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는 할 수 없는 것들
보통 신차가 출시되고 6개월~1년 후 구매하는 게 가장 좋다고 말합니다. 혹시 모를 품질 이슈 때문인데요, 자동차 제조사에서는 고객에게 차량을 인도하기 전에 여러 프로세스를 거치며 품질 검사를 합니다. 가장 먼저 소싱 단계에서 파트 단위로 품질 승인이 되어야 합니다. 각 파트마다 만족해야 하는 품질 기준과 항목이 상이하며 기준치에 미달할 경우 소싱에서 제외됩니다. 파트 단위에서 승인이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실제 라인에서 생산 후 문제가 없는지 다시 검사를 합니다. 그리고 시험 주행을 통해서도 차량 기준의 검사를 실시하고요. 하지만 이렇게 수많은 검사를 거침에도 불구하고 필드 클레임 (File Claim. 고객에게 인도된 후 발생하는 보상 요청 건)은 번번이 발생합니다. 사소한 것에서라도 말이지요.
그래서 출시 직후에 발생되는 클레임들을 모아서 문제를 처리한 후 다음 생산에 이를 반영합니다. 흔히 6개월~1년을 잡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물론 근래는 기술의 발달로 품질 이슈가 굉장히 적어진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바로 구매하는 것도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더군다나 코로나로 인한 공장 가동 중단 및 IC (Integrated Circuit, 집적회로) 칩 공급 부족으로 인해 차량 생산이 지체되면서 대기 기간이 1년씩 걸린다는 소식을 접하기에 사전 계약을 많이들 하는 것 같습니다.
클레임 건 외에도 차량 출시 후 설계적으로 사양이 변경될 때가 있습니다. 페이스 리프트 (Facelift, 내 외장 변경)나 제조 연식에 따라 사양이 달라지지만, 그 외에도 원가 절감을 위한 아이디어가 적용이 되기도 합니다. 그중에 가장 흔한 것이 사양을 낮추거나 기능을 삭제하는 것인데요, 최적화한다는 컨셉으로 이 부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내비게이션에 휴대폰 앱을 미러링 하는 기능이 있는데, 실제 판매 추이를 보면 고객들이 선호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내장 내비게이션이나 아예 라디오 기능만 있는 것을 원할 수 있지요. 그러면 해당 기능을 삭제함으로써 원가 절감을 이루어낼 수 있습니다. 또는 낮은 트림에 기본으로 적용되는 타이어 사이즈를 줄이고, 큰 인치의 타이어를 옵션으로 적용시킬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품질과 고객들의 반응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기에 여러 부서 간의 회의를 거쳐 통과되어야만 적용됩니다. 여러 안전장치가 설정되어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말은 달리 해석하자면 회사의 재정이 어려운 상황이면 부서 간의 합의 하에 사양을 얼마든지 낮출 수 있음을 뜻합니다. 고객들이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이전에 비하여 많아졌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차량 하나하나에 적용되는 옵션이나 파트의 가격을 알고 비교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지요. 그리고 제조 연식이 바뀌면서 미묘하게 반영되는 것들은 알아채기 어렵습니다. (물론 고가의 차량들은 이러한 경우가 해당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들은 각종 고급 사양이 적용된 비싼 차를 비싸게 파는 컨셉이니까요.)
수익을 올리는 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매출을 올리거나 아니면 고정비를 줄이는 것으로요. 구매부서는 후자에 대하여 책임을 집니다. 구매원가를 줄일 수 있는 안을 찾아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것이지요.
여러 부서가 협업을 하며 장기적 관점에서 수익을 낼 수 있는 방향을 찾는 것이 모두의 공통된 목표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생활에도 버려야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밤늦게까지 유튜브를 본다든가 혹은 웹툰에 빠져 두 시간, 세 시간씩 보는 것들이요. (물론 이 부분에 대해선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으므로,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만 이해해 주세요.) 사실 제가 예전에 퇴근하고 나서 웹툰을 두 시간씩 보곤 했습니다. 다 보고 나면 시간을 너무 허무하게 써 버린 것 같아 다음부터는 이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또다시 반복하는 제 모습을 보며 실망을 많이 하였습니다. 각오하고 결심해도 잘 바뀌지가 않더라고요.
그런데 결혼을 한 이후로 웹툰을 딱 끊을 수 있었습니다. 한 번은 아내에게 하루에 두 시간씩 웹툰을 보는 게 너무 시간이 아깝다고 얘기했더니 그럼 좀 줄여라고 하더라고요. 그 말 한마디로 다음날부터 웹툰을 끊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책을 읽거나 운동을 하거나 혹은 다른 자기 계발을 할 수 있었어요.
지금은 다시 조금씩 보고 있지만 예전만큼 통제하지 못할 정도로 빠져 있지는 않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무언가 변하는 것은 스스로는 참 어렵다는 것을 느낍니다. 차량에서 파트를 삭제하거나 사양을 변경할 때도 어느 부서에서 단독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부서 간의 회의체를 거쳐가며 결정하는 것처럼, 내 삶에서 버리고 바꾸어야 될 부분도 주위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제 곧 새해가 다가올 텐데요, 그전에 미리 버리거나 바꾸고 싶은 모습을 생각해 보고 주위에 도움을 요청해 보면 어떨까요? 혹은 그냥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혼자서 결심하는 것보다 훨씬 큰 힘이 될 것이에요.
ps. 본문의 커버 사진은 계영배라는 술잔입니다. 술이 일정한 한도에 차오르면 새어나가도록 만든 신기한 잔이에요. 조선시대의 거상 임상옥(林尙沃: 1779∼1855)은 늘 계영배를 옆에 두고 끝없이 솟구치는 과욕을 다스리면서 큰 재산을 모았다고 합니다. 제 마음에도 늘 계영배가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