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과 전쟁 시기
/ 해방 과 전쟁 시기
남자는
해방 이전부터
이미 남쪽에 와 있었다.
봄마다 꽃 잔치가 벌어지던
함경남도 이원군 동면 의덕리,
같은 성씨의 사람들이 모여 살던
고향 마을을 떠나
낯선 땅에 뿌리를 내렸다.
그는
사업을 일구었고
업을 키웠으며
결국,
큰 사업가라 불릴 자리에까지 이르렀다.
사진 속의 그는 단정하다.
자세는 반듯하고
시선은 정면을 빗겨 있다.
그 얼굴에는
이미 시대의 방향을
말없이 읽어낸 사람의
침묵이 담겨 있다.
여인의 삶은
그보다 훨씬 늦게
남쪽으로 흘러왔다.
고향에서 혼인했고
남편이 없는 사이
사고로 아이를 잃었다.
설명할 수 없는 상실,
되돌릴 수 없는 사건.
그날 이후
여인은
자식을 먼저 보낸 죄인이 되었고,
타인의 판단에 따라
시가를 떠나야 했다.
평안남도 평원군 평원면,
가을이면 사과를 따 먹으며 놀던
너른 과수원집,
부모와 형제, 친구와 친척이 있는
그 고향으로도
다시는 돌아갈 수 없었다.
그 시절
여인에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혼자서
삼팔선을 넘었다.
밤에 배를 타고 물을 건넜다는 이야기,
밖으로 들릴까
우는 아이의 입을
손으로 막아야 했다는 기억이
조각처럼 남아 있다.
전쟁이 끝나면
돌아가리라
막연히 믿으면서,
삼팔선에서 멀지 않은
남쪽의 어느 마을에서
여인은
남자를 만났다.
가족도,
증인도 없었다.
고향을 잃은 자리에서
남쪽에서의 삶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남자는
사업가로만 머물지 않았다.
전쟁 전의 혼란 속에서
그는
체제를 지키려는 사람들의 일에
함께 관여했다.
이념이라기보다는
질서와 생존의 문제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선택은
기회주의자들의 표적이 되었다.
시대는
사람을 나누었고,
편을 강요했으며,
침묵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 일을 했고
자기 자리를 지켰을 뿐이었다.
그러나
공산주의 이념의 칼날은
그런 구분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남자는
혼돈의 끝에서
패배해 도망치던
기회주의자들에 의해
되돌아올 수 없이 지워졌고,
영영 사라졌다.
이유는
알 수 없다.
여인은
사랑하던 사람이
알던 자들에 의해
사라진 그곳을 떠나
더 남쪽으로 내려와
삶의 터를 다시 잡았다.
나는
그 남자를 잘 알지 못한다.
다만
사진 속 얼굴을 알고,
그가 좋은 인품을 지닌 사람이었다는 말,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사람이었다는 말을
여인을 통해
들었을 뿐이다.
벽에 걸린 사진 속
그 남자의 침묵이
말보다 많은 것을 전해준다.
이 이야기는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다.
여인의 말과
침묵과
어긋난 기억을
조심스럽게 엮은 것이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하나다.
그는
역사의 중심에 선 사람이 아니라
시대의 논리에 의해
잔인하고 비참하게 제거된
한 인간이었다는 사실
이 글은
누군가를 고발하기 위해서도,
누군가를 미화하기 위해서도
쓰이지 않는다.
그저
한 사람이
어떤 자리에서
어떤 이유로
사라질 수밖에 없었는지를
봉인해 두지 않기 위해
기록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