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가장 화를 많이 낸 상대를 고르라면
나에겐 가족이다.
자취하거나 결혼해서 분가를 하지 않는 이상
태어나서 죽을때까지 매일 봐야하는 사람들.
게다가 우리 집은 그렇게 화목하진 않은, 평범한 가정이라서
항상 하하호호 즐겁지 않았다.
그래서 난 내가 조금 까칠하고 신경질적인 사람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게 웬걸, 자취를 시작하고 나니
화내는 날이 1년에 1~2번이 될까 말까.
가족은 떨어져야 화목하다는 말이 정말 딱 들어맞듯이
따로 사니 더 잘하게 되고 배려하면서 화낼 일이 없어졌다.
그렇게 평화롭지만 혼자 사니 조금은 외로운 2년간의 자취생활 끝에
나에게 룸메이트가 생겼다.
처음엔 마냥 매일이 즐겁고 좋았다.
이렇게 잘 맞는 사람이 있나 싶을 정도로 불편함이 없었다.
하지만 같이 산지 2달이 넘어가면서부터 조금의 불편함이 생기기 시작했다.
밖에서 만나는 게 아닌 집에서 만나서 그런지
점점 편해지는 언사.
서로 다른 입맛과 생활 습관으로 늘어나는 생활비.
그리고 혼자만의 시간이 없다는 점.
함께 있어서 즐겁지만 그럼에도 불편한 상황은 발생한다.
위의 3가지 이유 중 내가 가장 신경쓰이는 것은 우리가 너무 편해진다는 것.
'원래 이렇게 말했는데 왜 지금은 이렇게 말하지?'
'왜이렇게 말투가 퉁명스럽지?'
'내가 이렇게 했는데 왜 똑같이 안 해주지?'
사실 누구나 그럴 수 있는 일들인데도
나랑 너무 잘 맞다고 생각한 사람이 그래서일까.
더 서운했다.
아무리 잘 맞아도 퍼즐처럼 딱 맞을 수는 없는 법.
그 간극(격)에서 발생하는 서운함이 쌓여 어느순간 또 화가 나는 나를 발견했다.
'이런 기분 너무 오랜만인데 내가 왜이러지?'
화를 내는 건 스스로에게 너무 피곤한 일이다.
이런 기분을 느끼고 싶지 않은데 요즘 나는 왜 자꾸 이럴까.
고민을 하다 알아낸 사실을 내가 상대방을 너무 좋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관심 없는 사람은 무슨 행동을 하던 상관이 없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면 좋아할수록 더 기대하게 되고 더 바라게 되는 게 사람 마음인 것 같다.
마음을 너무 주지 않는 것도 나를, 그리고 상대방을 위하는 방법일지 모른다.
더 바라지 않도록, 더 서운하지 않도록
내가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애정을 쏟고 상대방에게 실망하지 않도록.
무언가에게 사랑과 애정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정도가 과해져 내가, 그리고 주변 사람이 힘들지 않도록 조절하는 것도
꼭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