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할 수 없는 사람을 평생동안 질투해왔다.

그리고 아마 나는 그 시간 속에서 계속 계속 끝없이 살아갈 것이다.

by 가예
질투할 수 없는 사람을 평생동안 질투해왔다.

그리고 그 사람의 부재중을 깨달았을 때, 나는 깊이 좌절했다.


이건 남들과는 다른 조금은 특별한, 그렇지만 유일한 나의 이야기는 아니다. 어린 시절의 나는 겉으로 보기에 부유했다. 하지만 보여주기식 행복에 익숙했던 우리 가족은 모두 불우했다. '끝이 어딜까. 끝나긴 할까. 내 생애는 지하를 향해 달려가고자하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내 얼굴의 그늘을 만들었다. 아버지는 소위말하는 알코올중독자였으며, 아버지가 술을 드시고 오신 날이면 엄마와 나는 살아남기위해 고군분투했다. 나는 매번 밤이 오는 것을 두려워 했으며, 잠에 제대로 들지 못했다. 물론 그렇다고해서 아버지가 나쁜사람은 아니었다. (누군가는 술주정을 부리는 것만으로 나쁜 사람이라 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나에게 아버지는 매번 나쁜사람은 아니었으므로.) 그는 가진 상처를 스스로 보듬을 수 없는 사람이었을 뿐이다. 스스로의 삶을 대하는 태도가 서툴렀으므로 엄마와 나에겐 특히 더 서투를 수 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우리 가족의 불행의 시작은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초등학교 3학년이 되던 해에 처음으로 이 생각을 했다. 원천을 찾아야만 해결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대게 나는 단순한 아이였으므로 문제 해결에 있어서 겁을 내지않는 편이었기에 쉽게 생각했다. 쉽게 얻은 것은 쉽게 잃는다고 누가 그랬던가. 나는 쉽게 함부로 그 생각을 했고, 나름의 시도를 행했으며 곧장 다칠 수 밖에 없었다.


우리 가족은 패러글라이딩을 했었다. 아버지는 선수출신이셨으며, 엄마는 그런 아버지를 사랑하셨다. 어떤 산이든 그들의 주무대가 되었다. 함께했다.


그리고 그 둘 사이에서 태어난 보물은 아버지의 뒤를 잇는 출중한 실력을 지닌 선수가 된다. 그게 우리 오빠이자, 내 출생의 비밀을 풀 수 있는 실마리가 된다. 또 우리 가족이 마냥 행복하게 살아갈 수 없는 기억의 조각이 되기도 한다.


내 가장 어린 기억속으로 걸어 들어가면, 꽃시장을 가는 엄마의 손을 꼭잡고 있는 내가 있다. 엄마는 꽃을 바라보면서 오빠의 이야기를 애틋하게 했었다. 왜 그렇게 엄마의 눈빛이 슬픈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아는 오빠는 유학에 가 있었으므로 공부를 마쳐야만 돌아올 수 있는 사람으로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나를 훈육하실 때마다 늘 꺼내시던 래퍼토리가 있었다.


"너의 오빠는 단 한번도 그랬던 적이 없었는데."

"한 배에서 나왔지만 어쩜 이리 안닮을 수가"

"오빠는 부처에 가까운 존재였는데."


그래서 어린 시절, 내 기억 속의 오빠는 단 한번도 보지 못했지만 부처 혹은 신과 같은 존재였다. 엄마는 과거에 머물러 오빠를 추억했으며 그 추억은 나에게 태어나서 한 번도 보지 못한 오빠란 사람의 존재를 아름답게 각인 시켰다.


초등학생이 된 나는, 점차 말대꾸라는 것을 배우기 시작했고, 너무 오빠만을 편애했던 엄마를 향해 원망하기 시작했다. 원망의 화살은 엄마를 빗겨나가, 오빠에게 향하기도 했다. 질투가 났다. 얼마나 잘났길래, 얼마나 바르길래, 얼마나 착하길래.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하는지. 나의 존재는 무엇인지. 혼란스러웠다. 이 모든 것을 올바르게 마주하는 법을 몰랐던 어린 나는, 정말 지독하게 오빠를 질투했다. 그리고는 또 생각했다. '제발 캐나다에서 돌아오기만 해봐라, 내가 더 착한 엄마의 딸로 사랑받고 있음을 보여줄테다.' 라고.



그리고 별다를 것 없는 평온한 하루였다. 나는 집 안 드레스룸에서 곧장 숨어서 놀기를 좋아했고, 오빠란 존재의 비밀이 담긴 다이어리를 발견하고 말았다. 빨간 표지속의 다이어리는 먼지가 살포시 내려앉아 비밀이 잠든 자리의 무덤이 되어있었다.


호기심으로, 그 다이어리는 오빠 것이라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열어보고 말았다. 다이어리는 2001년에 멈추어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오빠는 친구들에게 돌아가며 롤링페이퍼처럼 한 마디씩 적어달라했고, 그것들이 고스란히 모여 지난 날을 이야기 해주고 있었다.


마침내 다이어리가 끝장을 향해가면 갈 수록, 오빠의 사고 그리고 죽음에 대한 동급생들의 애도가 하나 둘 씩 담겨서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렇다. 오빠는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내가 고작 10살이던 해, 그 사실을 알게되었다. 10대에 막 접어들었다며, 사촌언니 오빠들에게 나도 이제 10대임을 만연하게 떠들고 다니던, 그 만으로 벌써 반틈의 어른이 된 것 같았던 나였다.


다이어리는 너무나도 사실이어서, 엄마에게 달리 확인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냥 그제서야 그 사실을 알게된 나에 대한 원망이 들었다. 내가 엄마에게, 또는 오빠에게 날렸던 원망이 부메랑이 되어 결국은 나에게 돌아왔다. 이상하다 생각했던 모든 흔적들이 하나의 퍼즐마냥 맞춰지기 시작했다. 유학갔다던 오빠가 어떻게 한 번을 집에 안오는지 생각하면서도, 아빠때문일 것이라 짐작만 했던 나는 바보였다.


엄마에게 미안했다. 엄마를 볼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방금 무엇을 봤는지 말할 자신도 없었다. 그냥 입을 다무는 것 외에는 선택지가 없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엄마를 보는 것만으로 묘하게 죄책감이 들었다. 내가 오빠를 질투했던 모든 순간이 되감기되면서 나를 괴롭혔다. 꼭 오빠가 그렇게 된 것이 나때문인 것 같았다. 모든 것이 나의 죄같았다.


엄마가 나를 키우시면서 하셨던 모든 말씀에 오빠의 생전모습이 담겨있다는 것을. 엄마의 슬픈 낯빛은 앞으로도 슬플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나는 그것을 위로해줄 수 없다는 사실을. 한 순간에 알아챘다. 엄마의 멈춘 시간 속엔 내가 아닌 오빠만 있다는 사실이 아팠다.


나는 평생토록 질투할 수 없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을 질투해왔다. 그리고 스물이 된 나는 아직도 오빠를 질투한다. 앞으로도 그를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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