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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재민 Feb 05. 2023

작은정부론 그 시대착오적인 발상에 대하여

여성가족부 폐지에 담긴 속 뜻

제작년 국민의 힘 당대표가 여가부 폐지, 통일부 폐지를 주장하면서 연일 시끄러웠다. 이 논란에서 핵심은 여성부나 통일부의 역할론이 아니다. 이는 근원적으로 국민의 힘이 '작은 정부론'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작은 정부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거나 여러 문제에 충분히 신경쓸 수 없다.왜냐하면, 공공성이 중요한 영역을 민간에게 맡겨버리거나, 세금을 줄이기 때문이다.


국가 의료보험을 축소하고 민간 보험을 대폭 도입해서 의료 부분을 자본의 돈벌이 수단으로 내주는 것이 의료 민영화다. 대학 입시를 자율화 하고 자립형 사립고를 도입하는 등, 학생들을 입시 교육의 무한 경쟁으로 내몰고 교육 분야를 사학들의 돈놀이 판으로 던져 넣는 것 이 교육 민영화다. 전기, 통신, 철도, 수도 등을 민영화하는 것은 공공서비스로 제공되던 전기, 통신, 철도, 수도 등을 자본의 이윤 추구 대상으로 내줌으로써 대책 없는 요금 인상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이 이러한 서비스에 접근하기 힘든 결과를 가져온다. 이렇듯 정부의 공공 기능을 자본에 돈벌이 수단으로 내주는 것이 이른바 민영화다.


작은 정부는 민영화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보수 정권이 주문처럼 외우는 것 하나가 '세금을 깎아주겠다'는 말이다. 얼핏 들으면 좋아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지금 윤석열 정부가 깎으려는 세금은 사실상 기업인이 더 많이 부담하는 법인세다. 이렇게 부자들에게서 걷는 세금을 대폭 깎아주고 나면 국가의 세금 수입은 당연히 적어지게 마련이다. 그러면 당연히 정부 지출을 줄여야 하는데 바로 가난한 서민들에게 혜택이 돌아갈 '복지'를 축소하는 것으로 귀결되게 마련이다. 이것이 작은 정부가 내세우는 절세'의 본질이다.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작은 정부'는 이 밖에도 환경이나 인권 보호를 위해 도입한 다양한 제도들을 이른바 '규제 완화‘ 라는 이유 를 들어 한꺼번에 없애버릴 계획을 가지고 있다. 온 국토를 자본가들의 돈놀이 판으로 내주는 것이 바로 '작은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계획들이다.


나의 예상대로 윤석열 정권은 집권하고 난 뒤 집권여당 국민의 힘과 공공기관의 민영화를 추진하고 있다.그리고, 이를 얼토당토 하지 않게 청년들의 공정 담론과 연결시키려 할 것이다. 사실 이미 ‘작고 강한 정부’는 시효성이 끝난 담론이다. 과거 이명박 정부는 교육, 의료, 전기, 통신, 철도, 수도 등의 분야를 작은 정부론을 내세우며 민영화하려 했다.


작은 정부론의 귀결이 결국 불평등이라는 것이, 이미 곳곳에서 증명되고 있다. 그리고 이 시대의 시민들은 작은 정부론을 두 가지 이유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첫째, 이미 한국은 물론 전 지구적 불평등이 극심한 시대에, 이 구조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큰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둘째, 코로나19와 같은 전 지구적 재난을 겪으면서,재난지원금, 손실 보상법 등에 대한 다수 국민들의 지지가 높아져있는 상태이다.


게다가 한국에서 작은 정부는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때 처참한 실패를 맛본 경험이 있다. 보수 정권은 집권 초기에 작은 정부론을 내세우며 정부 부처들을 폐지했지만, 결국 스스로 폐지했던 정부 부처들을 하나씩 부활시킨 바 있다. 정보통신부와 과학기술부가 그예 중에 하나다.그 외에도 정작 줄이기로 한 공무원 숫자는 오히려 8만 1219명 늘렸다.


오늘날 청년들이 원하는 '공정'의 핵심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보자.정부가 개혁을 통해 기회는 균등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것 아니었는가? 다시 말해, 사회를 바꿀 만큼 큰 정부를 원했던 것이 아니었는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 조사에서 2017년 문재인 정부에 대한 20대 지지율이 80%대 였던 것은 이를 뒷받침한다.


국민의 힘이 던지는 여성부 폐지 논의가 더 나아가 공공기업을 민영화하고, 기업에 대한 규제를 풀고, 수도, 전기, 의료 등에 대한 공적 서비스가 축소되고, 그나마 티끌처럼 존재하던 안정적 일자리마저 사라지게 만드는 정치로 귀결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 땅의 청년들은 '21세기에 맞는 21세기형 복지국가에 살 자격'이 있다. 지금 개혁에 대한 실망이 정치의 보수화로 흐르고 있지만, 그 정치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가 곧 드러날 것이다. 이 시대의 청년들이 그리 바보가 아니다.


임승수,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시대의 창(2016),  p301-302을 인용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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