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공산당사 개괄과 오랜 벗에게 바치는 헌사
혼돈의 대륙, 사회주의의 싹을 틔우다
20세기 초, 청 왕조의 부패와 무능은 국가의 기틀을 허물었고, 서구열강의 이권침탈은 나라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이러한 혼돈 속에서 중국사회는 깊은 좌절과 절망을 겪었고, 희망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사회주의라는 이념체계가 중국의 지식인 사회에 파고든다.
19세기 중반부터 서구열강은 군사력과 경제력을 앞세워 중국에 불평등 조약을 강요하며 이권을 침탈하기 시작했다. 아편전쟁을 시작으로, 서구열강은 중국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시장이자 자원 공급지로 삼았다. 이러한 외세의 침략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청 왕조의 모습은 민중에게 실망을 안긴다. 청 왕조는 양무자강운동 등 근대화를 위해서 노력했지만, 근본적인 개혁에는 실패하며 외세의 침략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결국, 청일전쟁에서 패배하고 신해혁명이 터진다.
쑨원을 중심으로 일어난 신해혁명은 2천 년 이상 지속된 중국의 군주제를 종식시켰다. 그러나 신해혁명은 봉건적인 잔재를 완전히 청산하지 못했고, 중앙정부의 권위를 확립하지 못한 채 각 지역에서 군벌이 세력을 떨치며 난립하는 형국을 맞이한다. 이러한 군벌할거 시대는 민중의 삶을 도탄에 빠뜨렸고, 사회불안을 야기했다.
1917년 러시아에서 일어난 볼셰비키의 사회주의혁명은 중국의 지식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차르 체제를 무너뜨리고 노동자와 농민중심의 국가를 건설한 러시아혁명은 중국의 지식인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제시한다. 특히, 제국주의에 저항하고 민족해방을 이룩하려는 중국의 지식인들에게 사회주의는 매력적인 사상이었다. 러시아혁명의 성공 이후, 코민테른(국제 공산당)은 중국에 대표를 파견하여 정치조직 결성을 지원하기 시작한다.
1921년 7월, 천두슈와 리다자오를 비롯한 중국의 지식인들은 상하이에서 중국공산당을 창당한다. 천두슈는 신문화운동을 통해 전통적인 유교문화를 비판하고 서구의 민주주의와 과학을 소개한 인물이었고, 리다자오는 베이징대학 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며 마르크스주의를 연구하고 전파하는 데 힘썼다. 이들은 중국의 현실을 분석하고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론을 접목하여 중국사회를 변혁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했다. 이는 이후 중국의 현대사를 이끌어갈 정치세력의 등장이기도 했다.
창당 초기, 중국공산당은 규모가 작고 조직력이 미약했지만, 노동운동과 농민운동을 통해 세력을 확장해 나가기 시작한다. 또한, 쑨원이 이끄는 국민당과 협력하여 군벌타도를 목표로 하는 제1차 국공합작을 추진했다. 국공합작은 중국의 정치지형에 변화를 가져왔지만, 양 당의 이념적 차이와 권력투쟁으로 인해 결국 결렬되고 만다.
항일과 국공내전의 역경을 헤치다
제1차 국공합작의 결렬 이후, 중국공산당은 국민당의 탄압을 받으며 위기에 직면했다. 그러나 일본제국주의의라는 위협은 중국공산당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또 다른 시련을 안긴다.
1931년 만주사변은 일본제국주의의 본격적인 중국침략의 시작을 알렸다. 만주를 점령한 일본은 만주국을 세우고 중국본토 침략의 발판으로 삼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중국에서는 항일운동이 거세게 일었고, 중국공산당은 항일민족통일전선을 구축하여 일본에 맞서 싸울 것을 주장한다.
국민당 내부에서도 장제스의 소극적인 항일의지에 대한 비판이 거세졌다. 시안 사건을 계기로 국공은 다시 한번 손을 잡는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면서 국공의 제2차 합작이 공식화 되었다. 국공 양당은 일본에 맞서 싸웠지만, 각자의 목표와 전략은 달랐다. 국민당은 정규군을 중심으로 일본군과 정면으로 맞섰지만, 전선 유지에 어려움을 겪었다. 반면, 중국공산당은 마오쩌둥의 유격전 전략을 통해 일본군의 후방을 교란하고 점령 지역에서 농민들을 조직하여 세력을 확장해 나갔다.
중국공산당은 항일전쟁기간 동안 유격전을 통해 일본군에 효과적으로 대항했을 뿐만 아니라, 점령지역에서 토지개혁과 민주주의 운동을 전개하여 농민들의 지지를 얻었다. 또한, 항일전쟁 과정에서 중국공산당의 군대는 홍군에서 인민해방군으로 개편된다. 이러한 활동들을 통해 중국공산당은 국민당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패하지 않은, 민중을 위한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하며 민족적 지지를 확대한다.
1945년 일본의 패망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종식되자, 중국에서는 다시한번 국공내전이 일었다. 국공 양당은 전후 중국의 주도권을 놓고 쟁투를 벌였다. 초기에는 미국의 지원을 받는 국민당이 우세했지만, 부패와 무능으로 민심을 잃어가고 있었다. 반면, 중국공산당은 항일전쟁을 통해 얻은 민족적 지지와 토지개혁 등을 통해 농촌지역을 중심으로 많은 지지와 협력을 받았다.
국공내전은 점차 중국공산당에게 유리하게 전개된다. 1949년, 인민해방군은 주요전투에서 승리하며 중국대륙 대부분을 장악했고, 장제스가 이끄는 국민당은 타이완으로 철수했다. 1949년 10월 1일, 마오쩌둥은 천안문광장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을 선포한다. 이는 중국현대사에 새로운 장을 연다. 오랜 외세의 침략과 내전으로 고통받던 중국은 공산당의 주도 하에 놓인다.
대약진의 좌절, 문화혁명의 광기, 개혁개방의 길로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마오쩌둥의 지도 아래 중국은 새로운 사회건설에 박차를 가했다. 그러나 급진적인 사회주의 정책들은 예상치 못한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했고, 중국 사회는 큰 혼란과 고통을 겪어야 했다. 대약진 운동의 실패는 대규모 기근이라는 참혹한 결과를 낳았고, 문화대혁명은 사회 전반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이러한 좌절을 딛고 덩샤오핑이 추진한 개혁개방 정책은 중국 경제의 비약적인 성장을 이끌어냈지만, 동시에 새로운 과제들을 안겨주었다.
건국 초기, 중국공산당은 토지개혁을 통해 농촌사회의 변화를 추진했고, 국유화를 통해 산업기반을 구축하는 데 힘썼다. 이러한 노력들은 일정 부분 성과를 거두어 사회 질서를 안정시키고 경제회복에 기여했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억압하는 대가로 얻어진 것이었다.
1958년, 마오쩌둥은 사회주의사회건설의 속도를 높이기 위해 대약진운동을 추진했다. 농업 생산량의 급격한 증대를 목표로 인민공사 체제를 도입하고 대규모 토목공사를 벌였지만, 이는 심각한 실패로 이어졌다. 비현실적인 생산 목표와 비효율적인 생산 방식은 농업 생산량의 급감을 초래했고, 1959년부터 1961년까지 이어진 대기근으로 수천만 명이 아사하는 참혹한 결과를 낳았다. 대약진 운동의 실패는 마오쩌둥의 권위에 큰 타격을 주었고, 중국 공산당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1966년, 마오쩌둥은 자신의 권위를 회복하고 반대 세력을 숙청하기 위해 문화대혁명을 일으켰다. 홍위병을 동원하여 “낡은 사상, 낡은 문화, 낡은 풍속, 낡은 습관”을 타파한다는 명분으로 대대적인 사회 운동을 전개했지만, 이는 사회 전반에 극심한 혼란과 폭력을 가져왔다. 지식인과 문화계 인사들이 탄압받고, 교육 기관이 마비되었으며, 사회 질서가 붕괴되었다. 10년간 이어진 문화대혁명은 중국 사회에 깊은 상처를 남겼고, 경제 발전에도 큰 차질을 빚었다.
마오쩌둥 사후, 덩샤오핑은 혼란에 빠진 중국 사회를 수습하고 경제 발전을 추진하기 위해 전면에 나섰다. 1978년, 덩샤오핑은 개혁개방 정책을 선포하고 시장경제원리를 도입하여 경제 성장을 추구했다. 농촌에서는 생산 책임제를 도입하여 농민들의 생산 의욕을 고취시켰고, 도시에서는 경제 특구를 설치하여 외국 자본을 유치했다. 이러한 개혁개방 정책은 중국 경제의 비약적인 성장을 이끌어냈고, 중국을 세계적인 경제 대국으로 발돋움시키는 발판을 마련했다.
개혁개방 정책은 중국 경제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수억 명의 사람들이 빈곤에서 벗어났고, 중국은 세계 경제의 중요한 일원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성장의 이면에는 빈부 격차 심화, 환경 오염, 부정부패 등의 문제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또한, 경제적 자유는 확대되었지만, 정치적 자유는 여전히 제한적인 상황이었다. 1989년 톈안먼 사건은 중국의 정치적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시진핑 시대, 중국이 나아갈 길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정책 이후 중국은 세계경제의 중심으로 급부상하며 ‘중국몽’이라는 새로운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급격한 경제성장과 함께 다양한 사회문제와 정치적 과제들이 부각되고 있으며, 특히 시진핑주석의 장기집권과 권위주의로의 강화는 중국의 미래에 대한 모순을 남긴다.
덩샤오핑 이후 장쩌민과 후진타오로 이어진 지도부 역시 개혁개방정책의 기조를 유지하며 경제성장을 지속적으로 추진했다. 이 시기 중국은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통해 국제 사회에 더욱 적극적으로 편입되었고, ‘세계의 공장’으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그러나 이 시기에도 빈부 격차, 환경 오염, 부정부패 등의 문제들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또한, 정치적 개혁은 지지부진했고, 사회적 불만은 누적되고 있었다.
2012년 시진핑이 국가주석으로 취임하면서 중국은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었다. 시진핑은 ‘중국몽’이라는 국가적 비전을 제시하며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목표로 내세웠다. 그는 부패척결을 명분으로 권력을 집중시키고, 당의 통제를 강화하는 정책들을 추진했다. 또한, ‘일대일로’ 정책을 통해 중국의 국제적 영향력을 확대하려 노력하고 있다.
시진핑은 반부패 운동을 통해 정적들을 제거하고 권력을 공고히 했으며, 헌법 개정을 통해 국가주석의 임기 제한을 없애고 장기 집권의 기반을 마련했다. 이러한 권위주의 강화는 중국 내부에서 비판의 목소리를 억누르고, 사회 전반의 자유를 제약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특히, 언론과 인터넷에 대한 검열이 강화되고, 인권 변호사 및 반체제 인사들에 대한 탄압이 심화되고 있다는 비판이 국제 사회에서 제기되고 있다.
중국은 광대한 영토와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국가이다. 특히, 신장위구르 자치구와 티베트 자치구 등 소수민족거주지역에서는 인권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다. 신장위구르 자치구에서는 위구르족에 대한 대규모 구금과 강제노동, 문화탄압 등의 인권침해 사례들이 국제사회에 보고되며, 이는 국제적인 비판을 받고 있다.
홍콩은 ‘일국양제’ 원칙에 따라 중국의 특별 행정구로 운영되고 있지만, 중국 정부의 영향력이 점차 확대되면서 홍콩의 자치권이 침해받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2019년 홍콩에서 발생한 대규모 민주화 시위는 이러한 우려를 반영하는 사건이었다. 또한, 중국은 대만을 자국의 영토로 간주하고 있으며, 필요시 무력 통일도 불사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대만 해협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시진핑 시대 중국은 미국과의 경쟁 관계가 심화되고 있다. 무역 분쟁, 기술 경쟁, 남중국해 문제 등 다양한 영역에서 미-중 갈등이 표출되고 있으며, 이는 동아시아 지역의 안정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또한, 중국은 ‘일대일로’ 정책을 통해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등지에 영향력을 확대하려 노력하고 있으며, 이는 기존의 국제질서에 대한 도전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시진핑 시대 중국은 경제성장을 지속하는 동시에 다양한 국내외적 과제에 직면해 있다. 권위주의강화와 인권 문제, 소수 민족 문제, 홍콩 및 대만 문제, 미국과의 갈등 등은 중국이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들이다. 중국이 진정한 강대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경제 성장뿐만 아니라 정치적 개혁을 통해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고, 국제 사회와의 협력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권위주의적인 통치 방식을 고수한다면, 국내외적으로 더 큰 도전에 직면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끝으로
중국은 지난세기의 위기를 딛고 일어섰지만, 여전히 숱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오랜시간을 알고 지낸 나의 친구처럼, 중국의 현대사는 때때로 마주한 영광과 일상적인 시련으로 가득하다. 외세의 침략과 내전, 격렬한 이념갈등과 혼란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오늘날의 놀라운 발전을 이뤄낸 중국은 결국 강대국이 됐다. 하지만 오늘날의 중국은 권위주의적 통치 아래 지속되는 인권 문제, 경제성장 둔화와 구조적 문제, 사회불평등 심화와 그로 인한 갈등, 고령화 사회로의 진입, 미국과의 경쟁심화와 복잡한 국제관계 등, 변곡점에 서 있다.
오랜 친구가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나는 중국이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더욱 성숙하고 책임감 있는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과거를 반면교사 삼고,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갈 친구와 중국의 저력을 믿는다.
한국 역시 이러한 변화의 흐름을 주시하며 현명하게 대처해야 할 것 같다. 관계는 신뢰와 어려움 속에서 더욱 단단해지는 법이다.
이 글이, 칭화대에서 유학하는 당신과 지방대 출신인 내가 살아갈 세상의 과거와 오늘에 대해 강구하는 계기가 된다면 좋겠다. 또한, 개인의 진정한 행복과 행복한 개인이 모여 형성할 공동선이 동력이 되는 세상을 소망한다.
* 참고자료
[한중 관계사] ,강준영 저
[중국은 어디로 가는가] ,정영록 외, 책세상