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수많은 이별 중 가장 슬픈 마지막 이별

by 우서율

노인복지를 하는 나에게는 어르신들과의 하루하루가 항상 소중했다.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어르신들과의 이별이 많았고 그 이별의 시작과 끝을 특별한 일이 있지 않다면 항상 함께 하였기에 소중했다.

그리고 이별과정을 겪는 자녀들의 심정처럼 나도 어르신들과의 이별은 슬프고 힘들었고 그 과정이 1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쌓이다 보니 나에겐 큰 힘듦이 되어있었다.


나는 항상 출근하기 전 '어르신들과 너무 정을 붙이면 안 된다.'라는 생각을 하고 출근을 했지만 내가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생각이었고, 나는 정이 많은 사람이다.

어르신들의 마지막은 아침, 점심, 저녁, 새벽 아무 때나 찾아오기에 라운딩을 돌다가 조금이라도 달라진 어르신들의 모습을 발견하면 심장부터 떨렸다.

어르신께서 먼 여행을 시작하시기 전 나는 어르신께서 가족들과의 마지막 인사를 하실 수 있도록 가족들과 통화를 직접 해야 하는 직책이었고 그 순간이 되면 항상 긴장되고 손이 떨리고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처음에는 이런 일이 처음이니까, 두 번째는 첫 번째 경험의 통화가 생각나서, 세 번째는 보호자님과의 통화 중 내가 울까 봐 등의 이유였다.


전화를 받는 보호자님들의 첫마디는 다 달랐다.

"금방 가겠습니다.", "....", "어디가 어떻게 안 좋은데요?", "그럼 병원으로 모셔야죠!"......

여기서 내가 제일 힘들어했던 말은 병원으로 모셔야지 뭐 하고 있냐는 보호자님의 외침이다.

그 이유는 보호자님께 다시 물어야 하는 말 때문이었다.

"보호자님, 119에 전화하겠습니다. 어르신 연명치료동의하시는 것 맞으시죠? DNR동의하신 적 없으시죠?"

이 질문은 하면 대부분의 보호자들은 병원이송을 취소하고 요양원으로 오신다.

그 이유는 우리 엄마가, 우리 아빠가 수십 년 동안 치매, 파킨슨, 루게릭, 편마비, 뇌경색 등의 질병으로부터 고통받았고 그 고통을 생명연장으로 더 지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우리 엄마, 우리 아빠가 더 이상 힘든 게 싫으니 연명치료는 거부하겠습니다.'라는 이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고 나는 '어떻게 내 엄마를, 내 아빠를 이렇게 쉽게 포기하지?'라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일을 계속하다 보니, 어르신들과의 상담을 계속 진행하다 보니 대부분의 어르신들과 보호자님들은 그동안 질병으로부터의 고통이 너무 힘들었음을, 나에게 마지막순간이 찾아온다면 나는 기꺼이 그 마지막을 받아들이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셨고 그 마지막을 붙잡고 싶어 하는 자녀에겐 오히려 어르신께서 당신을 이만 놓아주길 바라셨다.


'사람이 숨을 멈추는 순간 = 어르신께서 긴 여행을 시작하는 순간'

그 순간 나를 붙잡고, 옆에 있는 사람을 붙잡고, 어르신을 붙잡고 참았던 눈물을 보호자가 터트리는 순간 나는 보호자님들께 이야기한다.

"사람의 귀는 제일 마지막 순간까지 열려있다고 합니다. 지금은 어르신께서 긴 여행을 시작하실 수 있도록 마지막 인사와 어르신께 가장 하고 싶은 말, 사랑한다는 말씀을 귀에 해주시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나는 항상 거의 처음 순서로 어르신께 인사를 드린다.

"어르신, 항상 딸처럼, 손녀처럼 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곳만 여행하세요. 나중에 또 만나요."


인사가 끝나면 나는 어르신과 보호자님들께서 마지막 인사를 나누실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드리는데 사실은 그 방안에 있으면 나도 같이 엉엉거리며 울까 봐 빠르게 인사를 하고 나오는 것이다.

내가 울면 방안의 가족들도 더 울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항상 울음을 참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제일 오랫동안 봐왔던, 라포형성이 너무 잘 되어있던 어르신들과의 이별은 더더욱 큰 감정으로 다가왔기에 어쩔 땐 나도 엉엉 울게 되었다.


나는 어르신들의 마지막 순간을 노인복지 일을 하는 동안 너무 많이 겪었고 나와 라포형성이 되어있는 어르신들의 마지막 순간을 보는 것을 더 겪고 싶지 않고 힘들었기에 점점 지쳐갔다.

그러던 중 번아웃이 오게 되었는데 번아웃을 이겨낼 기운도 없었고 여러 보호자들의 다양한 컴플레인과 정말 말도 안 되는 요구들에 지쳐 나는 퇴사를 결정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