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4학년의 진로 고민 일기
여러 번 자기소개서를 쓰다 보니, 내 경험을 무조건 아름답게 얘기하는 것에 싫증이 났다. 완벽히 비판적으로 돌이켜본다면..
내가 원한 건 뭘까?
=> '국제적으로 일한다는' 타이틀과 명성을 원했던 것이다. 이걸 버리고 남는 것은,
- 세상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중요한 일을 한다.
- 이상적인 미션을 공유한다.
-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는 환경에서 일한다/살아간다.
- 한국에서만 일하지 않고 내 세상을 넓혀간다.
=> 창의적인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
사실 '디자이너'인 나 자신을 상상해본 적은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리고 한 번도 완전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에 흥미를 느낀 적이 없다. 그리고 내가 학습한 디자인은 예술과는 애초에 거리가 멀었다. 사회 문제 컨셉(ex. 불평등, 지속가능성, 미래 등 최대한 모호하고 커다란 주제)를 던져주곤 알아서 문제를 정의한 뒤에 디자인 솔루션을 내라는 것이었다. 난 4년 동안 그걸 반복하다보니 매번 나오는 사회 문제와 별 다를 것 없는 결과물들에 싫증이 났다.
사실 디자인을 공부해봐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두 가지의 책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이 세상의 1%가 아닌 99%를 위한 디자인을 하겠다"는 문장은 내게 꽂혔다. 디자인으로 그렇게 선한 일을 할 수 있다고? 디자인을 하면 선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디자인 씽킹'이라고 불리는 IDEO의 컨설팅 전략에 대한 책이었다. 고객의 문제를 분석하는 방법과 이를 도출해내는 수많은 포스트잇, 토론 등의 과정을 설명하는데 나는 그때 '뭔가 다르다'고 느꼈던 것 같다. 책에서 묻어나는 창의적인 발상이 주는 느낌에 사로잡혔다. 디자인이 강력한 무언가라고 느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디자이너가 된다면 선한 영향력을 강력하게 끼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 아니다. 선한 영향력을 강력하게 끼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무조건 디자이너가 되야 하는 건 아니었다. 내가 본 세상은 점점 넓어지고 있다. 그러니 '디자인'이나 '디자인 씽킹'이 주는 그럴 듯한 멋있음에서 벗어나고 나면 나머지가 남는다.
-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필요하다.
- 직접 현장에 나가고, 활발한 토론을 통해 하나의 프로젝트를 해결해 나가고 싶다.
- 감각적인 일을 하고 싶다(만, 이건 사실 나의 취향으로 남겨둘 때 더 강력한 것 같기도..)
그렇다고 디자인이 쓸모 없는 걸까? 그건 아니다. 내가 디자인을 재정의하게 된 하나의 책이 있다.
디자인은 새로운 가치를 제안하는 툴이다. 새로운 가치를 제안하는 강력한 방법 중 하나이다. 이 책이 내게 꽂혔던 이유는 아무래도 다음과 관련이 있겠지
- 나의 새로운/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세상에 내보이고 싶다.
- 내 목소리가 강력했으면 좋겠다.
...
어렸을 때는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바꾸겠어!'라는 목표만으로 모든 게 해결될 줄 알았다. 그러나 현실은 그보다 훨씬 복잡했다. 어떤 세상을? 어떤 방법으로? 어떤 문제를? 질문 하나에 답이 수만 가지가 될 수 있다. 그걸 더 알고자 정치외교를 복수전공했던 것인데, 답이 나오기는 커녕 내게 세상은 점점 더 넓어져만 갔다. Connecting dots를 하기에는 아직 dot도 몇 개 없는 초짜인 것처럼 느껴진다.
정리해보자면,
- 세상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중요한 일을 한다.
- 이상적인 미션을 공유한다.
-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는 환경에서 일한다/살아간다.
- 한국에서만 일하지 않고 내 세상을 넓혀간다.
-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필요하다.
- 직접 현장에 나가고, 활발한 토론을 통해 하나의 프로젝트를 해결해 나가고 싶다.
- 감각적인 일을 하고 싶다(만, 이건 사실 나의 취향으로 남겨둘 때 더 강력한 것 같기도..)
- 나의 새로운/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세상에 내보이고 싶다.
- 내 목소리가 강력했으면 좋겠다.
새롭게 알게 된 사실들은 아니다. 그래도 이 드넓은 취업 시장에서 정신 붙잡지 않으면 여기저기 휩쓸려 다닐 게 뻔하니 이렇게 매번 내게 말해줘야 할 것 같다.
지금 할 수 있는 건? 당장 모든 걸 해결해줄 수 있는 하나의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나지를 바라지 않기. 그리고 조급해하지 않기. 발이 동동 구르는 걸 막기는 어렵지만 이번 주에 운이 함께 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