 있습니다. 예전에 있었던 일인데요, P사로부터 파트 하나를 계약할 때였습니다. 생산지가 일본이었기에 당연히 한국으로 바로 파트가 운송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체코를 경유하여 온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해당 건에 대한 계약 담당자가 제가 아니고 유럽 지부에 있는 바이어였기에 왜 이렇게 루트가 설정되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사유인즉슨, 해당 파트가 저희뿐만 아니라 그룹 내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생산되는 차종에도 적용되기에 체코로 물건을 모은 다음 각 공장별 요구 수량에 맞추어 분배하는 루트로 계약된 것이었습니다. 소량씩 나누어 여러 나라에 파트를 운송하는 것보다 한 번에 한 곳으로 보내는 것이 확실히 물류비를 절감할 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그룹 내에서 여러 차종 생산 현황을 조절하기도 용이하고요. 그런데 문제는 한국의 경우에는 일본에서 생산해서 체코를 거쳐 운송되기에 불필요한 물류비가 발생하고, 더불어 운송 업체에서 부과하는 추가 요금도 꽤 컸었습니다. 이에 한국만 다른 루트로 운송을 할 수 있을지 검토를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총 네 가지의 물류 루트로 정리를 했습니다. 첫 번째는 처음 설정되었던 일본 (생산) -> 체코 (경유) -> 한국으로의 루트입니다. 이 경우에는 대량의 파트를 한 번에 운송하기에 수량적으로 이익이 되었습니다. 다만 너무 '먼' 거리를 돌아서 오기에 이익이 될 수 없었습니다.
두 번째는 저희가 평소에 거래해 오던 운송 업체를 통하여 일본에서 바로 한국으로 운송하는 것이었습니다. 가장 짧은 거리를 움직이기에 물류비를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협력사에서 대응이 불가하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한국에 적은 수량을 보내는 것에 대하여 관리할 담당자나 조직이 부재하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기존 담당자가 추가로 맡을 수 있을 텐데 그러한 사유로 거절한 것을 보면 물량이 적어서 구태여 비즈니스를 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세 번째는 한국에 있는 P사의 지부를 통해서 거래하는 것이었습니다. 일본에서 생산 후 P사 한국 지부의 창고에 파트를 옮겨 놓고, 저희는 한국 지부와 계약을 맺어 파트를 가져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경우에는 거래 통화가 문제가 되었습니다. P사에서는 엔화로 지급하길 바랐는데, 저희 회사에서는 한국에서 로컬 (Local)로 등록된 협력사에게는 원화로만 지급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양사 간의 입장을 맞출 수 없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선 안타까운 점이 좀 있습니다. 지급 조건에 대한 시스템은 조금 힘들더라도 바꿀 수 있을 텐데 기존의 업무 틀 (시스템)에서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일을 하려 하다 보니 더 좋은 루트가 있을 수도 있는 기회를 놓쳤습니다.
네 번째는 다른 고객사에 물품을 납입할 때 거쳐가는 일본의 어느 항구에 물품을 갖다 놓은 후, 별도 지정된 운송 업체를 통해 한국으로 가져오는 것이었습니다. 이 경우는 양사 모두 큰 이견없이 합의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는 이 루트를 통해 파트를 납입받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처음 설정된 루트보다는 저렴한 비용으로 파트를 수급받을 수 있게 되었지만, 조금 더 좋은 방법을 찾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조금 불편하게, 어렵게 일을 하려고 했다면 더 좋은 길이 있지 않았을까 합니다.
첫째 아들을 보면 자기가 생각한 대로 잘 되지 않을 때 짜증을 부리는 모습을 봅니다. 아이들이 다 그렇겠지만 간혹 정도가 심할 때가 있는데, 꼭 저를 보는 것 같습니다. 가장 좋은 방식대로 일이 안 풀리면 잘 못 견뎌했었거든요. (이런 것까지 닮을 필요는 없는데...) 항상 최고의 방법대로 일이 풀리길 바랐는데 제 삶은 결코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안 좋은 선택들을 많이 하게 되었어요.
지금은 조금 불편하고 어려운 길들이 오히려 좋을 수도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난 시간을 떠올릴 때 너무 스스로를 얽매여 힘들게 지내었다 싶습니다. 일이 잘 안 풀리고 감당하기 벅찬 일들을 통해서 오히려 보지 못하던 다른 길들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에 '불편하게 아이 키우기'라는 기고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요새는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한글을 다 뗀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러지 못한 아이의 엄마 이야기가 글에 나와 있었습니다. 수업을 따라가기 힘들어하면서 처음에 발랄하던 아이의 모습이 점점 사라지고, 매사 자신감이 없이 행동하는 모습을 보며 속상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이에게 한글을 어떻게 해서든 빨리 가르치려고 노력했고요. 그러다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던 사실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남들보다 조금 더 빨리 한글을 떼고, 영어를 배우는 것보다도 어려움과 한계를 만났을 때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 마음의 힘을 길러 주어야 된다는 것을요.
저도 둘째 딸이 말을 배우는 속도가 느려서 조금 걱정되기도 했습니다. 영유야 검진에서도 이렇게 계속 가면 언어 치료를 받아야 될 수도 있다고 했었고요. 그런데 이 기고글을 읽으면서 마음이 옮겨졌습니다. 공부도 잘할 수 있게끔 도와주지만, 가장 우선적으로 마음의 힘을 길러 주고 싶습니다. 앞으로 커가면서 점점 더 많은 부담과 힘든 일들을 만날 텐데 그 앞에서 주저앉고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씩 부담을 넘으면서 즐겁고 행복하게 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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