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솔로인가요?

혼자, 익숙해지는 연습 중입니다.

by 히읏시옷


지금까지의 인생을 되돌아보면, 그다지 외로움을 느끼는 성격은 아니었다.

언제나 적당한 거리에서의 관찰자를 선호했다.

깊은 관계에서 오는 감정들의 롤러코스터를 좋아하지 않았다.

학창시절 친구들 무리는 항상 홀수. 그 안에서 홀수를 기쁘게 맞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지에서 ‘언어’를 달리 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외로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지금 말과 감정이 서로에게 잘 전달된걸까?’

‘매너에 어긋난 말과 행동들을 하진 않았을까?‘

‘언제 서로가 친구가 될 수 있는걸까?‘와같은 관계에 대한 걱정과 고민들로 가득채워지면서, 관계에 대한 나의 태도가 정말 성실했구나.


지금껏 맺어온 관계들이 깊지 않은게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저 혼자 있는 시간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필요했기에 무신경하게 보였을 뿐이었다.




즐거웠지만 너무나 힘들었던 셰어하우스의 생활을 마치고 홀로 생활을 집중하기 위해 이사를 결정했다.


사실은 이성적인 결정은 아니었다.

지칠때로 지친 나머지 감정적으로 선택한 집이었다.


집 보는 게 왜 이렇게나 어려운지 부동산을 몇날 몇일을 돌아도 ‘아, 이 집이다.’하면 월세가 비싸고 예산에 맞추면 ‘아, 여기선 못살아‘의 반복이었다.


결국 지칠대로 지쳐 외국인 전용 사이트에서 찾은 1인실을 견학도 해보지 않고 계약해버렸다.


그러면 안됐다.


너무 좁아 이게 방인가 밖인가 헷갈릴 정도의 공간과 분명 지상임에도 지하인것만 같은 꿉꿉함 그 자체의 습도.

그것보다 중요한건 이 집에서 믿을 수 있는건 ‘나’ 하나라는 사실이었다.


윗집에 사는 할아버지도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옆집에 사는 외국인도 무서웠다.

매일 아침 부엌에서 마주쳐 굿모닝하고 인사하던 셰어하우스와 달리 여기서는 마주치면 큰일난 것마냥 피해다니기 바빴다.


‘모른다’는 불안함이 고조되어 두려움과 고독함이 되었다.


혼자가 익숙해질려면, 이 고독한 시간을 즐길 수 있어야 할텐데 가족과 떨어져 타국에 있고 의지할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타격감을 2배로 증폭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일 수 있던 시간들이 진짜의 나를 마주할 수 있게 해주었다.


경험하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것들이었다.




누군가와 연결된 기분이 외로움을 해소해준다는 걸 외로움이라는 감정에 한 방 맞고서 알게되었다.


‘사람들이 sns를 하고 연애를 하는 이유구나’싶었다.


이 집에 온 뒤로 누구보다 집을 좋아하던 내가 귀가하고 싶지 않아 사람에게 집착하게 되었다.


함께 시간을 보내주지 않으면 서운해하고 미움 받지 않기 위해 상대가 부담스러운 친절들을 뿌리고 다녔다. 참 내 자신이 부끄럽고 막무가내인 시간들을 보냈다.


나에 대한 존중이 선행되어야 한다고들 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하는건지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으니 답답했다.


고민 끝에 나는 또 다시 이사를 결정했다.


집이라는 공간에 내가 아닌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걸 인정했다. 그게 누구든.

그게 옳은 방식이든 아니든 내가 안정감을 느끼는 방식인건 분명했으니까.


스스로의 존재감이 희미해질때쯤 타인으로부터 색칠될테니까.

이것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언젠가는 내 스스로 색을 가득 채울 수 있기를 바라며.

나는 또다시 함께 살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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