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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명옥 Oct 10. 2023

한글날에 보는 가시박


한글날 아침에 오십천변을 걷는다. 오십천은 오십여 개의 내(川)가 모여서 강구항 앞바다로 들어온다. 동해에 가까워지면 강처럼 도도하다. 물 위에 산이 앉으면 그림이고 반짝이면 윤슬이다. 오십천을 따라 마을이 생기고 발달했으니 강구의 한강이랄까? 오늘은 해뜨기 전에 오십천변을 걷는다.


오십천변에 여름 내내 피고 지던 배롱나무꽃도 거의 떨어지고 커다란 호박꽃이 듬성듬성 피어 있다. 샛노란 호박꽃 사이로 희끄무레한 꽃이 보인다. 작은 꽃들을 말벌들이 분주하게 핥고 있다. 수수한 꽃색과 얌전한 모양이 예뻐서 검색한다. 가시박이다. 귀화해 온 덩굴식물로 생태계를 교란한단다. 자세히 보니 개체수가 장난이 아니다. 가시박이 번지면 토종식물들은 대부분 고사한다 하니 예뻐 보이던 놈이 미워진다.


577돌 한글날이다. 전국에서 기념식과 행사가 펼쳐진다. 한글이 '과학적이다, 아름답다, 경제적이다'는 찬사들과 함께 걱정들도 많아진다. 신조어에 대한 지적이 많다. 신조어를 마구 만들어 우리말과 우리글이 오염된다, 신조어를 만드는 방법이 무분별하다, 의사소통이 안 되어 갈등을 일으킨다, 미디어 영향으로 유행처럼 전파된다 등이다. 말과 글은 순수해야만 하는가, 신조어가 세대 간 불통의 주된 원인인가, 은어隱語는 이 시대만의 현상인가라고 생각해 본다.


외래종 가시박이 여기저기 점령지를 넓힌다. 방치해서 안 된다는 걱정들이 제법 많은데 기관에서 어떤 조치를 하는지 들리지 않는다. 아예 모르는가, 알지만 손이 없는가, 알면서 받아들이는가? 외래종 가시박이 생태계를 교란하고 오남용 되는 신조어는 사회를 어지럽힌다. 사람, 문화, 물류가 섞이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순도를 고집할 수는 없지만 파괴되고 오염되는 상황을 바라보기만 하려니 안타깝다.

가시박과 말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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