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라 환율의 급락
구매 파워 (Bundling effect)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구매하는 수량이 많을수록 단가를 낮출 수 있는 기회가 생김을 뜻하는 말인데요, 이는 일상생활에도 많이 스며들어와 있습니다. 공동대행구매 같은 것이 이에 해당됩니다. 회사에서 많은 부서원들을 데리고 회식을 가면 서비스를 더 달라고 하는 것도 구매 파워에 해당이 될 거예요. 판매자의 입장에서도 많이 생산할수록 파트 하나에 상각되는 고정비가 줄어드므로 단가를 내릴 수 있는 여지가 생깁니다. 그래서 자동차 부품도 공용 플랫폼화 시켜 구매를 합니다. 범퍼, 내외장 사출품 및 멀티미디어 시스템, 그리고 소프트웨어에 이르기까지 모든 파트가 대상이 됩니다. 이런 이유에서 그랜저에 들어가는 자율주행 보조 시스템이 아반떼에도 들어가는 것이지요.
제가 담당하던 어떤 사출품도 그룹 차원에서 여러 차종을 한데 묶어 소싱을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SOP (Start Of Production)를 할 시점이 되자 한국에서는 RVC (Regional Value Content, 역내 가치 비율)가 충족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국내산으로 인정을 못 받기에 관세 혜택을 받을 수 없는 것인데요, 그래서 각 부품별로 국산화 검토를 하였습니다. 제가 맡은 사출품은 터키의 어느 협력사에서 제조하여 국내로 수입되는 루트로 계약되어 있었습니다. 이 파트에 대하여 국내에 공장을 둔 협력사들로부터 견적과 기술 제안서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검토 끝에 한 제조사를 선택하여 재 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습니다.
승인권자들의 허가를 모두 받은 후 금형 개발도 착수하였습니다. 모든 게 순조롭게 진행되어 갔지만 마지막 시점에 문제가 하나 발생하였습니다. 최종적으로 파트를 생산하여도 품질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여기서 계속 통과가 되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시기에 리라 (터키 화폐, TRY)가 급락하기 시작하였습니다. 150 KRW/TRY이었던 환율이 85 KRW/TRY로 뚝 떨어졌습니다. 이는 기존 수입해오던 파트 단가가 굉장히 낮아지게 되는 현상을 불러일으켰고, 국산화될 파트와 단가가 역전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미 금형 가공도 시작되었고, 개발비도 투입되었기에 없는 채로 돌리기는 힘들었습니다. 사실 계약서도 양사 간에 서명이 끝난 상태였고요. 품질 문제로 인해 최종 파트 생산 승인이 나지 않는 상황 속에서 환율의 변화를 계속 지켜보아야 했습니다.
리라는 변동률이 큰 화폐로 고려됩니다. 그래서 해당 화폐로 거래하는 고객사와 판매사 모두가 환율의 리스크를 안고 가게 됩니다. 이러한 리스크를 피하려고 한다면 계약 시점에 거래 환을 안정된 유로로 정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물론 이 경우도 어떤 환율로 리라를 유로로 전환할지 결정하는데 애매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시간이 좀 흘렀지만 다행히 해당 건은 잘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자동차 부품같이 큰 규모의 거래에서는 이런 환율에 의한 영향이 컨트롤할 수 있는 정도일 것이나, 작은 규모의 거래에서는 상황에 따라 많은 피해를 입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좋은 품질의 파트를 싸게 구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후에 다가올 수 있는 리스크도 함께 고려하는 자세가 필요하겠습니다.
지난 추석에 아이들과 함께 경주에 놀러 갔다 왔습니다. 아내가 전부터 가보고 싶다 했지만 시간이 안 나서 못 가고 있었는데 추석을 겸해서 하루 휴가를 더 내어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수학여행을 갔을 때를 떠올려 보면 불국사와 천마총만 갔던 것 같은데 지금 가보니 가볼 곳이 참 많았습니다. 마침 날씨도 너무 깨끗하고 맑아서 황리단길에서 찍는 사진은 하나같이 너무 예쁘게 나왔습니다. 물론 맛집을 들려 식사를 하는 것도 참 좋았고요.
그러고 나서 조금 늦은 시간에 숙소로 향했습니다. 앱을 통해 4성급 호텔을 예약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꽤나 멀리 떨어진 바닷가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그래도 여행겸 드라이브를 한다고 생각하니 그 거리가 별 문제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숙소에 도착하니 문제가 생겼습니다. 4성급 호텔인데 방 안에 뒤로 나자빠져 있는 바퀴벌레가 있던 거예요. 깜짝 놀랐습니다... 숙소 곳곳에서는 귀뚜라미 소리가 들려왔고요. 귀뚜라미는 그래도 애교로 봐준다 해도 바퀴벌레는...
여러 가지 생각하여 준비한 건데 미처 생각지 못한 변수가 있었습니다. 많은 일들이 그런 것 같습니다. 준비를 잘해도 생각지 못한 일들이 일어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준비를 잘해도 항상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이 일어날 수 있음을 알고 받아들이는 자세가 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조금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시다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