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 실습이 끝나고 졸업이 다가올 때쯤 할머니는 우리 가족들 중 일부를 기억하지 못했고 옛날에 있었던 일들이 현재인 것처럼 이야기하고 행동하기 시작했다.
내가 대학을 졸업했을 땐 집 앞 슈퍼아줌마도 우리 할머니가 치매가 있다는 걸 알고 있을 정도였고 우리 할머니가 치매확진을 받고 등급을 받는 건 내가 첫 직장을 다니면서였다.
첫 직장에서 '노인장기요양보험공단', '등급', '주간보호센터', '노치원' 등의 생소한 것들을 알 수 있었다.
대학에서는 배우지 못한 부분들이었기에 직장에서 배운 것을 우리 할머니에게 적용시킬 수 있도록 준비했다.
어느 정도 정보를 정리해서 엄마와 쉬는 날을 정해 할머니와 병원부터 공단까지 다녀왔다.
등급신청까지 진행이 되니 할머니가 주간보호센터에서 지낼 수 있다는 생각에 좀 안심이 되었다.
낮시간에는 할머니를 케어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기에 신경이 쓰였고 부모님 업무에도 지장이 생길 때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공단에서 심사를 다녀가고 할머니는 치매를 앓고 있는 어르신들에게 나오는 '5등급'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주간보호센터를 다니는 할머니가 한편으론 안쓰러웠지만, 또 한편으론 다행이다 싶었다.
할머니는 주간보호센터를 오래 다니지는 못했던 것 같다.
내가 결혼하여 아이를 낳았을 때쯤 할머니가 금방 있었던 일도 깜빡하고, 옷에 실수를 할 때도 있었다.
출산 후, 엄마집에 잠시 몇 주간 있을 땐 정말 힘들었다.
할머니는 아이가 있다는 것을 금방 잊고 방에서 담배를 피울 때도 있었고 아이를 안아보겠다고 오셨다가 금방 누구 애기냐고 물어볼 때도 있었다.
아이에게 수유를 하거나 유축한 모유를 먹일 땐 옆에서 보다가 갑자기 안아서 데려가려고도 했었다.
결국, 엄마가 나서서 할머니와 애기를 좀 떨어트려놓았고 나는 집에 일찍 돌아오게 되었다.
몇 달 뒤엔 할머니의 치매가 더 심해져 점점 지쳐가는 가족들과 상의하여 할머니를 요양시설에 모시게 되었다.
할머니는 그곳에서 꽤 오랜 시간 동안 지내시게 되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면회가 금지되고, 어느 날부턴 할머니와 영상통화를 했다는 말도 듣지 못했다.
그러다 진짜 아무 날도 아닌 날, 엄마랑 이야기를 나누다 보게 된 요양시설과 엄마의 문자는 요양시설에서 일하고 있는 내가 보기엔 뭔가 계산법이 이상했고 너무 말라있는 할머니의 모습에 놀라 그다음 날 바로 할머니를 내가 근무하고 있는 요양시설로 모시게 되었다.
내가 문자를 보지 않았다면, 요양시설에서 근무하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나는 그 작은 틈을 볼 수 있었을까?
할머니가 퇴소하던 날 요양시설 선생님이 나에게 "할머니 식욕촉진제 없으면 식사랑 간식 못 드세요", "간식, 밥 저작 안 돼서 매일 갈아서 드려야 돼요"라고 하였고 나는 진짜 할머니가 많이 안 좋아졌나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