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인된 편지_003

가여워서 더 그리운

by 늘초

가여워서 더 그리운


여인은

두 개의 작은 생명을 안고

세상의 가장 거친 결을

자신의 온몸을 던져 받으며

매일을 살아냈다.

그래,

그녀에게는 살아냈다는 표현이 맞겠다.

아침은 언제나

그녀의 손끝에서 조용히 열렸다.

끓어오르는 물의 낮은 숨결,

천천히 익어 가며 집 안을 채우던 솥의 온기,

아직 꿈의 가장자리에서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의 부드러운 숨소리.

그 숨소리들은 그녀에게

살아 내야만 하는 이유였고,

스스로 무너지지 않게 붙잡아 두는

강력한 끈이었다.

집 안에는

언제나 보이지 않는 두 개의 기운이 함께 있었다.

하나는

몸을 데우는 온기이고,

또 하나는

마음을 잠시 다른 곳으로 데려가는

투명한 불같은 것이다.

어느 날엔가,

부드러운 숨소리들이 아니면

자신을 버리고도 남을 만큼,

아니,

그녀에게는 그보다 더 큰 일일지도 모를

어떤 큰일이 있은 후,

그녀는 자주

하루의 무게를 알코올에 녹여

눈물과 함께 조용히 삼키곤 했다.

그것이

기쁨이었는지,

슬픔이었는지,

원망이었는지,

아니면 절망이었는지~

혹은

아무것도 아닌

잠깐의 쉼이었는지

지독한 염세였는지는

물어보는 사람도 없었고

그녀 또한 누구에게도 말 한적 없다.

다만 그 알코올들은,

시작은 저녁 안개처럼

그녀의 어깨에만 살짝 내려앉았었지만,

긴 세월이 지난 후

몸속 깊은 곳까지 차지해

그녀가 어디로 가든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어,

세월이 겹겹이 쌓여도

지워지지 않는

낡은 지도 속 길처럼

조용히

같은 곳으로 돌려보냈다.

그곳은

항상 그녀에게 위안을 주는 곳이었다.

아이였던 나는

그저

저녁이 조금 더 조용해지는 날과,

그녀의 눈빛이

조금 더 멀어지는 날이

있다는 것만 알았다.

사람은

무엇으로 버티는가.

어떤 사람은 말로,

어떤 사람은 기도로,

어떤 사람은 일로,

어떤 사람은

아무도 모르는 작은 의식으로

하루를 건넌다.

그녀에게도

그런 방식이

하나쯤은 필요했을 것이다.

나는 이제

그것을

그녀의 탓이나 잘못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모두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가여워하고 슬퍼한다.

인간은 완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무너지지 않기 위해

무언가에 기대며 사는 것이라는 사실을,

시간이 천천히 가르쳐 주었다.

아이는 마루 끝에 앉아

먼 길을 바라보는 버릇이 생겼고,

더 어린아이는

여전히 세상의 결을 몰라

그저

그녀의 옷자락을 더 오래 잡고 있었다.

그녀는

두 아이를 번갈아 안으며

마치 서로 다른 두 계절을

한 몸으로 통과하는 사람처럼

살아냈다.

어떤 날들은

그녀가 멀리 가야만 하는 날들이었다.

그럴 때면

집 안의 공기는

조금 다른 무게가 되었고,

아이들은

이유를 묻지 않는 법부터

먼저 배워야 했다.

맡겨진 시간 속에서

아이들은

서로의 그림자가 되어 자랐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누군가를

재단하는 것보다


급히 재단하지 않고

판단을 조금 늦출 줄도 알아야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아주 늦게 배웠다.

그녀가

어떤 밤들에는

조금 더 조용해졌던 이유도,

어떤 날들에는

조금 더 웃으려 했던 이유도,

모두

하나의 생존 방식이었다고

생각한다.

삶은

누군가에게는

끝없는 들판이고,

누군가에게는

끝없이 불어오는

바람이라는 것을.

시간이

멀리, 아주 멀리 흘러간 뒤에도

내 기억 속의 그녀는 언제나

무너지기 직전이 아니라,

막 다시 일어서려는 모습으로

서 있다.

두 아이를

뒤에 세워 가려 두고,

자신은

바람이 가장 먼저 부딪히는

앞쪽에 서 있던 사람,

등은

세상 쪽에 두고,

가슴은

아이들 쪽으로 향해 있던 사람.

인간은

서로를 완전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어떤 사랑은

이해보다 먼저 존재한다.

그리고

어떤 이해는

사랑보다 늦게 도착하기도 한다.

나는

지금에서야

그녀를 이해한다.

돌아보면

그녀의 삶은

누군가가 크게 기록할 이야기는 아니나,

오래 접어 두었다가 가끔 꺼내 보면

가슴 깊은 곳이 천천히 젖어드는

그런 이야기로 남아 있다.

말없이

아이 둘을 사랑으로 길러 낸

가장 조용하고,

가장 처연하면서도,

끝내 꺾이지 않았던 힘.

빛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사라지지 않기만을 위해 버텨 낸 시간들.

그래서

더없이 아름다웠던

한 사람의 삶.

그녀는 오래전

영원한 여행 속으로

조용히 걸어 들어갔지만,

지금도

내 기억의 가장 깊은 곳에서는

두 아이를 가슴으로 안고

바람 앞에 서 있는 한 사람으로

아직 살아 있다.

그녀,

바위 뒤에 숨어서 기다리던,

가여워서 더 그리운 나의 님!

그리워하며

이 글을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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