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머리가 무사 그러멘? 머리가 이상해." 어린 정심이 오빠에게 말했다. 오빠는 체포되어 고구마 창고에 갇혀 있었다. 아침마다 거울 앞에서 포마드를 바르던 학생이었다. 열아홉 정심이 찾아간 대구 교도소에 오빠는 없었다. 진주로 이송되었다는데 진주교도소에는 이감 기록이 없었다. 정심은 노파가 되고 그녀의 딸 인선이 외삼촌 강정훈이 경산 코발트 탄광에서 총살된 것으로 추정했다. 탄광에는 뼈들이 뒤엉켜 있었다. 찾을 수도 확인할 수도 없을 만큼 시간이 흘러버렸다. 제주 할머니 강정심은 경북지구 피학살자 유족 회원이 되어 4.3 사건에 관련된 자료들을 모았다. "그때 내가 왜 오빠한테 머리가 이상하다고 했을까"
2023.12/21 제주에 눈이 엄청 내릴 때, 경하가 폭설을 뚫고 인선이의 새를 구하러 가는 장면을 읽는다. 새는 이미 죽었고 인선이 손가락을 잃은 작업 공간에는 핏물이 남아 있다. 외삼촌의 죽음을 포함해서 4.3 사건 당시 모든 죽음을 아파하는 인선의 작업 현장을 경하가 본다. '이 섬에 사는 30만을 다 죽여서라도 공산화를 막으라고?' 경하는 역사적 사건으로 스러진 죽음들 앞에서 고통스럽다. 독자는 정심과 인선, 경하를 따라 서울에서 제주까지, 제주에서 경산까지 오르내린다. 죽음과 작별하지 못하는 지독한 사랑을 본다, 사랑이 얼마나 무서운 고통인지도.
목차 1부에 '실'이 있다. 이야기도 이미지도 연결하지 못한 채 끝장을 넘긴다.
"정말 여기 누가 함께 있나, ~ 네가 진동하는 실 끝에 이어져 있나~"(p323)
제주도의 눈 속에서 의식을 잃어가는 경하가 서울의 병원에서 죽음과 투쟁하는 인선을 생각한다. 경하를 늘 생각하고 경하에게 앵무새를 살려달라는 부탁한 인선이 연결해 온 실이구나. 실은 인선이 경하에게 연결한 관계였구나.
'폭력으로 육체를 절멸했지만 기억은 남아 있다. 기억이 죽은 이를 살려낼 수는 없지만 죽음을 계속 살아있게 할 수는 있다. 작별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오래되지 않은 비극적 역사의 기억으로부터 길어 올린, 그럼에도 인간을 끝내 인간이게 하는 간절하고 지극한 사랑의 이야기'라는 평론보다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라는 작가의 짧은 한 마디가 정곡을 찌른다. 소설 쓰시네? 소설은 아무나 쓰지 못한다.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은 아무나 읽지도 않는다. '네가 무사 소설 쓰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