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은 발전했지만, 사람은 여전히 어려운 시대에서
《이 사랑 통역 되나요?》는 통역사 주호진(김선호)과 글로벌 스타 차무희(고윤정)가 만나면서 시작되는 로맨스 드라마다.
언어가 다른 두 사람이 통역이라는 매개를 통해 점점 가까워지는 이야기라는 설정만 보면, 이 작품은 충분히가볍고 편하게 볼 수 있는 드라마다.
나 역시 처음에는 특별한 기대 없이 이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그저 하루를 마무리하며 부담 없이 웃고 넘길 수 있는 작품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몇 장면을 지나면서, 이 드라마는 생각보다 자주 나를 멈춰 세웠다. ‘통역’이라는 설정이 단순한 장치가 아니라, 관계와 감정을 바라보는 방식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주호진(김선호)과 차무희(고윤정)는 분명 대화를 하고 있다. 말은 오가고, 질문도 있고, 대답도 있다.
하지만 그 대화는 좀처럼 서로에게 닿지 않는다.
특히 통역사인 주호진의 입장에서 그 관계는 더 답답하게 다가온다.
말을 정확히 옮기는 일에는 익숙하지만, 감정까지 번역해야 하는 상황 앞에서 그는 계속해서 어긋난다.
같은 말을 하고 있는데도 서로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고, 듣고 있으면서도 이해하지 못하는 장면들이 반복된다. 대화를 하고 있지만, 사실은 대화가 아닌 상태에 가까웠다.
그 답답함 속에서 주호진이 마주하는 인물이 김영환(김원해)이다.
소설가이자, 주호진의 외조부와 인연이 있었던 인물.
어릴 적부터 호진을 지켜봐 왔고, 말보다 태도로 사람을 이해하는 쪽에 가까운 인물이다.
주호진은 김영환과의 대화 속에서, 관계가 꼬이는 이유에 대한 힌트를 듣게 된다.
그때 김영환이 건네는 말이 이 드라마를 보며 가장 오래 남은 대사였다.
"세상에 다른 언어가 몇 개인 줄 아나? 세상 모든 사람의 수만큼 있지.
"사람들은 각자 다 자기 말을 해.그러니까 서로 못 알아먹고, 거꾸로 듣고, 막말을 하지.”
그 대화를 기점으로 주호진은 조금 달라진다.
그전까지의 그는 언어를 정확히 통역해 전달하는 사람이었다.
말의 의미를 옮기는 데에는 능숙했지만, 그 말 뒤에 숨은 마음까지 들여다보려 하지는 않았다.
어쩌면 그건 그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김영환의 말을 듣고 난 뒤, 주호진은 처음으로 ‘번역하지 않는 영역’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차무희가 무슨 말을 했는지가 아니라, 왜 그런 방식으로 말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말보다 감정에 귀를 기울이고, 표현보다 마음의 결을 읽으려 노력한다.
그 과정에서 주호진은 차무희가 사용하는 언어를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그 언어는 사전에 나와 있는 문장이 아니라,
상처와 경계, 그리고 솔직해지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루어진 언어였다.
서로를 오해하던 두 사람은 그렇게 같은 말을 하게 된 것이 아니라 같은 방향을 바라보게 된다.
이 드라마는 결국 그렇게 마무리된다.
언어가 달라서 멀어졌던 관계가, 이해하려는 노력으로 가까워지고,
호감은 신뢰로, 신뢰는 사랑으로 이어진다.
김영환의 그 말을 곱씹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 일상으로 생각이 옮겨갔다.
우리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하며 살아간다.
가족, 친구, 연인, 직장 동료, 그리고 음식점에서 잠깐 마주치는 사람들까지.
하지만 그 모든 말이 제대로 전달되지는 않는다.
같은 말을 해도 각자 다르게 받아들이고, 겉으로 드러난 표현과 속마음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오히려 가까운 사이일수록, 진심이 가장 왜곡된 형태로 전달되는 순간들이 생긴다.
나는 커뮤니케이션이 누군가에게 배워서 완성되는 기술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극 중 대사처럼, 사람들은 각자 자기만의 언어를 가지고 살아간다.
자라온 환경, 경험, 그날의 기분, 관계의 거리감 같은 수많은 요소들이
말의 방향을 바꾸고, 의미를 어긋나게 만든다.
그래서 때로는 분명 좋은 의도로 건넨 말이 전혀 다른 뜻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 상황이 안타깝다거나,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다.
오히려 나는 이 점이 흥미롭게 느껴졌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지만, 누구도 정답을 말해줄 수 없는 영역이라는 점에서.
말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 말의 의미는 언제나 사람 사이 어딘가에 남는다.
이 드라마를 보며 한 가지 질문이 계속 남았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을 좋아하고 있을까.
단순히 로맨스라서, 설정이 흥미로워서, 배우가 좋아서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 이유가 조금 다른 데에 있다고 느꼈다.
이 이야기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와 닿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2026년의 대한민국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요즘 우리는 사람을 만나는 일 자체가 점점 더 조심스러워진 시대를 살고 있다.
세대 간의 간극, 남녀 간의 오해, 가치관의 차이처럼 이름 붙일 수 있는 갈등들이 늘어났고,
그만큼 말 한마디의 무게도 예전보다 훨씬 무거워졌다.
나는 이런 사회적인 이슈를 이야기하거나, 누가 옳고 그른지를 따지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저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사실만은 부정하기 어렵다고 느꼈다.
아이러니하게도, 기술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회사 면접조차 AI가 대신 분석해주고, 사람의 성향과 유형, 관계의 방식까지도 검사와 데이터로 분류해주는 시대다.
우리는 점점 더 효율적으로 사람을 ‘이해하는 방법’을 만들어가고 있지만, 정작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모순적인 선택을 한다.
두바이 쫀득 쿠키가 “덜 달아서 맛있다”는 말처럼
설명은 잘 되지 않지만 묘하게 고개가 끄덕여지는 감각에 끌린다.
과학과 기술, 편리함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영역에서 오히려 더 큰 관심과 감정을 쏟는다.
사람의 마음, 관계의 어긋남, 그리고 끝내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소통의 문제 같은 것들 말이다.
《이 사랑 통역 되나요?》는 바로 그 지점을 건드린다.
이 드라마는 뚜렷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
누구의 말이 맞는지도 말해주지 않고, 어떻게 해야 제대로 소통할 수 있는지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다만 조용히 묻는다.
우리는 정말 서로의 말을 이해하고 있는 걸까?
결국 이 드라마를 보며 떠올린 생각은 단순했다.
우리는 참 모순적인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
기술은 점점 더 정교해지고, 효율과 편리함은 거의 모든 영역에 스며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회는 여전히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
사람과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모든 관계를 기계처럼 계산할 수는 없고,
모든 감정을 기술로 번역할 수도 없다.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효율과 편리함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오히려 더 중요한 영역으로 남아 있는 이유는.
《이 사랑 통역 되나요?》는 그런 이야기를 한다.
정답을 주지 않지만, 사라지지 않을 질문을 남긴다.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아직 완전히 포기하지 않았다는 증거처럼.
나는 이 드라마를 그런 감정으로 보았다.
누군가에게는 가볍게 웃고 넘길 수 있는 이야기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조금은 다르게 바라보게 만드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
그것만으로도 이 작품은 충분히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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