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으나 큰 것들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제가 근무하는 회사에는 협력사들에게 배포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 (CSR,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가이드라인이 있습니다. 거래 중인 또는 신규 계약을 원하는 협력사들은 모두 그룹에서 지정하는 가이드라인을 준수해야 합니다. 이는 소싱 (Sourcing) 참여의 기본 요소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CSR 활동 관리를 통해 지속적인 이윤의 성장을 이끌어 낸다는 기본 취지도 갖고 있습니다.
협력사들은 이 가이드라인을 통해 그들의 사회적 활동이 그룹에서 원하는 수준과 부합하는지 체크해볼 수 있습니다. 가이드라인은 크게 다섯 개의 기준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법 준수, 안전과 품질, 인권, 환경 그리고 투명한 정보 공유입니다. 하나씩 어떠한 내용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 법 준수입니다. 지역과 나라에 상관없이 법 규정을 따르기 위한 정책 및 전략 수립이 요구됩니다. 직원 교육 프로그램도 이안에 포함됩니다. 불법적인 활동, 예를 들어 카르텔 (담합), 부정한 방법의 조작 및 불공정한 비즈니스 거래는 일절 금지됩니다. 그리고 비즈니스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금품이나 서비스, 선물도 절대 받아서는 안됩니다. 법에 준수되는 선에서 직원 차원에서의 회사 정보 보호에 대한 시스템도 구축되어 있어야 합니다.
당연한 말인데 가장 첫 번째 규정으로 제시해 놓는 이유는 지키지 않는 협력사들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난 글에서 잠깐 말씀드리기도 했지만 실제 제가 담당하던 협력사가 담합을 한 사실이 밝혀지며 꽤 충격을 받았던 적이 있습니다. 세상이 깨끗하지 않기에 이렇게 규정문을 만들어 두어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그리고 제 3 업체로부터 지적 재산권을 불법적으로 취득해서는 안됩니다. 해당 지역과 나라에서 규정하는 법에 따라 공정한 비용 지급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법 준수에 이어 두 번째 항목인 안전과 품질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협력사가 우수한 품질을 유지하는 것은 비즈니스에 있어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비즈니스가 중단될 테니까요.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품질은 에너지와 재원을 절감하며, 환경에 끼치는 영향을 최소화시키는 안을 갖고 있는 것을 뜻합니다. 파트 자체의 품질은 당연히 가진 채로요. 이렇게만 들으면 사실 좀 모호합니다. 그래서 회사에서는 이러한 지수를 점검하는 담당 부서가 별도로 있으며, 각 항목을 점수화시킵니다. (아마 절대적 지수와 더불어 협력사들 간에 상대적 비교를 통해서 점수를 매기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라 별로 규정된 안전 법규를 보장하는 프로세스 내에서 반드시 파트와 서비스가 생산되어야 합니다. (법규가 상이하기에 나라별 공장마다 프로세스가 다를 수 있습니다.)
세 번째 항목은 인권입니다. 채용, 승진, 임금, 퇴사 등 어떠한 조치에 있어서 인종이나 국적, 성별, 나라 및 장애 유무가 영향을 끼쳐선 안됩니다. 이러한 규정은 상대적으로 유럽이 타 대륙에 비하여 엄격하고 잘 지켜지는 편입니다. 왜냐하면 이는 회사 차원을 넘어 사람의 인식과 연결이 되기 때문인데요, 일례로 한국에서는 불과 한 세대 전만 하여도 학연과 지연이 많은 영향을 끼쳐 왔습니다. (사실 이러한 부분은 어느 정도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어떠한 성희롱도 허용되지 않습니다. 한국 사회에서도 이러한 부분에 대해선 인식이 많이 개선되었지요. 아울러 아동 노동을 착취해서는 안되며, 모든 노동은 자발적으로 이루어져야 하지 강압에 의해 시행되어서는 안 됩니다. (아동 노동에 대한 연령 제한은 나라마다 상이할 수는 있습니다. 그룹 차원에서는 기본적으로 16세 이상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근무 시간에 대한 법적 준수도 필수입니다. 휴가와 법정 휴무에 대해선 반드시 보장해 주어야 합니다. 작업 현장이 건강을 위협하지 않도록 안전함과 청결도 꼭 지켜져야 합니다.
다음에는 환경 항목이 있습니다. 모든 협력사는 온실 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한 일련의 활동과 계획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대기 오염에 대한 방지뿐만 아니라 파트를 생산함에 있어 수질과 토질을 오염시키는 활동을 억제하고 모니터링하는 프로세스도 구축되어 있어야 합니다. 효율적인 자원 관리가 요구되며 쓰레기 배출량도 조절하는 노력이 요구됩니다. 아울러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는 화학 물질의 사용도 엄격히 관리되어야 하고요.
마지막으로 주주들에 대한 투명한 정보 공유가 요구됩니다. 재무적 상황에 기반하여 비즈니스 활동과 결과에 대하여 주주들에게 적시에 투명하게 공유되어야 합니다. 이는 주주들의 성숙한 신뢰관계 속에 회사가 성장함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예전엔 겉으로 드러나는 활동, 즉 이윤 창출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면 이제는 보이지 않는 요소들에 회사들이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인륜적인 활동을 넘어서 회사의 이윤 창출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지요. 때로는 이러한 요소들로 인해 회사의 경영이 심각한 위기에 처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사회적 흐름을 보면 개인에 대한 관리도 요구되는 것을 조금씩 느낍니다. 유명 인사들이 비도덕적이거나 불법적인 활동으로 인해 사회의 질타를 받고 잠적하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물론 그들도 처음부터 그러려고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 정도는 해도 괜찮을 거야' '들키지 않을 거야'라는 생각이 조금씩 자라면서 더 담대하게 범죄를 저지르게 되었을 것입니다.
내 생각을 있는 그대로 믿는 것은 참 위험합니다. 그 생각이 꼭 나를 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계속 따라가다 보면 파멸로 이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보기에 아무리 옳아 보여도 주위에 물어보고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럴 때 내 생각으로 인한 잘못에서 벗어나 밝고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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