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달할 수 없어 먼 길
/ 도달할 수 없어 먼 길
남자는 내게 떠나지 않은 사람으로 남아 있다.
길이 있었고,
사람들은 모두 그 길을 따라 돌아갔다.
그러나 그는
무언가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끝내 자기 자리를 버리지 않았다.
나는 그를 생각할 때마다
도망치지 못한 사람이 아니라
너무 많은 것을 등에 얹은 채
몸이 먼저 굳어버린 사람을 떠올린다.
움직이지 않은 것이 아니라
움직일 수 없게 된 사람이었다고
믿고 싶다.
그것이 신념이었는지,
체념이었는지,
혹은 삶을 내려놓고 싶었던 마음이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래서 나 역시
그 선택을 재단하지 않는다.
사진으로만 남은 그는
내 기억 속에서 늘
도착하지 못한 편지처럼
읽히지 않은 채 남아 있는데,
나는 그를
미워하지도,
그리워하지도 못한 채
그 사이 어딘가에 서 있다.
여인에게 길은
도달할 수 없어 먼 길이었다.
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보기 위해
하루하루를 발로 접어 걷던 길.
바람도, 눈보라도,
총을 멘 젊은 얼굴들조차
그 길 앞에서는
잠시 멈췄다.
부디 무사히 돌아오라는 말 한마디를 전하려
매일 걷는 여인을 보고
적이라 불리던 이들마저
눈을 감았다는 이야기.
그러나 그 이야기조차
끝내 닿지 못한채 길 위에 남았다.
세상은 때때로
가장 잔인한 순간에
가장 착한 얼굴을 짓는다.
퇴각하는 사람들은
사람을 짐처럼 버렸고
그 속에서 남자는
이름도 없이
몇 발의 총성으로 사라졌다.
그의 죽음은
설명 없이
내 삶에 남았다.
나는 그 죽음을 생각할 때마다
‘개죽음’이라는 말을 떠올리지만
그 말은 언제나
여인의 침묵 앞에서
무너진다.
여인은 단 한 번도
남자를 낮추지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사람,
가장 따뜻한 인간,
가족을 목숨보다 먼저 생각한 남자.
그 말들은
살아남은 나를 지키기 위한
여인의 마지막 방패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후퇴의 길 위에서 태어났다.
태어남부터 이동이었고
정착은 늘 뒤로 미뤄졌다.
돌아갈 수 있었던 곳은
지도 위에만 남았고
나의 삶은
이곳에 조용히 머물렀다.
운명이라 부르는 것은
느슨한 그물 같다.
빠져나갈 구멍도 많고
걸려버리는 매듭도 많다.
나는 그 그물 한가운데서
남자의 부재와
여인의 강인함 사이에 매달려
여기까지 걸어왔다.
그리움을 끝내고
먼 길을 따라 영원히 떠난 날
여인의 전쟁은 끝났지만,
도달할 수 없어 먼 길 같이
끝나지 않을 이야기를 계속 적고 있는,
나에게는 아직 진행 중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문득 문득 생각한다.
아직도 끝내지 못하고
누군가를 밀어내는 것은
이 끝나지 않는 이야기의
대물림 찌꺼기 때문은 아닌지.
나는 오늘도
이해되지 않는 한 사람을 품은 채
이해하려 애쓰며 글을 쓴다.
나는 여전히 생각한다.
이 편지가
언젠가는 도달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편지를 전하려
한없이 걸어가야만 하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