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사전 : 문제를 해결하거나 궁금증을 풀기 위하여 서로 의논함.
업무를 하다 보면 하루에 적게는 1번, 많게는 30번도 넘는 상담을 진행한다.
어쩔 땐 한 사람과 같은 내용의 상담을 여러 번 진행하여 하루에서 이틀이라는 시간을 쓰게 된다.
이럴 땐 정말 지쳐가는 하루가 된다.
내가 진행했던 상담 중 가장 기억에 남고 힘들었던 상담은 "우리 엄마를 선생님 엄마라고 생각하고 모셔주세요. 당분간은 매일 전화드리겠습니다."였다.
물론 상담의 주제는 괜찮았다.
나는 솔직히 내 부모님보다, 내 할머니보다 어르신들을 더 많은 시간을 보내왔고 조금이라도 더 생각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보호자님의 생각은 나와 달랐던 것 같다.
나는 보호자님과의 상담 중 '당분간은 매일 전화드리겠습니다.'에서 이상함을 바로 캐치했어야만 했다.
어르신께서 입소하시고부터 정말 보호자님은 시간에 관계없이 전화를 하고 싶을 때마다 전화를 하였다.
퇴근 전, 퇴근 후는 기본이었고 새벽시간, 늦은 저녁시간도 당연했다.
나는 새로 입소하신 어르신의 보호자님이고 당연히 내 부모님이 걱정되는 마음에 전화를 하시는 그 마음이 이해가 되어 당연히 전화를 받아 상담을 해드렸지만 그건 처음부터 바로잡았어야 했다.
한번, 두 번이 꽤 많은 여러 번이 되었을 때 내 가족들과 아이들은 자다가 놀래서 일어나는 것을 반복하다 보니 점점 예민해져 갔고 나는 보호자님께 어르신께서 충분히 적응기간을 보내셨고 적응도 잘했음을 말씀드리며 이젠 업무시간이 아닌 그 외에 시간에는 전화를 받지 못함을 말씀드렸다.
하지만 내 생각과는 다르게 보호자님은 평소 전화를 하시던 데로 전화를 하셨고 나는 매번 같은 멘트를 할 뿐이었다.
상담의 내용은 항상 같은 것이었다.
"기저귀 사용하시지만 화장실 가실 수 있다고 하시면 화장실로 모셔주세요.", "식사를 잘하시지만 그래도 식사케어해 주시고 선생님께서 좀 봐주세요." 등의 상담이 반복되니 나는 점점 우리 시설에 대한 보호자님의 믿음이 없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고 보호자님께 생각을 솔직하게 말씀을 드렸다.
"보호자님, 저희 시설에서 어르신을 소홀리 대하지 않습니다. 저희를 좀 더 믿어주시는 것은 어떨까요?"
나는 이 질문에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라는 대답을 원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아니. 안 믿는 건 아닌데 요즘 요양시설 관련된 기사들도 많고 제가 여기저기서 들은 이야기들이 있어서요."였다.
여기서 나는 잠시 당황스러웠지만 금방 정신을 차리고 다시 보호자님께 질문을 하였다.
"저희 시설에서 어르신을 소홀리 대한다는 이야기를 들으셨다는 말씀이신가요?"
"아니요. 그건 아닌데 다른 시설들은 하루 2번 기저귀를 갈아주는 곳도 있고 방치한다는 말이 있어서요."
이 말을 들은 나는 보호자님께서 조금 더 우리에게 신뢰를 하실 수 있도록 어르신 생활사진, 식사하시는 모습, 프로그램사진 등을 자주 보내드리고 소통을 하였으나 보호자님의 신뢰도는 높아질 수 없었던 것 같다.
많은 상담을 진행하였음에도 돌아오는 것은 우리에 대한 불신이었고 나는 점점 그 상담내용에 지쳐가다
"어르신께서 적응도 잘하셨으나 보호자님께서 저희에 대한 신뢰가 없으시다면 저희는 어르신을 모시는 것이 힘들 것 같습니다. 다른 요양시설을 알아보시거나 집에서 모셔보시는 것은 어떨까요?"라고 말씀을 드렸고
보호자님은 그때서야 전화의 빈도수를 줄여가셨다.
사실, 나는 어르신을 포기하는 듯한 말을 하는 것을 싫어한다.
내가 어르신을 포기하면 어르신은 다른 곳에서 또 적응을 해야 하고 그만큼 어르신도 보호자님도 힘들기에 최대한 맞춰보려고 노력하는 편이지만 정말 하루에도 수십 번씩 통화하고 업무 중, 집에서의 일상생활 중, 저녁시간 자는 중에 온 전화를 한 번이라도 받지 못했을 때 돌아오는 보호자님의 "아니. 보호자 전화를 왜 이렇게 안 받으세요?", "시설에 계신 어르신 관련 상담은 시간이 정해져 있으면 안 되죠"라는 말에 지쳐갔고 더 이상 보호자님의 목소리도 듣고 싶지 않아 졌다.
나중엔 시설관계자에게 "그 선생님은 왜 이렇게 전화를 받지 않는 것인지, 일을 안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라는 보호자님의 컴플레인에 나는 정말 지쳤고 그 이후 다른 보호자님들의 상담전화도, 내 지인에게서 오는 전화의 벨소리와 진동소리에도 두근거림이 시작되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나는 그 어르신의 상담전화를 다른 사람들에게 돌리기 시작하였고 전화소리에 긴장이 되는 느낌이 없어지기까지는 몇 달이 걸린 것 같다.
모든 보호자들이 똑같진 않지만 가끔가다 이렇게 힘든 경우가 걸리면 진짜 몸도 힘들고 마음도 힘들게 되는 것 같다.
이와는 다르게 기분 좋은 상담도 있다.
어르신들과의 일상을 함께 이야기 나누고 점점 좋아지는 어르신들의 신체기능에 함께 행복해하며 더 좋은 결과를 생각하게 되는 그런 상담을 진행하면 그날은 하루종일 기분도 좋고 일의 능률도 올라가는 것 같다.
가끔은 어르신들에 대한 상담과 함께 보호자님에 대한 상담을 진행하게 되는 경우도 있는데 보통은 어르신들의 과거에 대해 이야기를 하시다가 본인의 이야기를 하시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땐 보호자님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드리고 공감되는 부분엔 공감을 해드리며 후엔 보호자님께 필요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그렇게 보호자님과의 라포형성을 조금씩 형성하다 보면 나중엔 시설퇴사 전 한번 더 생각을 해보게 되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나와 함께 한 선생님들, 어르신들, 그리고 보호자님들과의 인연을 여기서 끝맺음을 하는 것이 맞는지 생각을 안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이유로 퇴사가 결정되었을 땐 그 아쉬움을 가득 담은 인사를 하곤 하는데 그게 이번에 퇴사한 곳에서의 마지막 기억이다.
헤어짐이 아쉽고 한편으로는 미안함이 있던 그런 헤어짐이었다.
상담을 통해 웃고, 울고,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고, 위로를 받고, 위로를 해주고, 헤어짐이 쉽고, 헤어짐이 아쉽고...
이 모든 것은 사람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로 시작된다.
나는 수많은 상담들을 통해 상담의 중요성을 알았고 내가 상담을 받아야 하는 일이 있으면 평소에 조심하던 것보다 더 조심하게 대하는 모습이 생겼다.
어쩔 땐 이런 모습을 옆에서 보던 남편이 답답해할 때도 있지만 나는 왠지 더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무심코 말한 그 한마디가 그 사람의 기분을, 생각을 다르게 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