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나무배 물고기 아버지 거친 손 상생의 손
아버지 손
그날은 매서운 바람에 진눈깨비가 흩날렸다. 일출을 보기 위해 자매들이 함께 떠난 여행이었다. 부산에서 동해안을 거쳐 울진에 사는 삼촌 댁에도 다녀올 참이었다. 해변을 끼고 달릴 적마다 끝없이 이어지는 차창 밖의 풍경에 빠져들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감탄사가 먼저 터져 나왔다. 긴 해안도로를 달려 포항 호미곶에서 잠시 내렸다. 탁 트인 바다 앞에서 한동안 말을 잃고 바다만 바라다보았다.
그곳에서 가장 눈길을 끌었던 것은 바로 바다 위에 떠 있는 큰 손이었다. 사진으로만 봤던 실제 조형물의 거대한 손을 바로 눈앞에서 보다니. 조금 떨어져서 바라보노라면 바다를 한 손에 담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하늘을 떠받들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거대한 손의 마디마디가 살아서 움직이는 것 같았다. 굵고 단단한 팔뚝과 손가락 마디마디가 힘차다. 그 끝마다 나란히 앉아 있는 새들의 행렬. 자칫하면 흰 새가 작은 손톱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 그 새가 갈매기인지 비둘기인지는 중요치 않다. 다만 일출을 보기 위해 몰려든 관광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그 손 앞에서 두 손을 모았다.
오른손은 왼손과는 달리 색깔이 많이 바랜 것처럼 보였다. 어디서 읽었는지 모르지만, 한 스쿠버다이빙 동호회가 매년 저곳을 청소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누리꾼들은 갈매기의 분뇨를 놔두는 쪽이 오히려 자연스럽다는 의견이 있어서 잠시 중단한 적도 있다고 했다. 그만큼 호미곶의 손은 이미 유명해졌다는 증거다.
육지에 있는 왼손 앞에 서 본다. 어디선가 많이 본듯하기도 한 손이다. 바다에 놓인 오른손과는 달리 새들은 한 마리도 앉아 있지 않았다. 여전히 청동의 신비스러운 빛깔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고 조금 더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손바닥의 미세한 주름과 자연스럽게 안으로 꺾인 검지의 마디를 눈여겨봤다.
나는 금방 자리를 뜨지 못하고 일행이 소리치며 빨리 오라고 부르는 소리마저도 잠시 잊었다. 왜 상생의 손을 바라보는데 갑자기 아버지의 손이 클로즈업되는 것인지. 살아생전에 한 시도 일을 손에서 놓지 못했던 아버지였다. 눈만 뜨면 뿌연 안개를 헤치고 바닷가로 나간 아버지였다.
당신은 굵고 질긴 배의 닻줄을 들어 올리고 노를 저으며 가족의 생계를 짊어지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다로 나갔다. 투망을 던져 물고기를 잡았던 아버지는 틈새 시간에도 늘 그물을 손질했다. 볕이 좋은 날, 담장 아래 앉아 낡은 그물을 깁고 계셨던 아버지의 거친 손마디를 잊을 수 없다. 동그만 즐비하게 꽂혀있단 바구니에 낚싯바늘
지금도 아련한 기억 속에 사진처럼 보관되어 아버지를 그려본다.
나는 어릴 적 아버지의 손이 가장 크게 보였다. 어떤 힘든 일도 아버지의 손이 닿으면 척척 해결되었다. 아버지와 함께 바위에 붙은 고동을 따러 갔던 기억. 너풀거리는 푸른 머릿결 같은 파래를 따다 말렸던 기억. 갓 잡아 온 오징어 배를 갈라서 해풍에 말렸던 날들.
그때가 몇 학년 때쯤이었나. 늦잠을 자서 지각하는 바람에 호되게 담임선생님께 혼이 난 적이 있었다. 그날 밤에 심한 잠꼬대를 하다가 잠에서 깼는데 그때 내 머리맡을 지키고 앉은 아버지. 아버지의 그 뭉툭하고 거친 손이 내 이마를 짚어주셨다. 아버지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공부 못해도 좋다. 그저 건강하게만 자라거라.”
아버지의 손은 할머니의 약손보다 더 힘이 셌다. 물수건을 이마에 올려 주셨던, 아버지의 손을 어른이 된 지금도 그립기만 하다. 지금은 고인이 된 지 오래지만 나는 아직도 아버지의 그 손길이 그립기만 하다.
언제였던가. 아버지는 내 손을 잡고 뛰다시피 달렸던 아침. 물이 가득 찬 바다의 입구에 여러 척의 배가 파도에 일렁이고 있었다.
아버지는 소년처럼 들뜬 목소리로 ‘저 배가 우리 베란다’ 하며 당신이 그토록 갖고 싶었던 배를 가리키며 뛸 듯이 좋아하셨다. 아버지가 자랑스럽게 말했던 그 배는 어린 내 눈에도 너무 낡아 보였다. 거기 매여있는 배 중에서 가장 작고 볼품없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마냥 신이 나서 내게 자랑했다. 저건, 아버지 배라고. 그때 배를 쓰다듬던 아버지의 떨리던 손.
나는 지금도 사는 것이 팍팍한 날이면 여전히 아버지의 그 손이 그립다. 나무껍질보다 더 거칠면 어떠랴. 내 이마를 짚어주셨던 그 따스한 손의 온도를 기억하니까. 아버지의 임종 때 마지막으로 만졌던 손은 그리 크지 않았다. 백지장처럼 흰 손바닥에는 지문도 없었다.
종갓집 맏며느리로 시집간 나를 보내놓고 언젠가 푹푹 찌던 한 여름날 아버지가 다녀가셨다. 그때 나는 겨우 보리밥과 된장국이 전부인 초라한 밥상을 차릴 수밖에 없었다. 말이 종갓집이지 막상 시집을 와보니 넉넉잖은 살림살이였다. 아버지는 그날 젓가락질이 서툰 아이처럼 밥을 잘 드시지 못했다. 하룻밤만 묵고 가시라고 내가 아무리 권해도 선걸음에 가셨다. 아버지가 간 뒤 꼬깃꼬깃 여러 번 접힌 봉투를 발견했을 때는 이미 아버지는 기차를 탄 지 오래였으리라.
그때 대문을 나서던 아버지의 처진 어깨가 눈에 선하다. 그날 그렇게 좋아하셨던 약주 한 잔 못 드린 것이 가슴 에이게 한다. 아버지는 그때도 내 손을 꼭 잡아주시며 어떤 말씀도 없이 그냥 손등만 몇 번 토닥이셨다.
언젠가 첫 아이를 데리고 친정 갔던 날.
아버지는 친구와 주안상에 막걸리 사발 마주 놓고 담소했다. 잠시 아이를 잠재우고 나온다는 것이, 그만 깜빡 잠들어버렸다. 어렴풋이 잠결에 누군가 내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는 인기척에 깼다. 나는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짠 내음만 맡아도 아버지인 줄 왜 내가 모를까. 그때도 아버지는 당신의 따스한 손으로 나를 보듬어주셨다.
나는 어느새, 그 시절 아버지의 나이보다 더 많은 나이가 되어버렸다. 나도 부모가 되어 행여나 딸자식이 잘살지 못할까 봐, 속 끓이는 부모가 되었다. 그날 아버지가 시집보낸 딸을 찾아와 찬도 없는 끼니를 때우고 돌아가셨던 그 마음을 헤아리고도 남는 나이가 되었다.
햇볕이 강렬하게 바다에 쏟아져 내린다. 누군가 그랬던 것 같다. 그 사람을 보려면 손을 보라고 했던 말. 상생의 손에 내 손을 가만히 대어 본다. 어느 한 곳도 온전한 곳이 없다. 손가락 마디가 불룩불룩하니 못생겼다. 그렇지만 나도 돌아가면 더 따스한 마음을 담아 내 아이들의 지친 이마를 만져줄 작정이다. 어린 날, 내 아버지가 내게 했던 것처럼. 저 망망대해에 떠서 하염없이 바다를 지키는 상생의 손처럼 그렇게. 따뜻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아버지 손
수학여행 간 딸아이 기다리며
가을밤 휘영청 달빛 아래서
마름을 엮으셨던 우리 아버지
달빛 등불 삼아 십리 길 친구들과
걸어온 아이, 아버지 그 모습이
그리 반가웠는데
꼼지락 아기 손, 나무손 다 되었고
손가락 마디마디 세월을 품었어라
세월 따라서 젊음도 흘러가고
흐르는 강물은 다시 오지 못하는 길
빛과 어둠은 함께 가는 동반자
서로서로 껴안으며 함께 사는 세상
사람 사는 세상은 빛과 어둠 평행선
빛은 어둠을 안고
어둠은 빛을 안는다
아이에게
아버지는 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