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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ungwon LEE Nov 17. 2022

갑과 을의 상대적 위치

신규 소싱에 대하여

물건을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의 가장 큰 차이점이 무엇일까요? 보통 판매자가 구매자보다 많다는 점, 판매자는 구매자에게 회사 소개와 함께 제품 라인업을 알리길 원한다는 점, 구매자는 판매자에게 특정 스펙을 가진 제품을 생산 가능한지 문의하는 점 등 여러 차이가 있을 테지만 가장 큰 차이는 갑과 을의 상대적 위치로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판매자는 구매자에게 자사 제품의 스펙과 단가를 소개하고 제시합니다. 그럼 구매자는 A라는 판매자로부터 제품의 스펙과 단가 제안을 받지만 B와 C 판매자로부터도 유사 사양에 대하여 제안을 받을 수 있습니다. 판매자들은 몇 명의 판매자들이 어떤 스펙을 갖고, 서로가 어떻게 단가를 제시했는지 모르지만 구매자는 여러 판매자로부터 제안받은 정보들을 한 군데 정리하여 비교해볼 수 있습니다.


항상 이러한 관계가 성립되는 것은 아지만 구매자는 판매자보다 상대적으로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을 가능성이 높고 이는 구매자와 판매자를 갑과 을의 관계로 만듭니다.


구매자는 버짓 (Budget, 예산)을 갖고 판매자들과 협상을 합니다. 특별한 사유가 있으면 버짓을 초과할 때도 있지만 가능한 버짓 내에서 소싱 (Sourcing, 신규 계약)을 진행합니다. 그래서 구매자는 판매자들이 버짓 내로 단가를 맞추어 협의해줄 것을 원합니다. 그런데 구매자가 판매자에게 처음부터 버짓 내로 단가를 조절해줄 수 있을지 물어본다면 어떻게 될까요? 십중팔구 판매자는 어렵다는 입장을 보일 것입니다. 하지만 소싱에 관심이 없지 않은 이상 가능성은 열어두고 있을 것이고요.


버짓은 맞추기가 어렵게끔 타이트하게 설정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당연히 대부분의 경우에 판매자는 어려움을 표하겠지요. 우선 구매자가 먼저 생각하는 단가를 말하는 순간 구매자는 갑의 위치를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내가 쥔 패를 상대방에게 보여준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내가 어떤 패를 갖고 있는지 알게 된 이상 상대방은 단가 선정에 있어 생각할 여유를 갖게 됩니다.


그래서 구매자들은 처음 이야기했던 정보의 불균형을 이용하여 판매자들끼리 경쟁을 붙입니다. A, B, C 판매자들의 견적서를 비교하며 조정 가능한 부분들에 대해 협상을 동시적으로 이어 나가는 것이죠. 그러면 판매자들은 점점 끌려 오면서 본인들이 갖고 있는 패를 하나씩 보여줄 수밖에 없게 됩니다. (이 경우의 패는 마진, 즉 이윤으로 이해하시면 쉽습니다. 겉으로는 드러나 있지 않은 마진을 점점 깎아내리는 것이지요.) 이렇게 여러 번의 협의 과정을 거쳐 구매자는 가장 최적화된 스펙과 단가로 계약을 맺을 수 있습니다.


물론 예외도 있을 수 있습니다. 제가 직접 겪었던 일이기도 한데요, 바로 담합 (카르텔)입니다. 여름휴가를 즐기고 있을 때였습니다. 뉴스를 보는데 제가 거래하고 있는 협력사에서 담합을 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었습니다. 딱 제가 납품받고 있던 파트였습니다. 공정위의 조사 끝에 제조업체들 간에 담합한 사실이 밝혀졌으며 벌금이 부과되었습니다. 그런데 보도가 되기 전까지는 전혀 몰랐습니다.


해당 건은 이전 담당자가 계약을 맺고 저에게 인수인계된 파트였습니다. 이미 양산 (프로젝트 SOP 후의 파트 생산)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기에 이러한 것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었습니다. 뒤늦게 담합한 사실을 알게 되면서 협력사에게 책임을 묻고 보상을 진행했습니다.


이러한 경우 외에도 전기차 배터리를 생산하는 업체와 고객사 간에 역전된 관계가 존재합니다. 수요가 공급을 너무 앞서는 것이지요. 특히 해당 파트가 진입장벽이 높아 아무나 접근할 수 없다면 이러한 역전 관계는 격차가 더욱 커집니다. (이 부분은 나중에 다시 다루어 보겠습니다.)


정보가 흘러넘치는 시대에 정보의 불균형이 발생한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게 들릴 수 있지만 세상에 평등한 것은 없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얼마든지 이러한 상황에서도 자신에게 유리한 입장을 취할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구매자와 판매자 모두 깊이 사고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사고 (思考)하는 능력은 삶에서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인들 중의 하나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전 세대에 비하여 사고하는 능력이 시간이 흘러가며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을 봅니다. 사고하기보다는 내 감정에 따라 즉흥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많아지고 있지요.


내 감정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동안은 사고하기가 힘들 수 있습니다. 감정이란 것 자체가 워낙에 바람에 흔들리는 파도처럼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내가 느끼는 감정을 잠깐 내려놓고 그 위에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있다면 지금 하고 있는 일뿐만 아니라 삶에서도 행복함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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