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인된 편지_002

도달할 수 없어 먼 길

by 늘초

봉인된 편지_002

/ 도달할 수 없어 먼 길


남자는 내게 떠나지 않은 사람으로 남아 있다.


길이 있었고,

사람들은 모두 그 길을 따라 돌아갔다.

그러나 그는

무언가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끝내 자기 자리를 버리지 않았다.

나는 그를 생각할 때마다

도망치지 못한 사람이 아니라

너무 많은 것을 등에 얹은 채

몸이 먼저 굳어버린 사람을 떠올린다.

움직이지 않은 것이 아니라

움직일 수 없게 된 사람이었다고

믿고 싶다.

그것이 신념이었는지,

체념이었는지,

혹은 삶을 내려놓고 싶었던 마음이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래서 나 역시

그 선택을 재단하지 않는다.

사진으로만 남은 그는

내 기억 속에서 늘

도착하지 못한 편지처럼

읽히지 않은 채 남아 있는데,

나는 그를

미워하지도,

그리워하지도 못한 채

그 사이 어딘가에 서 있다.

여인에게 길은

도달할 수 없어 먼 길이었다.

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보기 위해

하루하루를 발로 접어 걷던 길.

바람도, 눈보라도,

총을 멘 젊은 얼굴들조차

그 길 앞에서는

잠시 멈췄다.

부디 무사히 돌아오라는 말 한마디를 전하려

매일 걷는 여인을 보고

적이라 불리던 이들마저

눈을 감았다는 이야기.

그러나 그 이야기조차

끝내 닿지 못한채 길 위에 남았다.

세상은 때때로

가장 잔인한 순간에

가장 착한 얼굴을 짓는다.

퇴각하는 사람들은

사람을 짐처럼 버렸고

그 속에서 남자는

이름도 없이

몇 발의 총성으로 사라졌다.

그의 죽음은

설명 없이

내 삶에 남았다.

나는 그 죽음을 생각할 때마다

‘개죽음’이라는 말을 떠올리지만

그 말은 언제나

여인의 침묵 앞에서

무너진다.

여인은 단 한 번도

남자를 낮추지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사람,

가장 따뜻한 인간,

가족을 목숨보다 먼저 생각한 남자.

그 말들은

살아남은 나를 지키기 위한

여인의 마지막 방패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후퇴의 길 위에서 태어났다.

태어남부터 이동이었고

정착은 늘 뒤로 미뤄졌다.

돌아갈 수 있었던 곳은

지도 위에만 남았고

나의 삶은

이곳에 조용히 머물렀다.

운명이라 부르는 것은

느슨한 그물 같다.

빠져나갈 구멍도 많고

걸려버리는 매듭도 많다.

나는 그 그물 한가운데서

남자의 부재와

여인의 강인함 사이에 매달려

여기까지 걸어왔다.

그리움을 끝내고

먼 길을 따라 영원히 떠난 날

여인의 전쟁은 끝났지만,

도달할 수 없어 먼 길 같이

끝나지 않을 이야기를 계속 적고 있는,

나에게는 아직 진행 중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문득 문득 생각한다.

아직도 끝내지 못하고

누군가를 밀어내는 것은

이 끝나지 않는 이야기의

대물림 찌꺼기 때문은 아닌지.

나는 오늘도

이해되지 않는 한 사람을 품은 채

이해하려 애쓰며 글을 쓴다.

나는 여전히 생각한다.

이 편지가

언젠가는 도달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편지를 전하려

한없이 걸어가야만 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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