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꼬모 Sep 21. 2024

아무도 꺼내지 않는 이야기와 2주 간의 동행 (3)

그곳은 일본이었다.

세 번째 이야기.

B와 사이 좋게 이어폰 하나씩 나눠 끼고 도쿄로 가는 야간 버스 안

그간 너에게서 보아왔던 모습들을 아직도 보고 있다. 그때의 감정을 떠올리고 있다. 이건 나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너에게 화가 나게 한다. 너가 다시 세상에 마음을 열 수 있도록 도와줬는데 너는 내가 다시 마음을 닫도록 도와주는 것 같다. 불공평하다. 다시 화가 난다. 널 이해하려 노력할수록 눈물 나게 화가 나고, 그간의 마음들이 씁쓸하게 남는 것을 느낀다. 다정함이 이기적일 있다는 넌 모른다. 동시에 나는 이 모든 걸 너에게 투척해서 무슨 이유가 되었건 나에게서 멀어지는 것을 아직은 견디지 못할 것 같다. 두 겁쟁이들. 더 일찍 알았으면 좋았을 것을!


안타깝다, 안쓰럽다. 그러다 걸어오는 이기적인 다정함에 나는 웃어넘기고 만다. 웃음 뒤에 씁쓸함만이 남는다. 그리고는 이 모든 생각을 다시 처음부터 하는 것이다. 너에게 얼마나 말해줄 수 있을까, 무엇이라도 말을 해보기는 할 수 있을까. 이 모든 날 괴롭히는 망상과 생각에서 언제쯤 벗어날 수 있을까. 너가 너무 필요없어져버리면 좋겠어.


다시 샛길에서 돌아와, B가 상기시켜줬듯, 난 깨끗하고 이국적이고 편하고 입맛에 맞는 음식이 가득한 이곳에서 이방인 친구들과 있다. 가깝지만 먼 이방인으로 생각보다도 더 놀라운 세상에 있다는 것을 기억해보자. 이제 거의 일주일이 다 되어간다. 선곡 끝내주는 B의 플레이리스트를 들으며. 그래, 나도 화내고 싶지 않다. 그게 아름다운 추억을 갉아먹을 것을 아니까. 너무나 잘 아니까. 그런데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하지?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는 도쿄 가는 기차 안

졸린 눈을 뒤로 하고, 감기는 눈을 애써 뜨며 또 여행을 맞이하는 아침. K의 어머니가 차려주신 정성을 감사하게 몸 속으로 차곡차곡 쌓고 수많은 친절을 넙죽넙죽 받아먹으며. 나는 다소 혼자인 듯한 기분이 들고, 자주 널 떠올렸던 그 습관에서 돌아오기 위해 스스로에게 새로운 현실을 알려줘야 하는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애써 잊으려 하고 있다. 다행히도 너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게 되었고,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믿었던 것에 배신당한 듯한 느낌을 지우기는 어렵다.


진심으로 마음이 아프지만 그럼에도 받아들이고 나아가야 하는 것을. 더 이상의 상실이 없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정성 가득한 아침밥으로 눌러보자.


저녁 먹으러 가는 지하철 안

어른이 되고 살아간다는 건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을 안고 살아간다는 것. 나를 더 믿어보며, 상처받더라도, 나만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위로 삼아. '그럼에도 불구하고'이다. 상처 받았지만, 그 상처를 되돌려주지 않고,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니 이해하기를 포기하는 것. 상처 받았음을 받아들이고, 여기에서 멈추는 것.


어디에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겠다, 피곤함에 정신 없는 기차 안

오늘은 커피와 푸딩, 요거트로 아침 요기를 했는데 에스프레소와 설탕으로도 내 기분이 나아지지 않는 걸 보면 아무래도 악몽을 꾼 듯하다. 절대 원치 않던 상황 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런 악몽. 그리고 그것이 지금 나의 현실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 난 그저 주저앉아버리고 만다. 

좋았던 기억들이 안타깝게도 퇴색되어가고 있다. 힘들고 외로울 때 꺼내보았던 그 소중한 기억들이 이제는 아무 의미 없어지는 걸까? 슬프다.


너무나 마음이 아프게도 이전의 감당하기 어려웠던 감정들이 조금 올라오는 걸 느낀다. 이걸 털어버려야 하는 건데. 그래야 후회하지 않을 것 같다. 마음을 잘 다잡고, 말해봐야 할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아무도 꺼내지 않는 이야기와 2주 간의 동행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