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1~2025.04
(IES Abroad + SAF Korea의 Global STERN 프로그램 참가 회고)
밀라노로 교환학생을 다녀온 나는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할 수 있는 이 기회를 주저 않고 붙잡았다. 이번에는 직접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도 큰 매력으로 느껴졌다. 런던으로 가기 직전에 한국에서 4개월 인턴을 하고 있던 중이었고, 무엇보다 커리어 고민을 하던 차에 무언가 새로운 인사이트를 줄 것만 같았다.
IES Abroad는 미국의 교육 비영리 재단이고, 여러 나라에 지부가 있다. 미국 학생들을 다른 나라(주로 유럽권)으로 방문 학생 또는 인턴을 보내주다가 사업을 확장했다고 한다. 그렇게 나와 같은 대학교 학생 총 4명은 해당 프로그램 장학생 신분으로 1월 초, 런던으로 떠나게 되었다. 첫 주에는 프로그램에 참가한 다른 학생들과 오리엔테이션 수업을 들었다. 대부분 런던에 적응하는 것을 돕고, 이 경험을 통해 정체성을 찾아나가도록 해주는 수업들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풀타임 인턴/하프타임 인턴/방문학생 이 세 가지 트랙이 있는데 풀타임 인턴을 선택한 경우는 나를 포함한 한국 학생들, 그리고 2명 정도의 미국 학생들이었다. 나머지는 대부분 방문학생으로 온 미국인들이었고, 하프타임 인턴도 종종 있었다. 목적은 조금씩 다르나, 그래도 런던에 있는 외지인이라는 점은 내가 다른 친구들과 더 끈끈하게 어울려 놀게 해준 동력 중 하나였던 것 같다. 덕분에 런던의 다양한 문화생활과 음식들, IES Abroad가 주관하는 필드트립에 대한 추억이 훨씬 풍부해졌다.
난 런던 Walthamstow에 위치한 Mannequin House라는 학생 기숙사에 살았다. 1인실이었고, 플랫메이트들은 5명이 있었는데 플랫별로 공용 주방이 있었다. 0층 데스크 직원분들도 친절하셨고, 위치가 좋아서 전반적으로 만족하면서 지냈다. (샤워 부스 배수가 잘 안 되는 시기가 있었는데, 이건 많은 친구들이 겪는 공통된 문제였다. 나는 'Mr.Muscle'이라는 액체를 Co-op 마트에서 사서 한 번씩 부어 이 문제를 해결했다.) 가장 가까운 지하철 역은 Blackhorse road역인데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였고, Victoria Line을 타면 30-40분쯤 걸려 런던 도심에 도착할 수 있었다. Victoria Line이 다른 라인에 비해 지저분하고 매우 시끄러운 편이라 탈 때마다 불평을 했지만, 나중에는 Victoria Line 노선도만으로도 떠오르는 추억들이 참 많아 애증하는 라인이 되었다. 그리고 Walthamstwo가 예술가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유명하다는 말을 들었는데, 마을 곳곳에 그려진 벽화나 풍기는 분위기에서 그걸 느낄 수 있었다. 바로 근처에 Walthamstow Wetlands라는 저수지 10개가 모인 자연 보호구역이 있어서 그곳을 따라 러닝을 하곤 했는데 다양한 새들과 한가로이 산책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힐링되는 풍경이었다. 그걸 보러 더 자주 뛰러 나간 것 같다.
외식 물가가 비싸기도 하고, 환율이 1800원~1900원대여서 외식을 매번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기숙사에서도 음식을 많이 해먹었는데, 주로 간장계란밥이나 샐러드, 파스타를 먹었고, 외국인 친구들에게 한식을 소개하고 싶을 때는 떡볶이와 떡만둣국을 했다. 한인마트인 oseyo(오세요)가 런던 도심에는 곳곳에 있고, 차이나 마트에도 한식 재료들이 있어서 재료 구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나는 인턴을 지원할 당시에 우선순위로 AI/헬스케어 분야, 스타트업, 마케팅/Business Development 직무를 적어 냈었는데, AI 스타트업 Edgify가 처음으로 면접 오퍼를 했다. 일할 회사가 정해져야 비자 발급을 신청할 수 있었고, 출국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라 난 바로 Edgify와 일하기로 결정했다. 직무는 Data Analysis/Marketing이었다. 바로 직전에 한국의 마케팅 에이전시 스타트업에서 Project Magement를 했었고, Social Media Marketing 경험이 있어서 원래 Data Analysis 직무만 하려던 걸 마케팅도 하겠다고 말씀드려 결정된 사항이었다.
첫 주에는 대부분의 동료 분들이 뉴욕으로 출장을 가신 상태여서 생각보다는 휑한 오피스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그래도 Customer Success팀의 Almog와 Ciaran 동료 두 분이 날 잘 챙겨주시고, 회사에 대한 소개를 해주셨다. 예상은 했으나, Customer Success팀에서 나에게 맡겨주시는 업무는 정말 반복적인 단순 업무였다. 그렇지만 이 업무는 회사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함이고, 앞으로는 더 배울 게 많을 거란 생각으로 임했다. 아쉬웠던 점은 마케팅 업무의 체계가 없어서 내가 배울 수 있는 것에 큰 제약을 느꼈다는 점이다. 마케팅 부서가 없는 상태여서 영업 팀에서 마케팅을 더 해보려고 하시는 상황이었고, 그래서 나는 경쟁사 소셜 미디어 마케팅 분석, ICP & Buyer Persona 분석, SEO를 위한 LinkedIn 전략 분석, SEO 키워드 도출, 웹사이트 UI 분석 및 리디자인 제안 등 매일 피그마에 자료와 인사이트를 정리하여 관련된 동료분께 공유드렸다.
나의 공식 직무는 아니었지만, UI 및 편집 디자인을 할 수 있어서 Internal Website 리디자인과 공식 웹사이트 개선점 제안, 사업 제안서 편집 디자인 등을 부탁받아 일하기도 했다. 특히 Internal Website는 직접 부탁받았다기보다는, 한 동료분께서 매번 사용하는 웹사이트 페이지의 불편함을 토로하시는 것을 듣고, 문제점과 솔루션을 분석하여 피그마로 목업을 만들어 보여드렸던 것인데 생각보다 정말 좋아해주셨다. 그 덕분에 다른 팀의 동료분들께도 발표할 기회가 생겼어서 뿌듯했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내가 제안한 아이디어들에 대해 좋은 코멘트를 받았지만, 그것들이 실제 액션 아이템으로 연결되는 경우는 적었다. 지켜본 바로는, 액션 아이템으로 만들게 되면 담당자가 필요한데 그걸 기꺼이 담당하고자 하는 직원 분들이 없어서였다.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스타트업상, 모두가 120% 일하고 있었고 그랬기에 본인 업무 외에 프로젝트를 하나 더 맡는 게 부담스러운 구조였던 것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손이 많이 가지만 반복적인 업무를 대신 해 줄 인턴이었지, 새로운 프로젝트를 제안하는 인턴은 아니었다. 그러나 인턴으로서 내가 원하는 건 반대였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 여러 번 상사에게 대화를 요청했다. 대화 이후에는 상사 분이 더 신경 써주시고, 피드백도 바로 주시려 했지만 며칠만 지나면 금세 원래대로 돌아가는 게 매우 아쉬웠다. IES Abroad 센터에도 연락을 해보았는데 회사를 바꿀 수도 없고, 인턴을 관리하는 체계가 부족한 것이라 센터에서도 크게 해줄 수 있는 건 없어보였다. 주변의 다른 인턴들을 보면, 나보다 더 일을 많이 하는 경우도, 더 적게 하는 경우도 많았다. 정말 '운빨'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처음 인턴을 해보거나, 업무적인 욕심이 많이 없는 경우에 추천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래서 나는 업무 욕심을 채우지 못했으니, 커피챗이라도 해봐야겠다는 마음으로 링크드인을 통해 Wolff Olins에 문을 두드려보았다. 6명 중에 딱 한 분이 커피챗을 승낙해주셨는데, 그 대화를 통해 나라는 사람을 어떻게 빚어갈 것인가에 정말 큰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동경하는 분야의 Brand Strategist를 만나보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또 IES Abroad의 인턴십 세미나 담임 강사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IES Abroad 서울 오피스의 센터장님과 온라인으로 커피챗을 할 기회도 얻을 수 있었다. 실무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그들의 인사이트를 공부할 수 있어서 나에게 매번 새로운 시각을 주는 좋은 자극이다. 한 번은 Brunel University의 브랜딩 디자인 석사 과정을 추천받아서 직접 가보았는데, 우연히 만난 교수님께서 캠퍼스 투어를 시켜주셨다. 이런 식으로 직접 문을 두드리면 얻을 수 있는 기회들을 많이 활용하는 것 또한 런던을 즐기는 다른 방법인 것 같다!
런던에 오기 전부터 뮤지컬, 오페라, 오케스트라, 발레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보겠다고 마음먹어서 틈날 때 Barbican Hall이나 Royal Opera House의 사이트나 TodayTix라는 뮤지컬 티켓 예매 앱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볼 수 있는 티켓을 예매하곤 했다. Threads에 런던에 거주하는 한인들이 많은 정보를 공유하고 있어서 새로운 공연이나 이벤트 정보를 아는 경우도 있었다. Royal Opera House가 위치한 Covent Garden은 기숙사에서 상대적으로 가깝기도 했고 분위기가 깔끔하고 예뻐서 갈 때마다 기분이 좋았던 장소이다. 거기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Soho가 나오는데, Soho에 대부분의 뮤지컬 공연장이 모여있다. 뮤지컬은 오페라의 유령, 레미제라블, 백투더퓨처, 해밀턴을 봤는데 볼 때마다 그 공연만의 특색 있는 스타일과 엄청난 디테일의 무대 디자인에 놀랐다. 무대 자체가 크지 않은 것 같아도 그 안에 모든 장치가 넣어 적절하게 효과를 연출하는 게 놀라웠다.
여행은 런던 근교 도시, IES Abroad가 주관하는 필드 트립, 알아서 간 해외 여행으로 정리해볼 수 있다.
런던 근교 도시로는 Greenwich나 Notting Hill, Birmingham에 친구들과 당일치기로 놀러 갔었다. 확실히 날씨가 여행의 분위기를 좌지우지하는 게, 두 번째로 방문했던 Notting Hill을 봄에 가서 그런지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기억에 남았다. Greenwich는 조금 멀긴 했지만 본초 자오선을 보는 재미가 있었고, 영국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Birmingham은 런던이 아닌 영국의 대도시를 본다는 데에 의미가 있었다.
IES Abroad의 필드 트립 중 나는 Oxford, Edinburgh, Jurassic Coast field trip에 참가했다. (참가 비용은 프로그램이 끝난 후에 청구된다.) 훨씬 더 많이 있는데 나는 매주 가는 것은 부담이어서 혼자 가기 어려울 것 같은 곳을 골라 친구들과 함께 참가했다. Oxford는 당일치기로 갔고, 나머지 두 군데는 2박 3일 일정이었다. 보통 IES 스태프들이 동행하고, 워킹 투어를 한다. 그 이후에는 자유 시간이 생각보다 넉넉히 주어진다. 숙소는 다인실 호스텔에서 묵는다. 나는 필드 트립을 통해 내가 가보지 않을 곳을 편하게 갔다 올 수 있어서 매우 만족했다! 매번 친구들과 200프로 즐기고 왔는데, 나중에 IES 스태프 중 한 명인 Jake가 말하길, 나와 친구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어서 매우 고마웠다고 한다. 스태프들과도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는 것도 또다른 묘미였다.
해외 여행은 프랑스 파리, 폴란드의 그다인스크와 바르샤바, 포르투갈의 리스본과 포르투,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과 쾨켄호프를 다녀왔다. 파리는 두 번째 방문이어서 교환학생 시절에 못 갔던 조르주 퐁피두 센터, 루브르 박물관을 갔던 게 매우 좋았다. 폴란드는 교환학생 때 사귄 폴란드 친구들을 만나러 간 것이었는데, 벌써 그다인스크는 세 번째 방문이어서 마치 고향에 온 듯(?) 편안한 도시였고, 바르샤바는 처음이라 새로운 느낌이었다. 비록 바르샤바에서 에어비앤비가 갑자기 취소되는 불상사가 있기는 했지만, 그것도 잘 해결하고 바르샤바의 쇼팽 콘서트, 국립 미술관, 공원을 즐길 수 있어서 행복했던 여행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네덜란드는 쾨켄호프의 튤립축제를 핑계 삼아 간 것이었는데, 4월의 암스테르담은 얇은 외투 하나 걸쳐도 되는 날씨에,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거리의 나무와 꽃들이 아름다워 거리를 걷기만 해도 행복이 충전되는 도시였다. 반 고흐 미술관과 안네 프랑크 박물관은 미리 예약을 하지 못해서 가지 않았지만, 그것 말고도 해상 박물관, 국립 박물관 등 즐길 거리는 충분했다. 여행의 묘미는 즉흥연주자처럼 다음 가야 할 곳을 바로 직전에 하나씩 결정해간다는 데에 있으니까!
비록 내가 처음에 기대하고 간 것과는 다른 경험이었지만, 4개월 간의 런던이 내게 준 선물은 커리어 그 이상의 것이었다. 새로운 곳에서 살아가는 또 다른 나와 마주하는 시간이었으며, 그 속에서 새로운 일상을 만들어가는 순간 순간들의 집합이었다. 나만의 일상을 만들어가기 위해 작은 루틴을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서 재미를 느꼈고, 그 루틴을 친구들과 공유할 때에는 더 큰 재미를 느꼈다. 마치 꿈처럼 지냈던 그곳의 시간들이 이력서에는 보이지 않는 형태로 내 기억에 남아있을 것이다. 또한 앞으로 내가 커리어를 시작하고, 생활할 곳이 이 세상 어디더라도 그곳에서 적응하고 살아낼 것이라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그 전에 직업을 구해야겠지만..) 다음은 어디일까? 또 다른 기회가, 놀라운 경험이 날 기다리고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