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난도, 최지혜, 이수진, 이향은
공간.
취향.
소비.
취향을 정의하고 소비를 이끌어내는 공간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최초의 백화점 '봉 마르셰'
- 1852년 파리에 개점
- 마케팅의 기본이라고 하는 4P; Product, Price, Promotion, Place가 정확히 구현된 사례
- 박리다매와 염가 판매는 부시코가 만들어낸 백화점의 가장 혁신적인 유혹의 기술이다. 재고를 빠르게 처분해 트렌디한 상품으로 채울 수 있었다. "많이 팔기 위해서는 싸게 팔아야 하고, 싸게 팔기 위해서는 많이 팔아야 한다."라는 그의 판매전략은 자본주의 경제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고 있다.
- 봉 마르셰 신관에는 독서실과 클래식 콘서트를 위한 큰 홀을 비롯해 루브르박물관급의 장대한 갤러리까지 설치했다. 이는 오늘날 문화마케팅의 원형을 보여준다.
- 부르주아적인 라이프스타일을 모방하게 하며 '필요'에 의한 소비가 아닌 '욕구 충족을 위한 대중 소비'를 탄생시켰다.
- 공급이 수요에 부응한 것이 아니라, 수요자의 소비 욕망을 주도적으로 창출해나갔다.
공간과 장소
- 저명한 인문지리학자 이 푸 투안의 <공간과 장소>에 따르면, '공간 + 경험 = 장소', 즉 공간에 경험이 더해질 때 장소라고 부를 수 있다. 공간은 추상적 의미가 강하지만, 장소는 공간 중에서도 특별히 삶과 경험, 애착이 녹아든 곳을 말한다.
- 예를 들어 스타벅스는 매장을 '혼자만의 커피'에 집중할 수 있는 특별한 의미가 더해진 장소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2017년 굿즈 오프라인 판매를 모두 중단한 이유는 공간이 주는 '장소성'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백화점의 의미 '우리에겐 환상감이 필요하다'
- 자크 라캉은 "일상이란 죽음으로 가는 지루한 통로"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 지루함을 돌파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비일상성, 즉 일상에서 볼 수 없는 환상감이다.
- 백화점과 테마파크는 공간을 폐쇄화하고, 하나의 테마와 콘셉트를 통해 공간 이미지를 창출함으로써 환상을 공간으로 구현한다.
- 결국 가고 싶은 곳의 비결은 '현실을 초월한 환상'을 공간적 요소들을 통해 어떻게 구현하느냐에 달려 있다.
백화점의 공공 기능
- 더현대 서울이 위치한 여의도의 지역적 맥락은 공공성의 잠재력이 충만했다. 여의도 한강공원은 연 1700만~2000만 명이 방문하는 서울시의 가장 대표적인 공공공간이고, 더현대 서울 건너편의 여의도공원은 대한민국의 전통적인 '여의도광장'이었다.
- 더현대 서울 개점 이후 여의도 전체의 동선에 변화가 이뤄지고 있다. 기존 한강공원의 야외문화가 더현대 서울과 이어지고, 여의도 윤중로의 꽃이 만개했을 때는 더현대 서울로 이어지는 구간에 인파의 흐름이 형성되고, 더현대 서울은 다시 이 인파를 한강공원으로 이어준다. 백화점의 공공 기능이 극대화된 것이다.
- 뉴리테이 시대에는 사공간의 공공성이 중요해진다. 사유성과 공공성이 교차하는 공간을 '역공간'이라고 부른다.
- 도시 내 대표적인 역공간은 공원, 박물관, 도서관, 문화센터 등인데, 현대사회에서 이런 공간은 갈수록 영리화되고, 영리 목적의 쇼핑 공간이 공공기능을 수행하는 것은 흥미로운 변화다.
공간의 역할
- 상업공간은 상품을 판매해야 존재 의의를 가질 수 있다.
- 일본 서점 '츠타야'의 창업자 마스다 무네아키는 <지적자본론>에서 공간의 '제안 능력'을 매우 강조한다. 소비자들은 물건이 부족하던 1단계 소비사회와 상품이 넘쳐나는 2단계 소비사회를 넘어, 이제는 수많은 플랫폼이 존재하는 3단계 소비사회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고객 가치는 존중하고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고도의 편집 능력이 유통의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백화점이 브랜드별로 구획화되지 않고, 편집매장화하는 것은 이러한 '제안'의 요소가 극대화된 조닝이라고 볼 수 있다.
- 글로벌화로 국가 간 경계가 사라지고 있는 크로스오버 시대에, '국가'라는 기준점은 미래형 리테일 식품관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SMT 라운지의 콘셉트는 멕시코와 홍콩의 퓨전이다. 이처럼 혼성화cross-over하는 것 역시 공간 페르소나화 전략 중 하나다. 페르소나 공간에서는 전통보다 다양성이 중요하다.
예술의 역할
- 백화점의 미래는 사치품(럭셔리)과 예술품(아트)이 좌우할 것이다.
파트너십
- 개성과 매출의 밸런스가 중요해지면서, 백화점 브랜드 소싱에서 중요해진 것이 '파트너십'이다. (...) 일련의 노력을 인정받아 백화점업계 최초로 '2021 지역사회공헌 인정제' 인정 기업으로 선정된 적도 있다. 이는 보건복지부와 한국사회복지협의회가 공동 주관하는 제도로, 지역사회, 비영리단체와 파트너십을 맺고 지속적인 사회공헌 활동을 펼치는 기업과 기관에 주어지고 있다.
레이아웃
- 상업적 산책promenade retail
- 레이아웃은 구매 촉진뿐만 아니라 브랜드의 메시지 전달 수단으로도 기능한다.
- 홍익대 건축학과 김주연 교수는 스페이스 브랜딩의 네 가지 원칙 중 하나로 단순성을 꼽았다. 커뮤니케이션 과잉 사회에서 소비자들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방어 수단은 마음을 단순화하는 것이다.
- 공간적 여백과 같은 레이아웃이 가능한 것은 로고 없이도 브랜드를 알아보는 충성고객을 충분히 확보한 자신감에서 출발한다.
브랜드 정체성
- 이제 브랜드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업태로 정의하지 않는다. 식품업계는 소비자의 건강한 삶을 지향하고, 침구업계는 잠을 매개로 소비자의 일상을 보살피는 서비스를 표방한다.
- 이제 현대의 상업공간은 소비가 아니라 고객의 시간을 빼앗는 곳이 되어야 하며, 새로운 취향을 제안하고 라이프스타일을 설계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 이 문제는 공간 설계, 브랜드 머천다이징만의 문제가 아니라 마케팅, 콘텐츠 등을 포괄하는 커뮤니케이션의 문제이기도 하다.
포스트 모더니즘
- 이합 하산Ihab Hassan에 따르면, 포스트 모더니즘의 특성은 비결정성, 탈정전화, 자아의 분산, 잡종화, 카니발화, 행위와 참여 등을 들 수 있는데, 이런 특징을 관통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하나의 양식이 규범으로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해체를 통해 다양한 양식으로 분산, 공존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결국 '다중정체성'을 본질적 요소로 만든다. 다면적 자아 정체성을 근거로 하는 페르소나 공간은 포스트 모더니즘의 필연적 귀결이다.
인플루언서
- 커뮤니케이션팀은 더현대 서울이 오픈하자마자 '더현대 서울에서만'이라는 정보전달용 영상들을 만들었는데, 이 영상은 일반 소비자가 보기에 좋다기보다는 인플루언서들이 활용하기 좋은 브이로그 포맷을 유지했다. 인플루언서와 유튜버는 늘 새로운 콘텐츠를 찾아 헤매기에, 영상을 그들의 로직에 맞게 만들어주자 널리 전파되기 시작했다. 굳이 광고하지 않아도 광고 효과를 낼 수 있었다.
문화콘텐츠
- 문화콘텐츠팀에서 관할하는 모든 활동의 목적은 직접적 판매라기보다는 '집객'이다. 사람을 모으는 것은 그곳에서만 진행되는 문화적 체험이기 때문이다.
- 예술 산업이 크게 주목받는 있는데, 전문 공간을 만들어 브랜드 네임이 있거나 대중이 선호할 만한 전시를 꾸준히 유치하면 여러 차원에서 실익이 클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 알트원(더현대 서울의 대표 문화콘텐츠 브랜드)의 목표는 예술의전당이나 DDP처럼 새로운 예술 문화를 전문적으로 소개하는 공간으로 포지셔닝되는 것이다.
- 더현대 서울은 '콘텐츠랩'이라는 자체연구소를 만들어 최신 트렌드를 연구했는데, 2주에 한 번씩 장소, 사람, 이슈 등을 포괄하는 최신 트렌드 자료를 모아 공유하며 토론했다고 한다.
- 최근 MZ 세대는 미술품 투자에 관심이 매우 높다. 이에 백화점 역시 갤러리 공간을 표방하며 미술작품의 전시와 판매를 통해 고객경험과 매출 증대를 함께 도모하는 새로운 비즈니스모델을 접목하고 있다.
- 영국의 유명 백화점 해러즈Harrods는 백화점 층에 아트 갤러리를, 프랑스의 갤러리 라파예트Galeries Lafayette 백화점도 1층에 문화 공간 갤러리 데 갤러리Galerie des Galeries를 론칭해 시즌별로 예술작품을 전시한다.
- 기술 as 콘텐츠: LG 유플러스의 '틈'. 제품을 홍보하거나 기술을 보여주기 위해 만든 공간이 아니라 콘텐츠를 즐기면서 LG 유플러스를 자연스럽게 떠올리는 효과를 기대하는 것.
쇼핑의 본질
-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구분하는 이분법적 사고는 어쩌면 질문부터 잘못된 것인지도 모른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중 어떤 채널을 택할 것인가'라는 물음보다 본질적인 질문은 '상품 과잉의 시대의 고객에게 시대에 맞는 선택지를 제안할 수 있는가'이다.
- 과거처럼 단지 100가지의 물건을 늘어놓는 공간이 위기일 뿐이다. 상품을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며 느끼는 쇼핑의 본질적 즐거움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리테일테크는 늘 새로운 쇼핑의 즐거움을 찾는 소비자를 사로잡기 위한 미래 유통의 열쇠가 될 것이다.
트렌드
- 이제 가장 트렌디한 것이 가장 럭셔리한 것이다.
- 백화점은 하나의 '장치 산업'이다. 거대한 투자를 통해 유통공간이라는 장치를 설치해서 경상적인 이윤을 추구한다. 장기 임대계약과 비싼 인테리어로 순발력 있게 변화를 도모하기 쉽지 않다. 더현대 서울은 변화 자체를 하나의 상수로 둠으로써 이 딜레마를 해결하고자 했다. 상품 매입도 지속적으로 순환하는 구조를 상시화했고, 트렌드 변화에 순발력 있게 대응할 공간적 여지를 만들어두고자 했다. ex) 충분한 팝업스토어 공간
고객의 입장
- 마스다 무네야키의 <지적자본론>: 팔 매의 매장이 아니라 살 매의 매장이다. 물건을 '파는' 비즈니스를 하는 판매자 입장이 아니라, 물건을 '사는' 고객 입장에 서야 한다는 것이다.
오감이 예민한 사람인 나에게 쾌적한 행복감pleasant happiness을 주었던 공간인 백화점이 아주 동떨어져 보이는 공공성을 지닌 장소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했다. 예술의 민주주의화를 꿈꾸는 나에게, 그리고 트렌드한 디자인에 둘러싸이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공공성, 예술을 가장 상업적인 공간에서 포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매우 설레는 틈이다. 자본주의를 이해할수록 소비를 만들어내고 싶기 때문이다. 결국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일상에서 맛볼 수 없는 환상감을 선사하고, 동시에 일상에서 예술을 즐길 수 있는 여지를 주는 방법이 내가 싫어하던 소비 문화에 있는 게 아닌가. 이것을 이해하니, 소비자의 입장에 섬으로써 '소비하는 자'가 아니라 '생산하는 자'로 경제 문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싶어졌다.
이런 걸 하는 사람이 되려면 어떤 걸 준비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