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의 선한의지를 기대하는 국민정서는 위험하다
우리집은 4층에 있다. 옥상과 맞닿아 있는 층이라서 흡연을 위해 종종 옥상으로 올라간다. 담배를 맛깔나게 태우고 옥상에서 4층으로 내려오는데, 1층에서부터 누군가 올라오는 소리가 들린다. 휴대폰을 켜서 시간을 보니 마침 딱 가족들이 퇴근할 시간대다. 4층을 향해 걸어올라오는 이는 2층에서도, 3층에서도 멈추지 않고 4층을 향해 걸어올라온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재빨리 현관문 도어락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집 안으로 들어갈 것인가, 아니면 걸어올라오는 이가 가족인지 확인할 것인가.
‘4층을 향해 걸어올라오는 이가 가족인지 확인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을거라 생각한다. 치안이 좋은 우리나라의 특징 덕택에 4층을 향해 걸어올라오는 이가 나를 해칠 확률이 낮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치안상황이 좋지 않다면 4층을 향해 걸어올라오는 사람을 가족이라 믿고 기다리는 건 위험하다. 그땐 이미 늦었을지도 모른다. 만약, 4층에 도착해버린 그 사람이 나를 해칠 범죄자라면, 그 길로 나는 범죄를 당하는 것이다. 이 상황에선 4층을 향해 올라오는 이가 나의 가족인지, 나를 해칠 범죄자인지 미리 판단 할 수 없다. 이럴 때 우리는 주거침입금지라는 법률과 도어락이라는 시스템을 통해 나의 안전을 확보하고 그가 누군지 판단할 수 있다.
혹시 모를 범죄를 당하지 않으려면 나 자신은 4층을 향해 걸어올라오는 이가 4층에 채 도착하기도 전에 도어락 비밀번호를 풀고 집 안으로 들어가야한다. 만약 4층에 도착한 사람이 가족이라면, 도어락 비밀번호를 풀고 집 안으로 들어올 것이고, 나를 해치려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도어락 비밀번호를 풀지 못하고 올라온 계단을 내려 갈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갑자기 왠 범죄예방 타령인가 궁금하실거다. 여기에는 비유가 숨어있다. 위에서 말한 법률과 도어락은 국가시스템이고 4층으로 올라오는 사람은 정치권의 인물이며, ‘나’ 자신은 국민이다. 나(국민)는 도어락이라는 국가시스템을 통해 범죄를 저지를지도 모르는 인물을 대비할 수 있다. 4층을 향해 걸어올라오는 사람이 가족일 확률이 높더라도 만약을 위해서 도어락을 이용해 집에 미리 들어가 있는 것. 한마디로 정내미 없어뵈도 시스템을 통해 안전을 확보하는 것. 이것이 조직과 국가의 지도자를 선출하고 운용하는 주권자의 의무다.
수백가지 경우의 수 중에 두가지의 경우를 더 들어보자. 시스템인 도어락이 고장나는 경우와 주거침입금지라는 법률이 효과적이지 못한 경우다. 인물이 범죄하지 못하도록 도어락을 풀고 집에들어가려는데 도어락이라는 국가시스템이 고장나버린다거나 집으로 피신했음에도 법률이 효과적이지 못해서 인물이 주거를 침입하고 나를 살해한다면, ’나‘는 그 길로 저승길 가는 것이다. 여기서 범죄를 당할 대상이 '나'라는 개인뿐만 아니라 ‘국민‘이라 가정하고, 범죄자가 정치권의 인물이라고 가정한다면, 문제는 차원을 넘어선다.
우리는 평소에 국가시스템(법률, 도어락)을 점검하지도 교체하지도 않고, 그 시스템을 통해서 배출된 인물을 제대로 검증하지도 않은 채로 인물의 능력과 선한의지에 기대려는 정서를 가지고 있다. 이런식의 흐름은 나와 우리 공동체의 안전을 보장하지 못한다.
현행 헌법과 제왕적 대통령제 아래에서 이재명이라는 인물의 능력과 선한의지를 믿지 못해, 윤석열이라는 인물에게 대통령직을 맡겼다가 나라가 쑥대밭이다. 평소에 대통령에게 권력을 몰아주는 현행 헌법과 법률에는 문제가 없는지, 대통령을 선출할 때 결선투표제가 필요한지 등등을 면밀히 잘 살폈다면, 박근혜탄핵 이후 또 다시 대통령 탄핵을 외쳐야하는 수고로움을 겪지 않아도 됐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 필요한 시스템이 무엇이고, 현행시스템의 단점은 무엇이며, 지난 시행착오에선 무엇을 배웠는지 우리는 기억하고 다음세대에 계승해야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 나라의 공산주의자를 타도하고 자유민주주의를 바로세울거야! 그러니 윤석열 대통령에게 권력을 몰빵하자!" 내지는 "이재명 대표가 더불어민주당과 이 나라의 사회정의를 바로잡을거야! 그러니 이재명 대표에게 권력을 몰빵하자!" 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대한민국의 시스템혁신은 멀어진다. 덩달아 대한민국의 미래 역시 어두워진다.
우리는 박근혜, 윤석열 대통령 같은 범죄자가 배출되지 않도록 우리의 국가시스템(체제)을 평소에 점검해야한다. 평소에도 도어락과 현행법률(시스템)을 잘 관리하고 점검하며, 문제가 있을 시에는 교체하기도 하면서 만약에 있을 인물의 범죄를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전혀 새로울게 없는 이야기를 꺼낸 이유에는 우리 대한민국의 시스템을 점검하고 혁신해야한다는 당연한 상식이 점점 흐릿해진다는 상황이 있다. 그리하여, 이재명, 윤석열과 같은 정치인물을 맹종하는일이 만연하다. 우리나라에 인물에 대한 맹종 대신 끊임없이 혁신되고 점검되는 국가시스템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