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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환 Jul 18. 2020

[독서노트] 조용한 흥분

(유지혜 지음, 북노마드)

17.01.14 완독

감상자: 김철환 (유럽에 가보고 싶은 사람)


내 집은 가수원로 72

갑천변을 따라 나 있는 철로를 나 혼자

눈으로 달리노라면 나오는 슬레-트 집들

회 칠한 벽, 왕거미줄, 컴컴한 역사, 흰 눈 덮인 논밭

게서 좀만 더 달리면 색색의 아름다운 파리가 있겠지

피렌체가 있겠지, 로마가 있겠지

사람도 개들도 모자라 날씨도 인상을 쓸 줄 안다는

런던이 있겠지

한량같이 날마다 해를 보며 투정하고 대거리하고

금방이라도 쌈박질하러 달려드는 나에게

바르셀로나에서는 해가 먼저 땅으로 내려와 찾는다지

호남선 철길이 언덕 모퉁이를 돌아 터널 속으로 사라지면 그 산 너머에

어둠 속에서 파리를 보았다고 할 수도 있다.

피렌체를 보았다 할 수도 있다. 로마를 보았다 할 수도 있다.

런던을, 바르셀로나를, 모든 유럽이 거기 다 있다고

외칠 수도 있다. 쉼 없이 외칠지라도

돌아오는 것은 쨍한 메아리뿐, 열차는 오늘도 늠름히 간다.

이러기에 비로소 고개를 주억거리다

앞으로도 여행을 멈추지 않을 거라는 어느 철없는 여자애의 말대로

내 여행 같은 삶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훗날,

장평보 다리를 지나는 기차를 타고 유럽에 갈 수도 있을 것이다.

청주, 보은, 영동, 울산, 대전, 용인, 인천, 화성, 수원, 서울, 내가 자라온 곳들

그 어디가 집이 아니며 여행지가 아닌지, 23살 외동 남자애에게

그 어디가 지금 가수원이 아니며 머나먼 유럽이 아닌지

<조용한 흥분>이, 내 길들지 않은 두 손을 쥐고 속삭였다.


(볼드체로 쓰인 표현은 저자의 말을 인용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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