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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환 Jul 22. 2020

[독서노트] 졸업선물

(신영준 지음, 서동민 그림, 로크미디어)

17.08.14 완독



1


답 없는 시대이다. 스마트폰이 해를 거듭할수록 새 기능을 탑재하며 우리를 유혹한다, '나를 사세요, 너 빼고 다 샀는데'. 멀쩡한 줄만 알아 프라이팬에 깨뜨리고 찜기에 쪄먹던 란이 갑자기 살충제를 흡입했다는 혐의를 받고 전량 회수된다. 태평양 건너 미국은 우리 윗동네 불량배를 직접 응징한다고 '화염과 분노'카드를 들었다고 '외쳤다'. 어제의 답이 오늘에도 답이 될 수 없고, 완벽한 줄 알았던 것이 자꾸만 자기는 완벽하지 않다며 굳이 사고를 친다. 언젠가는 터질 일이었다 해도 왠지 너무 불시에 터져버렸다고 느낀다. 긍정적인 답은 항상 배신을 거듭하고 부정적인 답은 원래 우리 편이 아니다. (글을 쓴 지 3년이 지나 코로나로 전전긍긍하는 지금은 또 '그땐 좋았지'타령을 하고 있으니, 아이러니하다)


2.


저자는 절대, 절대, 죽어도 자기가 내놓는 답을 마냥 신뢰하지 말라고 한다. 아니, 답이 아니라고 한다. 어쩌면, 답인지 아닌지도 모르겠다고 한다. 그렇게 긴가민가한 글들을 쪽지처럼 이곳저곳에 써 둔 것을 책으로 엮으니 제법 두께가 있다. 답인지 아닌지도 장담 못하는 이 두꺼운 책을 그럼 왜 세상에 냈을까? 그리고 나를 비롯한 많은 청춘-보다 아직 어릴지도 모를 놈-들이 그의 글을 읽고 그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을까? 만일 고등학교, 대학교 수업시간에 정말 이 작자의 태도로 학생들을 가르쳤다간 학교 홈페이지 게시판이 테러당하거나 학비를 토해내라는 공갈협박에 시달릴지도 모른다.


3


우리는 그간 수업 밖에서, 학교 밖에서 기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을 원해 왔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하는 교과서를 원해 왔다. 우리는 정작 스스로 무얼 원하는지도 모르고 있다가 우리가 원하는 걸 아는 책을 만나버렸다.


4


조선시대까지의 봉건사회, 일제시대, 6.25 전쟁 이후 재건기와 산업사회의 풍경을 뒤로하고, 숨 가쁘게 달려오며 역사의 선두에 있었던 젊은 세대는 언제나 멈춰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뒤에서 기성세대가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키면 청년들은 그대로만 길이 있는 줄 알았다. 기성세대는 자신들이 가진 아픔이 고유한 중력으로 젊은 세대를 끌어당기지 않기를 바랐고, 젊은 세대 역시 그 아픔의 중력을 반작용으로 이겨내려 앞으로 앞으로 발을 내디뎠다. 그렇게 앞으로 전진하던 우리나라 사람들이 20세기를 지나 21세기 벽두에 이르자 생각지 못했던 길들을 마주하게 된다. IMF로 21세기를 암담하게 시작한 사람들, 특히 젊은 세대에게, 어떤 길은 계속 앞으로 가는가 싶다가 뒤로 돌아가고, 옆으로 꺾이고, 어떤 길은 다시 몇 갈래로 갈라지고, 심지어 도중에 끊긴 길도 있다. 기성세대는 마차 안에서 젊은 세대의 등에 가려져 앞의 상황이 어떤지 알지 못하고 길을 부단히 재촉한다. 키에르케고르는 원래 다른 맥락을 얘기했지만('마부가 졸고 있을 때 진정한 마부는 승객이다'), 이 상황에서만큼은 젊은 세대만이 깨어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5


애석하게도 학교체제와 수업, 교과서는 아직 일방통행의 지식 전달과 반성 없는 도덕률에 갇혀 있는 것 같다. 대학교에서마저도 몇몇 교수의 토론은 '결론이 정해진' 토론이다. 자기 계발서는 '~일 수도 있다'의 사실을 '~이다'라는 신념으로 애써 외면하고 덧칠하고 있다. 어제의 답이 오늘의 답이 아니고, 완전한 것이 다음날 불완전한 것으로 판명되는  세상을 제일 먼저 직면하는 세대는 항상 새로운 세대인데 말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Apple사와 유일하게 겨루었던 S기업의 직원 한 명이 참다못해 사표를 내고 글쟁이가 되어 '답이 뭔지 모르겠다'는 선물을 감히 포장해서 준 것이다. '선물'인데 책장을 펼치면 온통 자기 고백뿐이다. 그런데 지금껏 누구도 겸허한 자기 고백을 감히 '선물'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말한 적이 없다. 감사하게도 저자는 그 용기를 내어 책을 한 권 고, 우리는 그가 스스로 답을 찾아온 과정들을 보고 느끼며 기꺼이 인생이라는 말 위의 마부가 되리라는 용기를 얻는다.


6


'~이다'라는 화법이 아직 만연하고 익숙한 사회이다. '~일 수도 있다' 또는 '~라고 생각한다'의 화법과 사고방식이 보는 이에 따라 다소 어색하고 무가치하게 인식될 수도 있다(3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는 비교적 많은 진전이 이뤄진 것 같다). 하지만 꼭 필요한 때에 등장한 필요한 용기이며, 모두가 고대해 왔던 용기라고 생각해 보자.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소소하게 감동적인 성과물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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