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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모 Sep 21. 2024

아무도 꺼내지 않는 이야기와 2주 간의 동행 (4)

그곳은 일본이었다.

네 번째 이야기

떠나기 전 날, 호텔로 가는 길.

K가 해준 말, 그래도 언제나 네 편일 것이라고 한 말이 마음 한 켠에 든든하게 남는다. 내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던 J와 B, 그리고 이해하지는 못하겠지만 가장 나약한 모습을 보이던 L을 기억할 것이다. 이 긴 여행이 어쩔 수 없이 내 마음을 더 많은 사람에게 열어 보이게 하였고, 그것이 날 더 기쁘게 해준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혼자 끙끙 앓는 것보다 누군가에게 말하는 게 더 낫지 않냐는 B의 말도 기억에 남는다. 코코짱과 나나짱은 그저 내 마음이 녹아내릴만큼 귀여운 아기들이었고, 그들 덕분에 난 따뜻한 체온에서 오는 사랑스러움을, 그에 대한 고마움을 흠뻑 느낄 수 있었다.


K와 O, E 덕분에 생각지도 못했던 만남들이 내 인생에 남게 되었고, 고마운 사람들이 한가득 남게 되었다. K 어머니의 따뜻하고 정성 가득한 밥상부터, 너무나 정갈하게 정리해주신 빨랫감, K 여동생 A의 사랑스러운 웃음과, K 아버지의 투박한 마음 씀씀이, K 할머니의 모습까지. 어쩜 동화 속에서 나온 것만 같은 가족이 존재하는지. 그 속에 잠깐 머물렀고, 대가 없는 베풂을 받았음에 평생 고마워할 것이다. E 어머니와 이모와 사촌이 나누어준 그 모든 음식과 또한 따뜻하고 정갈한 잠자리와, 따뜻한 아침밥상. 할머니, 할아버지의 신기해하는 그 눈동자. O는 글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잘 몰랐다. 질투가 나기도 했었고, 그러다 미안해하다가, 이유 없이 미워하기도 했었고, 그럴 이유를 찾지 못했다가, 인사 대신 눈웃음으로 대신할 수밖에 없었던 어색한 순간들. 어쩌면 더 가까워질 기회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K 말대로 난 생각이 많고, 스스로를 설득하려 하며, 그렇기에 과거 선택에 쉽게 만족하지 못하지만, 그게 나라는 사람인 걸 알게 되었음은 다행인 일이다. 그렇기에 이런 글도 쓸 수 있는 것이고,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언젠가는 위로를 줄 수도 있을 것이며, 때때로 버튼을 눌러 생각을 덜어버리는 선택을 할 수도 있음을 아는 것이다.


L의 마지막 눈빛은 무서웠다. 한없이 안쓰럽다가도 한없이 멀어짐을 느꼈다. 새벽 시간을 빌려 이야기를 나눈 두 번의 시간 동안은 정말 안쓰럽게 사랑스러운 널 위로해주고 싶었는데, 그 외에는 한 마디 한 마디가 짜증나서 옆에 있을 수가 없었어. 난 누구도 비난할 수 없이, 오롯이 이 마음을 감당해야 한다. 약간의 실망과 약간의 비난이 섞인 너의 눈빛이 그저 피곤해서였기를. 무엇이든 언제든 물어보라는 너에게 선뜻 물어보지 못하는 것은, 모호한 물음을 잡아서 그럴 듯한 문장으로 다듬어내는 과정에서 누구에게도 상처주지 않기 위함이다. 그러니 할 수 있는 모든 시나리오에서 우리가 더 상처받지 않는 시나리오는 없다. 나만 알고 있는 너의 그 연약함에 상처내고 싶지 않다. 이건 친절일까, 미련함일까.


여행을 뒤로 하고 다시 집으로

우리의 사이가 이전과 같을 수는 없다. 나쁜 기억으로 버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제서야 그간의 모든 꿈같은 여정의 마지막 한 줄기마저 놓아버린 기분이다. 수많은 아픔이 교차했으나, 그것 외에는 그저 소중한 추억 중 하나로 남기려 애쓸 것이다.. 14일 간의 이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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